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라
친구가 죽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는데.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보니 문자가 하나 있었다. 친구의 장례식이 열리니 참석하라는 문자였다. 모르는 번호였다.
누가 장난치나?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왜냐하면 하루 전만 해도 대학교 채플에서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이런 걸로 장난을 치겠나.
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최소한 그런 사람은 내 주위에는 없다. 애초에 주변에 친한 사람도 별로 없었다. 이런 걸로 장난을 칠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나는 문자를 발신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간의 발신음이 울리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남자였다. 자신을 이기철(가명)의 같은 팀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학교에는 팀단위로 학생들을 묶어서 관리를 했다. 남자는 그 팀에 소속된 동생이었다.
“기철이는… 어떻게 죽은 건가요?”
내가 물었다.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철이가 죽었다는 말이 워낙 믿기 힘들었기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집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좌회전하는 버스에 치여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나는 남자의 말을 듣고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턱 하니 자리 잡은 것 같았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해병대를 나온 기철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었다. 나도 한 번은 기철이가 태워준 오토바이를 타고 교내를 달려본 적이 있다. 오토바이의 엔진 떨림에 맞추어 내 심장도 요동쳤던 스릴만점인 경험이었다. 바로 그 오토바이가 기철이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장례식은 당일 오후에 열리기로 했다.
나는 오전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끝낸 뒤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혼란스럽고도 공허한 마음을 안고 장례식장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기철이의 죽음이 믿기 힘들었고, 마음 한구석에선 그가 살아있길 바라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장례식장은 채플 건너편의 별관 2층에 마련되었다. 그곳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맨 앞 중앙에는 기철이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나는 그제야 기철이가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나는 뒤쪽 빈자리에 앉았다.
장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기철이의 부모님과 담당 교수님, 같은 학부 후배, 팀 동생, 등이 나와 편지를 읽었다.
장례식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눈물이었을까.
죽은 기철이를 위한 눈물이었을까?
갑작스러운 주변 인물의 죽음에 놀란 마음이 흘리는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한평생 타인의 선택에 따라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후회 때문이었을까?
장례식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내내 그리고 하룻밤을 새서 기철이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를 쓰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같은 방을 쓰는 팀 동생이 물어보지도 못하고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날, 토요일에 나는 이미 전주로 떠난 기철이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내가 쓴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버스를 탔다.
결론적으로 나는 기철이의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다. 전주에서 열린 기철이의 장례식은 당초 예정과 달리 하루 만에 철수를 했다. 결국 나는 편지를 전해드리지 못하고 다시 포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대신 기철이의 부모님께 내가 쓴 글을 문자로 보내드렸다. 나중에 그 글은 기철이의 부모님이 기철이에 대한 책을 쓰실 때 함께 수록되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기철이의 부모님이 집필한 기철이의 책을 꺼내 본다. 젊은 청년이었던 기철이가 품었던 고뇌와 꿈을 마주할 때면 나는 다시 기철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철이를 그리워한다.
이기철.
아름다운 청년.
그리운 내 친구.
2024년, 올해로 기철이가 죽은 지 11년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기철이에 대한 그리움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이 글을 이제는 다시는 못 볼 아름다운 청년 이기철에게 그리움의 눈물로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