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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May 15. 2021

자가격리 5일차 - 주말이 시작됐다

회사 재택근무 없는, 주말 48시간의 시작!

 부쩍 날씨가 더워졌다. 지난 주말만 해도 얇은 자켓을 입어야 아침 밤으로 쌀쌀한 날씨를 견딜 수 있었는데 어제는 낮 기온이 30도를 넘길 정도의 더위가 찾아왔다. 창문을 열고 반팔 입으면서 재택근무를 하는데도 계속 땀이 났다.

 자가격리를 시작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진 회사 업무를 재택근무로 해야 하다 보니 자가격리인 것을 100% 실감하긴 어려웠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분이었고 이미 회사에서 격일 재택근무 체계를 적용한 지 꽤 오래됐기에 크게 적응할 게 없었다. 4일간 매일 화상회의 일정이 잡혔는데 만나는 분들마다 “괜찮냐” “집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구나. 답답하겠다.” 이런 심심한 위로를 건네받았다.

 거의 맨날 업되어있는 극 ENFJ인지라 쉽게 우울감을 느끼지 않는데 오늘 아침에 눈 떴을 땐 조큼 우울했다. 왜냐하면... 오늘과 내일인 주말엔 다 약속이 꽉 차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국에, 재택근무 일정도 들쭉날쭉 (월수금 출근 & 화목 재택이어도 급 화요일에 출근한 날이 생긴다거나 하는 식으로) 했기에 평일 약속은 굳이 잡지 않았다. 누가 회사에 출근할지 모르고 내가 동네 친구들과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니까 자연스레 평일 저녁엔 탄천 산책하거나 가족과 맥주 한잔 하는 정도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주말만은 약속으로 가득 채워 신나게 보냈는데. 오늘 그 주말이 시작된 거다.

 약속 취소하는 건 너무 간단했다. 카톡이나 인스타로 내 자가격리 소식을 친구들이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2주간의 주말 약속은 자연스레 취소되었다. 교환학생에서 만났던 친구 셋이서 오랜만에 (진짜 오랜만이었다!) 만나려고 했던 계획 취소.. 그리구 친한 동기 언니가 목동부터 분당까지 와서 같이 등산하고 막걸리 먹고 싶었는데 이 계획도 취소.. 그래도 나 정도의 약속 취소는 약과더라 (물론 남의 염병이 나의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도 있다) 이 2주 격리 시기 안에 본인 생일이나 여행이 잡혀있던 사람들도 있길래 이런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내 캘린더를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다행스레 여겼다.

 내 격리로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한 경우도 있었다. 어제가 대학 찐친의 생일이었는데 원래 우린 5명 모임이라 5인 집합 금지 하에 만날 수 없었다. 근데.. ^_^.. 내가 화요일에 격리에 돌입하면서 내 친구들 카톡방은 갑자기 불타올랐다. 그게 나에 대한 슬픔과 위로가 아니라 핫플을 찾기 위한 열정이었단 점이 조큼 씁쓸했지만..

 이 모임은 핫플에 관해서는 국내 상위 20% 정도엔 든다고 본다. 아, 사실 그중 1명은 국내 상위 5% 클래스 정도다. 이렇게 핫플을 좋아하고 맛집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그간 5인 금지령에 의해 각자 생활을 즐기고 있던 건데 내 격리가 이들을 비로소 다시 만나게 해 주었다. 찐친답게 내 자가격리를 아쉬워해주자마자 순식간에 어느 핫플에서 만날지 열심히 리스트를 짜고.. 열심히 예약 전화를 돌려보고 하더라.. (CL이 부른다. 나쁜 기집애...)

 이 정도면 약간.. 내가 함께하지 못하는 걸 5초는 위로해줬다고 보면 되는 거지? 핫플 리스트를 점검하고 어디가 가능한지 전화해보는 ㅋㅋ 내 친구들의 열정에.. 갑자기 내 격리가 조금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란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눈물 좀 닦고 올게 애드라.. 애드라? 듣고 있니 나 여기 있어..)

