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제라늄 Feb 25. 2020

이번 주는 자랑스럽지가 않아

우리를 신성하게 만드는 일

금요일 오후, 프랑소와가 집에 가는 길에 나를 내려주기로 해서 그의 차를 타고 함께 퇴근하는 길이었다. 자연스럽게 지난 일주일 동안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같은 팀이어서 서로 하는 일을 아주 잘 알고 있는데, 그 주에 프랑소와가 맡았던 일이 진행이 잘 안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였는지 평소보다 조금 무거운 금요일 퇴근길이었다. 지지부진했던 업무를 복기하던 프랑소와가 말했다.


“Je ne suis pas très fier de moi cette semaine.”
(이번 주의 내 모습이 별로 자랑스럽지가 않아.)


나는 살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평소처럼 정면을 응시하며 운전을 하는 프랑소와가 뭐랄까... 예뻐 보여서였다.




일이 잘 안돼서 ‘실망스럽다’, ‘기분이 안 좋다’ 혹은 ‘스트레스 받았다’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별로 자랑스럽지 못하다’라는 말이 참 예뻤다. 비록 매사에 성급한 면이 있어서 가끔 어이없는 실수를 하곤 하지만, 그가 매 순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하고자 한다는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뭔가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 탓을 많이 한다. 그 남이라는 대상은 누군가일 수도 있고 혹은 상황이나 시스템일 수도 있다. 아주 큰 실수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가 내 잘못만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저런 외부적인 핑계를 말하기 전에 프랑소와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듯했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60세 동료의 업무를 대하는 한결같은 마음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일은 그 자체로도 신성하지만, 우리를 신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Photo by Pixabay)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관심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는 서점에 가보면, 회사와 직장생활에 대한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깔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만 봐도 직장이라는 키워드는 강력한 스테디셀러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는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거야 말로, 직장을 다녀도 안 다녀도 복불복이다. 


그래서인지 직장에 대해서라면 입사, 퇴사, 인간관계, 승진, 혹은 사내연애까지 뭐 다루지 않는 주제가 없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요즘엔 퇴사라는 키워드가 유행인 듯 보인다. 사회적인 트렌드라면 뭐 이의는 없다. 단지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퇴사나 전업 같은 극단적인 변화 말고 회사 생활에서의 기본적인 예의와 그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 신성함에 대해서 말이다. 


20년이 넘도록 직장생활 진행 중인 나 또한, 직장 안에서 삶의 많은 모습을 겪어왔다. 하지만 경험이 쌓여갈수록 무뎌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의 신성함이나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들이 관성에 밀려나 버리곤 한다. 그 와중에 쉽게 짜증을 내거나 타인을 판단하고 단정해버리는 꼰대 짓을 하기도 한다. 나를 세워서 돌아보지 않고 주변만 돌아보면서 이유를 찾을 때가 그렇다. 내가 60살이 될 때까지, 프랑소와처럼 진실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으려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뜨끔하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시간을 돌아보며 묻곤 한다. 오늘 하루가, 혹은 지난 일주일이 나 스스로에게 떳떳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중국에서 보내오는 시료가 2주일이나 연착을 하던, 예고 없던 연구실 정전 때문에 며칠씩 일정이 미루어졌든, 동료가 장비를 고장 내 먹었든 간에, 주어진 시간과 상황 안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지를 복기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이 고요히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그대를 향한 다정한 마음을 씁니다. 

- 파리제라늄_최서윤 -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쯤 마주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