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다음 의료-선택

30. 길잡이나 안내서가 없습니다.

by 최윤재

오귀스틴은 나이가 아흔두 살이며 양로원에 산다. 일과 시간은 전혀 변화가 없고 자유시간은 이름뿐이다. 아침에 눈뜨면 텔레비전 앞에 와서 앉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얼굴엔 아무 표정이 없다. 오귀스틴은 가벼운 중독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왔다. 방 안 탁자 위에 꽂혀 있던 튤립을 먹어버린 결과였다. 몇 시간 동안 꽃들을 쳐다보다가 결국 먹어버리다니.


응급실 의사 파트릭 팰루(Patrick Pelloux)는 그 엄청난 권태의 무게를 가늠해 보려 애씁니다(197). 프랑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기쁨(joie de vivre)이라고 합니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 경계에 위치한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 지방은 수 백 년 전부터 이어진 분쟁으로 양나라에 번갈아가며 편입되는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계속 국적이 바뀌어온 이 지방 주민들이 스스로 프랑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독일인과 달리 삶의 기쁨을 이해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건강에 나쁘다고 기름기 있는 음식이나 포도주는 금지되고 약만 한 움큼씩 먹으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살아가는 삶을 늘리는 것은 전혀 환영받지 못합니다. 팰루는 수명 연장이 과학적인 성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삶의 질 향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힘들여 연장한 수명을 처치 곤란한 짐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롤 모델이 없는 첫 번째 세대는 영생은 고사하고 늘어난 수명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습니다.


길잡이가 없습니다.

영화배우 제인 폰다(Jane Fonda)는 인생의 제3막에 관한 책, 프라임 타임 (Prime Time)을 쓰면서 지적했지요.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도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첫 번째 세대다. 그래서 우리에겐 길잡이나 안내서가 없다. 겁나는 일이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 총리도 89세에 일과성허혈발작으로 입원한 일이 있습니다. 이후 완전히 회복되어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공직에 복귀하는 것이 가능한 지 상담을 받은 담당 의사의 말도, 그 나이에는 따라가야 할 롤모델이 없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작가 사노 요코의 이야기도 같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아침밥을 먹을지 스스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198)


롤모델 없이 사는 세대는 세상을 뜰 때도 길잡이가 없습니다. 근위축증 친척이 힘겹게 세상을 뜨는 것을 본 사토 아이코는 의학이 더 진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합니다. ‘어떻게 죽음과 싸울까’가 아니고 ‘얼마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순조롭게 죽을까, 어떻게 죽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싸울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야만 하는 세상이 오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각자도생 각자도사, 이제 각자 살 길을 찾는 것처럼 세상을 떠나는 길도 각자 찾아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무리스럽지 않고 편안한 느낌인데, ‘자연스럽다’고 하려면 인공적인 개입은 모두 배제되어야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떠먹여 주는 음식, 사람이 만든 약, 각종 의료 기기의 보조는 받지 말아야 할까요. 노안 안경, 임플란트, 인공관절은 자연스러운가요. 임종이 가까워도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약은 계속 복용합니다. 심장이 멎기 직전에도 정맥관이나 위루로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숨이 멎어도 심박조율기는 계속 작동합니다. 이미 자연에서는 멀어졌습니다.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는 지를 결정하는 게 관건이지요. 사토 아이코의 바람처럼 의학이 진보를 멈출까요.


혹시 알고 계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항해하고 이스터 섬을 찾기 전에 태평양에서 사라지는지? 우습지 않나요?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 영광을 위해서? 영생을 위해서? 아니면 단지 호기심 때문에? 아뇨, 바로 광기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제 인간은 화성까지 갈 수 있게 됐죠. 절대 멈추지 않을 겁니다(199).

