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디지털 대전환, 그리고 팬데믹,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우리를 덮치고 있다. 피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변화의 길목에서 우리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깜깜한 밤길처럼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나만 뒤처질 것 같다. 빨리 뛰어도 세상의 변화보다 더 빨리 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길에 앞으로 나아가려면 전조등이 필요하다. 아마 변화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전조등 역할을 해줄 것이다. 격변의 흐름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 현재 무엇이 중요하고 미래에는 무엇이 중요할까.
필자는 교육, 과학, 문화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이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교육(Education), 과학(Science), 문화(Culture), 즉 ESC 4.0은 무엇이고 왜 중요할까.
항간에 떠도는 퀴즈 중 ‘당신 회사의 디지털 전환을 이끈 것은 누구일까요?’라는 문제가 있다. 정답은 CEO도 CTO도 아닌 코로나19다. 코로나19로 대면 활동이 제한되면서 의도치 않게 디지털 대전환이 가속화되었고 4차 산업혁명의 진행 속도도 더 빨라진 것이다.
이제 디지털 대전환, 4차 산업혁명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문제는 대격변의 시대에는 변화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1977년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는 현대를 사회를 주도하는 지도원리가 사라진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라고 규정했다. 과거처럼 확신에 찬 경제학자나 자본가, 사회주의자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시대라는 것이다.
지금이 딱 그런 시대다. 4차 산업혁명의 미래도, 코로나19 팬데믹의 미래도 불확실하고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이 뭔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변화는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자칫 머뭇거리다가는 도태되기 십상이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하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불안해지고 그래서 ‘포모증후군(FOMO Syndrome)’이 만연하는 것이다.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인 포모는 자신만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 같고 자신만 변화의 흐름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 같은 일종의 고립공포감을 말한다. 남들은 다들 주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남들은 다들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는데 나만 안 하는 것 같아 불안하고 두렵다.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이 결국 빚투를 낳고, 영끌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변화에 대한 불안감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변화를 직시하면서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통찰력 있게 해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이 변화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당장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파도다.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해류나 심연이 보이지는 않는다. ‘아날학파(Anales)’를 이끌었던 역사학의 거장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에서 역사를 삼층 구조의 바다에 비유했다. 바다 표면에는 끊임없이 찰랑대는 파도가 있고 그 밑에는 해류의 흐름이 있으며 이보다 더 밑층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심해의 물이 있다.
단기적 시간에 나타나는 사건사로 구성되는 미시적 역사는 파도 같은 것이고, 물질생활, 경제 주기로 나타나는 주기변동의 역사는 해류 같은 것이다. 또 모든 세기에 걸쳐있는 구조사, 즉 장기지속의 역사는 심해의 물이라고 할 수 있다.
브로델의 통찰력 있는 설명처럼, 역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변화들도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과 사고 등 미시적 변화에만 주목하지만 사실은 주기변동적인 경기 변화나 구조적인 흐름이 훨씬 본질적이다. 눈에 보이는 물결만으로 해류를 설명할 수 없고 해류를 갖고 심해를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시대적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도도한 변화에서 무엇이 파도고 무엇이 해류며 무엇이 심해일까. 필자는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들, 신기술 개발 같은 것이 파도고, 산업과 경제의 변화가 해류이며, 그리고 심해 기저에 잔잔하게 흐르면 변화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바로 교육, 과학, 문화라고 생각한다.
교육과 과학, 문화는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과정에서 오랜 시간 동안 견고하게 사회를 떠받쳐왔고 인류 지성을 빚어온 근원적인 힘이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고 과학은 세상을 밝혀 온 지식이며 문화는 인류의 정신이다. 이 셋은 모두 근본적인 가치를 지향하고 있고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변화의 시기일수록 교육, 과학, 문화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고, 그래서 ESC 4.0이 중요한 것이다.
이글은 디지털투데이에 실린 필자의 칼럼입니다.
출처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http://www.digital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