 그래도 애들이 너무 아쉬워하진 말란다. 주말에 비 오니까 테라스는 어려울 거라며. 주말인 지금, 진짜 날씨가 어둑어둑하고 5시부터 비가 온다네? 이게 내 눈물이야. 내 눈물로 난.. 그 정도로 너네랑 함께 하는 거라고 알아줘 (하트)

 이번 주말은 내내 흐리고 비옴. 다음주 월요일과 목, 금도 그렇던데 우리나라 날씨가 점점 동남아스러워지는 것 같다. 작년 여름에도 쨍한 햇빛이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낭패인 적이 많았는데 올여름도 만만치 않으려나보다.

 아, 그리고 어제는 성남시에서 보내준 자가격리 키트를 받았다. 이런 걸 구호 물품이라고 하던가? 사실 체온계, 소독제 등이 담긴 보건 키트보다는 더 기대했는데 역시나 언박싱하는 재미가 있었다.

 농협 하나로마트 큰 택배 상자 안에 먹을거리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안에 있던 물건들을 찬찬히 살펴보자면..

 요 정도? 키트를 보내주는 시마다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구성품은 대략 비슷하다. 햄, 김, 햇반, 라면 등. 수원시는 신라면 보내주던데 성남시는 진라면을 택했나 보다. 브랜드마다 다 시를 나눠 가졌을까? 기준이 무엇이었을까? 구성품이 워낙 다양해서 모든 걸 경쟁입찰에 붙이지는 않았을 텐데. 식품업계는 나름 마진이 쏠쏠할까? 아니면 국가에 납품하는 거라 거의 손해 보는 장사를 할까? 회사에 다니다 보니 이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 것을 보고 웃겼다.

 혼자 사는 건 아니라 끼니가 걱정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많은 음식들이 담긴 박스를 현관문 앞에서 주워오니 산타클로스로부터 선물 받는 기분?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겐 이 구호 물품이 든든한 힘이 되겠지만- 모두에게 이렇게 지급된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세금이 만만찮게 들겠다 싶었다. 나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은 어느 수준이어야 할까?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환경과 각기 다른 사정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는 게 모두에게 합리적일까? 누구든 정치에 대해 한마디 하긴 쉽지만 막상 전 국민의 삶과 관련된 아주 사소한 것부터 아주 거대한 것까지 의사 결정하는 게 쉬울 것 같지 않다. 자가 격리하니까 아주 시간이 많아서 내가 대통령이 되어봤다가 공무원이 되어봤다가.. 이런저런 공상을 할 시간이 많아지는구먼?

 엊그제 갑자기 동기로부터 배달의 민족 쿠폰을 선물 받았다. 우울해지지 않게 맛있는 거 챙겨 먹으라며, 많이 넣진 못했다며 선물을 보내주었는데 마음 한켠이 찡하더라. 친구의 센스가 너무 고마웠다. 안 그래도 매일 배달 앱을 확인하면서 뭘 먹으면 좋을까 고민하는데 이런 나를 생각하며 준 선물이라는 점이 더 감동적이었다.

 오늘은 이 쿠폰으로 물회를 시켜먹어야겠다. 며칠 전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물회 먹방이 떠서.. 진짜 홀린 듯 봤는데 오늘은 꼭 물회를 시켜먹겠다. 근데 신기한 건, 자가격리를 하면서 칼로리 소모가 너무 적기 때문에 최대한 덜 먹으려고 하는데 아침~점심까진 별 식욕 없다가 저녁 7시 이후부터 갑자기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진다는 점? 왜지? 사실 어제 저녁에 물회가 미친 듯이 먹고 싶었는데 오늘 낮이 되니 딱히 당기는 메뉴가 없다. 이러고 오늘 저녁에 또 식욕이 확 끌올 되겠지? 조심해야지.... 격리 끝나고 오랜만에 출근했는데 다들 ‘엇..저 친구가 풍성한 자가격리 타임을 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슬플 것 같다.

 그래도 토요일 오전에 브런치 글을 쓰니까 시간이 쭉쭉 잘 간다~ 평소엔 귀찮아서 글을 잘 쓰지 않았는데 심심하니까 하고 싶던 일들을 하나씩 찾아서 하게 되네.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인데 누구랑 대화를 하지 못하니까 그걸 글로 해소하나 보다 ㅋ_ㅋ 굿굿!! 말보단 살짝 덜 재밌는데 글도 나름 재밌다! 오늘의 일기도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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