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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시티 카지노

저는 그저 흙탕물 속에서 연꽃을 피워보고 싶었다구요.

by 최신글

제주도의 호텔에서 퇴사 절차를 밟으면서, 나는 다시 외국어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람인에서 썬시티라는 카지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썬시티.

Suncity

太阳城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아무튼, 나는 지원을 했고, 몇 차례의 화상 면접을 보고 ‘케이지 캐셔’로 합격했다.


나를 합격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금 상상을 해보자면,


1. 만화 작가로서의 경험

화상 면접 때 이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았었다. 아마도 카지노 역시 예술이라 생각해서일까?

2. 외국어 능력 (중국어)

중국에서 살면서 배우고 체득한 중국어 실력과 중국 문화


위 두 가지 이유로 합격한 것 같다.

(취업에 하등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던 만화 작가로서의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썬시티에 지원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썬시티는 마카오 카지노 (정켓) 회사였다.

하지만 내가 일 하는 근무지는 베트남의 다낭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혹시 안 좋은 일을 당할까봐 걱정했다. (예를 들어, 인신매매 등)

하지만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호기심이 나를 외국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의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각종 증명 서류를 발급하고,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 다낭에 도착하니 회사 인사 직원 (베트남 사람)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녀는 나와 또 다른 한국인 합격자를 데리고 호텔로 갔다.


다음날,

첫 출근.

그렇게 나의 카지노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카지노 근무는 기본적으로 로테이션 근무다.

나는 케이지 캐셔로서 주간과 야간을 병행하며 근무했다.

주 6일 근무.

참으로 피곤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페이는 쏠쏠했다.

100 퍼센트가 넘는 보너스가 매 달 지급되었다.

총 월급이 대기업 초봉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가난한 예술가에서 순식간에 대기업 초봉의 월급을 받았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이기철.

아름다운 청년.

그리운 내 친구.


죽은 기철이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늘 고민에 빠졌다.


나는 하나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카지노에서 일하는 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일까?


단순 확률에 수억이 오가는 상황에 나는 허탈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변하길 희망했다.

신의 존재를 확신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사람들이 카지노를 떠나 가치 있는 일에 돈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실천도 했다.


내가 있었던 카지노 (정켓)에는 바카라 게임 밖에 없었는데,

바라카 게임에는 A게임과 B게임이 있었다.


A게임은 보통 게임이고,

B게임은 위험 분산형 게임이다.


나는 고객들에게 B게임을 권유했었다.

좀 더 안전하게 게임을 하라는 의미였다.

(물론, 이는 롤링업자들이 싫어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으니 구체적인 게임 룰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아무튼,

나의 독특한 기행은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들과의 의견 대립으로도 이어졌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직원들은 돈(현실)을 추구했고,

나는 이상(꿈)을 추구했던 것 같다.


베트남 다낭에 위치한 썬시티 카지노 정켓방에서 일한지 9개월 정도 되었을 때,

장거리 연애에 지친 나는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좋아한다고 고백한 여자한테는 차이게 된다.


카지노에 오는 겜블러들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카지노라는 흙탕물에서 연꽃을 피워보고 싶었지만,

카지노는 흙탕물이 아니라 구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곳에서는 아름다움이 피어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카지노에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사직서를 내고 퇴사 준비를 했다.

한 달 정도 퇴사 준비 시간이 흘러, 카지노에 입사한지 10개월만에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사다난했던 카지노에서의 삶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10개월이란 시간 동안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여행도 가고, 클럽에서 술도 마시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하지만 그 모든 세상적인 (혹은, 현실적인) 즐거움에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좀 더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즐거움을 추구했던 것 같다.


.


한국으로 돌아온 후,

한참이 지나서야 썬시티 카지노의 총수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썬시티가 문을 닫았다는 뉴스도 알게 되었다.


한때 마카오의 카지노계를 이끌던 썬시티가 한순간에 몰락하는 걸 보며,

인생이란 참으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구나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인생 앞에 겸손을 배운다.


DALL·E 2024-11-09 06.06.11 - A cinematic depiction of a male cage cashier working in the baccarat junket room of Suncity Casino. The scene portrays a luxurious and high-stakes env.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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