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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담배, 가난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by 최신글

나의 어렸을 적 꿈은 만화 작가였다. 만화 작가라 하면 골방, 담배, 가난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웹툰이란 개념이 없던 시대였다.


부모님은 반대했다.


아직도 어머니가 하셨던 말이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걱정이 많아 아침에 밥도 먹지 않고 출근하셨다.’


지금도 그 말이 기억나는 걸 보면 어린 나에겐 충격이었나 보다.


나는 모질게 내 꿈을 쫓지 못했다.

아직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 시절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만화 작가를 하지 않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좋아하셨다.


세월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 생활은 늘 괴로웠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 아버지가 원하는 학과에 진학을 했으나,

자꾸만 떠오르는 잡생각에 학업은 뒤쳐지고,

좋아했던 여자들은 모두 다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나보다 뒤처져 보였던 아이는 대학교 4학년 때가 되니 나보다 앞서나가 있었다.


나는 성공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능력보다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림 재주도 없진 않았다.


이런저런 조건들을 조합해 보니 나는 만화 작가의 길을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모든 물체에는 관성이 있듯,

인생에도 관성이란 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내가 경영자가 되길 원하셨다.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때까지 경영자를 목표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인생을 한 순간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그것도 골방, 담배, 가난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만화 작가는 더더욱 힘들었다.


2013년.

대학교 4학년

세상이 변했다.

웹툰이라는 시장이 동트고 있었다.

기회가 열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인생을 바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게 고민하며 괴로워하는데 친구가 죽었다.


이기철.

아름다운 청년.

그리운 내 친구.


기철이의 죽음은 내 인생의 많은 걸 바꾸어 놓았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나는 기철이의 죽음을 통해 단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하면 후회 없이 살 수 있을까?


나는 어렸을 적 꿈이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만화 작가의 길을 걷기로 선택했다.


일단,

인터넷을 뒤져 현업 만화 작가들의 연락처를 구했다.

의외로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장문의 메일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냈고,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한 분의 만화 작가의 제안으로 문하생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교 졸업식에는 불참했다.

가고 싶지도 않았고, 문하생 생활로 갈 여력이 되지 않았다.


문하생 생활을 3개월 정도 하니,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은 깨우칠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년 동안 만화를 그렸다.


두 곳의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수익 창출에 실패했다.


골방, 담배, 가난.


이 셋 중에 골방과 가난은 해당되었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3년간 모든 걸 쏟아부었지만 나는 수익창출에 실패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 외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소득은 내적인 성장과 평안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살면서 불안해하지 않았고,

대인관계에서도 격이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내적인 성장과 평안은 먹고사는 데 영향이 미비했기에,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사회로 뛰어들었다.


무엇보다 작가로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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