막스 플랑크 연구소 진화유전학부서의 스반테 파보(Svante Pääbo)는 육지가 보이지도 않는 바다를 건너기 시작한 것은 현대 인류뿐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유인원들을 제치고 지구를 장악하게 된 이유가 현대 인류의 광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화성까지 끌고 가는 광기로 게놈을 연구하고 뇌를 컴퓨터에 연결합니다. 스티븐 슬로먼(Steven Sloman)과 필립 페른백(Philip Fernbach)은 사람들이 스스로 많이 안다고 자만하고, 이런 착각이 새로운 땅에 들어설 자신감을 불어넣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용감한 무지가 위대한 성공을 낳았습니다. 존 F. 케네디가 1961년 미국인이 달에 안전하게 착륙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은 착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자만심에서 나왔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200).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학자들에게 왜 일을 하느냐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질병을 치료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답 할 거라 합니다(201). 광기든 착각이든 인류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입니다. 의학의 진보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다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신 놀음(playing God)이라는 비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수명을 늘리고 유전자를 교정하고 죽어가는 과정을 한없이 늘려가는 것으로 이미 인간은 소위 신의 영역을 넘어섰습니다. 삶은 의료화(medicalization) 되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진찰을 받고 필요하면 태내에서 수술도 받습니다. 제왕절개로 출생시간도 조절합니다. 좋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날 수 있도록 역술원에서 받아온 시간에 제왕절개 수술일정을 잡는 것은 얘깃거리도 못 됩니다. 심지어 맞춤 아기(designer baby)를 기대합니다. 평균보다 뒤처져 자라면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아서라도 ‘정상’ 키로 자라도록 합니다. 안녕하지 못한 심리상태는 약물로라도 평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노화는 멈추거나 적어도 천천히 진행되도록 해야 합니다. 먹지 못하면 위루를, 숨 쉬지 못하면 인공호흡기로 보조합니다. 모든 과정에 개입하면서 막상 죽는 순간은 인간이 손대면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까요. 온전히 자연스러운 죽음이란 이미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어디까지 데려갈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고 해서 다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 발전으로 가능해진 시도가 모조리 세상에 나온다는 상상만 해도 두렵습니다. 더 두려운 것은 점점 벌어지는 사회 구성원 간의 간격입니다. 망가진 사회안전망은 평상시에는 연결되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위기가 닥치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소외된 취약계층부터 망 아래로 추락합니다. 기상 이변이 잦아지면서 재해 난민도 늘어납니다.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갑자기 내린 폭우로 익사하거나 고온에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인구 다섯 중 한 명은 70세 이상의 고령자인 일본에서 이런 피해자는 대부분 70세 이상 노인입니다. 자녀는 멀리 살고 부부만 혹은 독거로 살던 노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대피할 능력이 없는데 도와줄 사람도 기관도 없는 상황이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COVID-19 팬데믹으로 거리 두기가 계속되자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해 살아가던 사람들은 그대로 버려진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감염된 환자가 나오면서 코호트 격리가 된 요양병원에 말 그대로 ‘갇힌’ 환자와 가족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기술의 발달은 수명을 연장시키고 능력을 강화시킵니다. 그러나 혜택은 균등하게 돌아가지 않고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멀어집니다. 벌어지는 사회의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의료의 중심은 환자에게로 이동합니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안전하게 환자 중심 의료가 자리를 잡기까지는 안전망이 필요하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는 적절한 제동 장치가 필요합니다. 죽어가는 과정은 점점 늘어납니다. 자연스러운 죽음이란 이미 쉽지 않습니다. 말년의 삶이 표류하지 않고 바라는 대로 생을 마치려면 고민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죽음에 대한 논의가 터부시되는 사회에서는 편안한 마감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을 가는 노년층은 롤모델이 없습니다. 이들이 어렵게 만들어가는 길이 다음 세대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197. Pelloux P. 환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프로네시스; 2008.

198. 사노 요코. 사는게 뭐라고: 마음산책; 2015.

199. Kolbert E. 여섯번째 대멸종: 처음북스; 2014.

200. Sloman S, Fernbach, P. 지식의 착각: 세종서적; 2014.

201. Harari Y. 사피엔스: 김영사; 2015

작가의 이전글마주하는 다음 의료-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