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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패널 제조 회사

대화 없는 소통

by 최신글


한국에 돌아온 나는 집에 머물며 약 1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작가의 길에 다시 도전했다.

그리고 ‘미궁’이라는 소설을 집필해 인터넷에 올렸다.


‘미궁’은 심적으로 위로가 되어준 작품이었다.

하지만 수익창출에는 실패했다.

그래서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작가로서 더 많은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해외에서 일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우리 집과 가까운 회사를 찾아보았다.


마침 태양광 패널 제조 회사인 솔라그리드 (가명)에서 구매팀을 뽑는다는 공고가 사람인에 올라와 있었다.

나는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다.


합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상상을 해보자면,


1. 외국어 능력 ( 특히 중국어 )

태양광 산업 특성상 대부분의 원부자재를 중국에서 수입해 오기 때문에 중국어 실력이 필요했다. 나는 중국계 회사에서 중국어로 일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합격한 것 같다.

2. 대학에서의 전공

대학교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기에 합격한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최악의 선택이라 생각한 대학교와 전공이 내가 먹고사는데 도움을 준 것이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합격을 한 뒤,

입사일을 기다리는데 지역의 취업센터에서 솔라그리드의 회장님이 오셔서 특별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회장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궁금해서 특강에 참여했다.


회장님은 특강에서 솔라그리드에 대한 소개를 했으며,

인재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질문을 받았는데,

내가 손을 들었다.


당시 나는 심적으로 많이 피폐해 있었다.

인류의 성장과 발전을 꿈꾸지만,

카지노에서 본 세상은 마치 인류에 희망이 없어 보였다.

나는 상처 입은 어린 새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듯 간절했고, 절박했다.

그 간절함이 나를 손들어 질문하도록 만들었다.

나름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에서 성공한 사람인 회장님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했다.

그래서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큰 소리쳐 질문했다.


“안녕하십니까! 솔라그리드 예비 사원, 방랑자입니다!

회장님께서는 편안한 생활을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어려운 사업가의 길을 가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게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신념이나 철학에 기인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종교적인 믿음에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대충 이런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나의 질문에 청중들이 오~, 하고 감탄했다.

회장님도 나의 질문에 조금은 흥분하신 것 같았다.


그리고 답변하셨다.


“남자라면, 한 번 태어나면 성공을 해야지.”


대충 이런 답변이었다.


나는 실망했다.


회장님은 그저 남들보다 좀 더 똑똑하게 태어나,

남들처럼 성공을 지향하며 살아오신 분이었다.

좀 더 큰 이상을 꿈꾸실 분이라 기대했었는데.


나의 무반응에 분위기는 어색하게 변했고, 특강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뭔가 신입 사원으로서 잘못된 처사를 한 것 같았다.

회장님이 말씀하시는데 무반응이라니.

회사 생활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되었다.


내가 취업 센터에 찾아가 회장님께 큰 소리로 질문을 했던 소문은 이미 회사에 다 퍼져있었다.

솔라그리드는 300여 명의 임직원들이 일하는 나름 규모 있는 비상장 중소기업이었다.

그 회사에 나에 대한 소문이 다 퍼진 것이다.


입사를 하고,

나는 상무님과 이사님과 만남을 가졌다.


상무님은 웃으시면서 나 같은 캐릭터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그리고 왜 카지노를 그만두게 되었는지 물어보셨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는,


‘흙탕물에서 연꽃을 피워보고 싶었지만, 알고 보니 카지노는 구정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왔습니다.’


라고 답변했다.


나의 답변에 상무님은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시고는,

언제든지라도 좋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게 참 감사했다.


이사님과의 대화는 별로 기억에 남은 게 없다.

다만 이사님은 내 눈을 오래도록 쳐다보셨다.

나 또한 이사님의 눈동자를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굉장히 카리스마 있으신 분이셨는데, 나는 배짱 있게도 행동했다.

웃기지만 신입의 패기였다.


며칠 후,

나는 부장님을 따라 회장님께도 인사를 드리러 갔다.

특강 이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회장님은 별 말씀하지 않으시고 손을 내밀어 주셨다.

