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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남의 좌충우돌 취업 분투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by 최신글

돈을 벌기 위해 3년간의 만화 작가 지망생 생활을 접고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를 뽑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당시 나의 스펙은 이러했다.

지방 대학교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거의 꼴지로 전공하고,

토익 920점,

신 HSK 6급,

직장 경험이 없는 30대 초반.


나는 전공과 외국어 능력을 살려 해외 영업 쪽으로 직장을 구하려고 했다.

조금 과장해서 1000개가 넘는 회사에 지원했다. 그냥 기계적으로 해외 영업 직무에 지원했던 것 같다.

재미있게도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회사가 해외 영업 직무에 예술가를 뽑으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그런 회사가 나타났다.

어느 벤처 회사였다.


나는 화상으로 면접을 보고, (화상으로 면접을 보는 회사다 보니 세련되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합격하여, 서울로 출근하기로 했다.

서울 원룸을 구할 돈이 없어서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는 한 달 정도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해프닝이지만,

나는 어떠한 이유에서 권위에 도전하고 싶었고,

마침 회사의 이사님이 내 멱살을 잡으셨다.

그래서 퇴사를 했다.

한평생 찐따로 살아와서 한 번쯤 권위에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걸까?

아무튼 그렇게 내 첫 직장 생활은 끝났다.


해외 영업 직무에 실패한 뒤,

나는 서울의 어느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앞으로 뭘 해 먹고 산단 말인가.


취업 알선 사이트를 뒤적거리는데 마침 외국어로 먹고 살 직업이 보였다.

호텔업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제주도에 그렇게 많은 호텔 관련 직업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특히 중국인이 많은 제주도의 특성답게 중국어 능력을 필수로 꼽았다.


나는 제주도의 호텔에 무작위로 지원을 했고,

한 호텔에 면접을 보고 합격하여 제주도로 이사를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호텔에서 3개월, 딱 인턴만 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웃기는 일이지만, 사실이었다.


이유는 이러했다.

나는 당시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년 저축 제도를 신청했었는데,

깜박하고 내가 지원을 하지 않아 그 제도가 취소되었다.


그 제도를 다시 신청하려면 퇴사를 한 뒤 재입사를 해야 했다.

그래서 퇴사했다.


호텔 측에서는 서류상으로는 퇴사 처리를 해줄 테니 호텔에는 계속 나오라고 권유했다.

일종의 편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며 그냥 퇴사를 했다.

예나 지금이나 대쪽 같은 성격이 있었다.


나는 퇴사한 김에 여러 직업을 찾아보았고,

그러다 카지노 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DALL·E 2024-11-08 21.09.01 - A humorous and cartoonish illustration of a man in his early 30s, wearing a slightly oversized business suit, looking perplexed while juggling a sketc.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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