나는 얼른 허리를 숙여 회장님의 손을 붙잡았다.

짧은 악수였지만, 용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


여기서 잠시 시간을 내서 생각해 보자.

소통이란 무엇일까?

사람 대 사람 간의 소통,

누군가 인터넷에 올려둔 글로 하는 소통,

눈빛만으로 나누는 소통, 등.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소통을 하며 살아간다.


나는 여러 가지 소통 방법 중에 비언어적인 소통에 통달해 있었다.

말을 하지 않고,

상황의 분위기나,

타인의 얼굴 표정을 보거나,

상대방이 하는 말의 문맥을 통해 더 큰 의미를 상상하는 소통에 치우쳐져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누군가 ‘오늘 밥 먹었어?’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 상황과 말한 사람, 말한 사람의 표정, 말한 시간, 말투 등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통해 상대방의 진의를 알려고 노력한다.


이는 내가 상상력이 풍부해서 그런 것 일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자폐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나는 솔라그리드에 입사를 하면서 꿈을 꾸었다.

태양광 패널을 통해 에너지 혁명을 일으켜 인류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약 2 제곱미터의 태양광패널의 효율이 50퍼센트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20퍼센트 수준이었다.

이를 위해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구매팀원으로서 원가를 많이 절감하여 회사에 이익을 안겨줘 더 많은 R&D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입사 첫날부터 고군분투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막 입사한 정체 모를 신입에게 제대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업무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도 같은 구매팀 사수부터 업무를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나의 노력이 누군가의 눈에는 자신의 직업을 빼앗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존재를 좋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회사가 경영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도 회사는 나를 포함한 여러 신입 직원들을 뽑고 일할 기회를 주려고 했다.

감사하지만 조금 무모한 결정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를 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모종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표면적으로는 자발적인 퇴사지만 그 내면에는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회사 선임들이 내보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밥그릇 싸움이었다.


회사는 어렵고,

자신의 직장은 지키고 싶고,

그런데 내가 들어와 입사한 순간부터 눈에 불을 켜고 혁신을 외치니,

업무 협조가 될 리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회장님의 아들도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2세 경영을 준비하는 모양새였다.


그림이 재미있게 흘러갔다.


내가 입사를 할 때 계셨던 이사님과 상무님이 회사를 그만두셨다.

그리고 부장님이 이사님이 되셨다.


새로 이사님이 되신 분은 철학이 있으셨던 걸로 추측된다.

바로, 회사를 통해 보통 사람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주고, 보통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거였다.

정확한 건 알 수 없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당연하게도,

회장님의 아들은 그러한 새 이사님을 싫어한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회장님의 아들도 서류상 직책은 이사님이었다.


회사는 어렵지,

이사는 둘이지.


그림이 재미있게 흘러갔다.

물론, 그 상황에 처한 당사자는 죽을 맛이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 스스로가 두 이사님 사이에 껴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나의 말 한마디,

나의 행동 하나에 의미가 붙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나를 더욱 잘 관찰하기 위해 내 핸드폰을 해킹한 것 같았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내 핸드폰 카메라를 볼 수 있고,

위치도 파악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지급된 컴퓨터는 노트북이었다.

노트북에는 카메라가 달려있다.

그래서 누군가 실시간으로 내 모습을 관찰하는 것 같았다.

또한, 내가 보는 화면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증거는 없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그 상황의 분위기,

사람들의 행동, 말투, 표정, 등.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 받아들이는 느낌이 그랬다.

나는 폭풍의 눈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300명의 중소기업 회장이 된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모르겠다.

어쨌든 압박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상황이 즐거웠다.


한평생 아싸로서 타인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그런 걸까?

타고난 관종이라서?

꿈을 이루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던 성격상 조직을 운영할 수 있어서 그랬던 걸까?


아마도 모두 다 해당되는 것 같았다.


나는 폭풍의 눈으로서 힘겹게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죽은 친구 기철이가 매 순간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친구의 죽음을 마주한 나는, 단 하루를 살아도 후회없이 살고 싶었다.

죽어서 다시 기철이를 만난다면, 당당하게 웃으면서 만나고 싶었다.

'내가 비록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내 깜낭에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기철이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인류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새벽에 출근을 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당시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이라면,

퇴근 후 회사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는 것이었다.

산책을 하면 복잡한 마음을 털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30분 정도 산책을 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매일 2시간 정도 산책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나는 자진해서 패킹자재를 담당했었는데,

그중 목재 팔레트의 원가를 약 50퍼센트 절감했었다.

구매팀원으로서 원가 50퍼센트 절감이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숫자다.

이는 회사 사람들이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말과도 같았다.

물론, 증거는 없다.

그냥 내 추측이다.


내가 태양광 패널 제조 회사에서 비중이 작은 패킹자재에 뛰어든 이유가 있었다.


입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전체 회식을 했었다.

그때 왠지 모르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나에게 술을 먹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게 뭘까 궁금해서 주는 대로 술을 다 받아 마셨다.

그리고 꽐라가 되었다.



총무가 나를 부축했고,

부장님이 호통치듯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못 들은 척 행동했다. (사실 실제로도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제대로 듣지 못했다.)


회사 기숙사에 들어와 재킷만 벗어놓고 침대에 누웠다.

총무가 잠시 내 상태를 살피더니 재킷의 주머니를 뒤졌다.

그 안에는 내 핸드폰이 있었다.


다음날, 내 핸드폰은 내 회사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왜 내 핸드폰을 가져갔을까?

이유는 모른다.

나중에 돼서야 추측해 보면, 내 핸드폰에 어떠한 프로그램을 설치하려고 한 건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해킹프로그램 말이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핸드폰 잠금을 푸는 걸 몰래 본 부장님이 내가 산업 스파이는 아니었나 확인하려고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회사에 문제가 있다 판단했다.

그래서 회계팀 주임님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나는 우리 회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회사의 중책이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주임님은 이 말을 서울의 새 상무님께 전했던 것 같다.


무엇 하나 증명할 수는 없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그리고 그 느낌이 나에게 회사가 양분되어 있다고 말했다.


회장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

그리고 부장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


회사는 회사의 이익을 먼저 할 것이냐,

아니면 직원들의 복지를 우선시할 것이냐로 양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회장님의 아들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새로 이사님이 되신 부장님을 따를 것이냐로 나뉜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어느 편도 아니고 꿈을 쫓는 내가 들어왔다.

입사 전부터 회장님께 큰 소리로 질문한 나는,

순식간에 태풍의 눈이 되었다.



나는 회사란 혁신이 없으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끊임없는 혁신이야말로 회사가 영속하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그런 내 눈에 회사 사람들끼리 비밀리에 노조를 만든 것 같은 모습이 들어왔다.

자신의 업무를 권력화 하는 모습이 보였다.

부장님과 그 추종자들의 모습이었다.

나는 이들의 행동이 업무에도 연관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패킹자재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의 직감은 원가 절감 50퍼센트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놀랐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아무리 원가를 절감하고 노력해 봐도 이론적으로 태양광 패널의 효율이 50퍼센트가 나오지 않다는 거였다.

이는 실리콘을 기반으로 만든 태양광 패널의 한계였다.

문과이자 예술가 지망생이었던 나는 이를 몰랐었다.

태양광 패널 효율 50퍼센트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수많은 논문을 뒤적이고, 현업에서 일하면서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가 수리되면서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태풍도 점차 결말에 이르기 시작했다.

회장님의 아들과 이사님,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까지.

죽기 아니면 살기로 대립했다.

증거는 없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사님의 편을 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인류의 성장과 발전을 꿈꾸었다.

만일 태양광 패널의 효율 50퍼센트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차선책으로는 이사님의 철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이 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을 도구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진심으로 아끼는 분이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게 다 비언어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일종의 게임이자 내기였다.


그렇게 나는 태양광 패널 제조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회사 근처에 원룸을 잡았다.


내가 퇴사한 사실을 안 부모님은 실망했다.

어머니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체면을 먼저 생각했고,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부모님은 나의 안위나 생각에 관심이 없으셨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에 목메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인류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꿈을 가진 성인이었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육체와 정신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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