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유녕아 너희 집 너무 좋다.”
유녕 집에 놀러 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하고 기분 좋은 향이 콧속을 가득 채우고 몽환적인 음악이 몸을 흐느적거리게 만들었다. 오른 한쪽에는 낮은 테이블과 그 위에 방을 은은하게 노랗게 밝히는 스탠드 조명이 있었다. 그 뒤로 넓은 창이 있었고, 창가에는 화분들과 소품들이 놓여 있었다. 왼쪽 벽면에는 책상과 책꽂이가 있었고 책꽂이에는 마음, 영성, 명상 관련 책들이 꽂혀 있었다. 바닥에는 방석이 깔려 있었다. 원룸이 아닌 명상원 같았다.
나는 입식 위주의 생활을 해왔다. 침대, 소파, 의자 등 가구 위에 궁둥이를 대고 지내왔다. 그래서인지 좌식 생활을 위주로 꾸며 놓은 유녕의 방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유녕네서 하룻밤을 보내며 맛있는 식사를 위해서 식탁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소파가, 숙면을 위해서 침대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유녕은 자기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이상하게 방에서 잘 안 있게 되었는데. 유녕네 있으면 명상도 요가도 독서도 다 잘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내 방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화장대, 침대, 에어컨, 책상, 서랍, 붙박이장 모두 내가 직접 고른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학교 다녀오면 집에 가구가 새로 생겨 있곤 했다. 엄마가 골라서 배치한대로 살고 있었다. 나만의 공간에 나만의 취향이 온전히 담겨 있지 않았다.
유녕네 보다는 방은 작지만 그렇다고 엄청 작은 건 아니었다. 양 벽을 빽빽하게 둘러쌓고 있는 가구로 방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가구와 가구 사이에서 빼꼼 하게 드러난 바닥을 보고 있으니 답답했다. 가구를 다 치우고 싶었다. 침대를 치울까? 그러기에는 침대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너무 아까웠다. 책상은 공부해야 하고 화장대도 필요하고. 그렇다면 내 몸통의 6배만 한 옷 서랍을 치우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지 싶었다.
서랍에서 옷을 다 꺼냈다. 애지중지하던 옷들이 애물단지처럼 보였다. 옷들을 버리고 나눔 하고 남은 옷은 붙박이장에 쑤셔 넣었다. 그리곤 서랍을 서재에 가져다 두었다. 침대와 책상 위치도 바꾸어서 모든 가구를 창문에 다 붙여버렸다. 방바닥에 궁둥이 붙일 공간이 넓어졌다.
“저 서랍은 네 방하고 잘 어울리는데 왜 저기에 두었어.” 엄마가 말했다.
“엄마 저거 너무 자리 차지해서. 방을 넓게 쓰고 싶어.”
“그렇다고 저 덩치 큰 거를 왜 서재에 둬.”
“저 덩치 큰 거를 내 방에 두기 싫어.”
내가 사다 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사다 둔 건데. 그래도 10년 넘게 잘 쓰긴 했지만.
넓어진 바닥에서 좌식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방석과 은은한 빛을 비춰 출 스탠드를 구매했다. 인센스 스틱도 구매해서 피우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한층 고요하고 차분해졌다. 쿠션에 앉으면 명상하기도 잘되고 책도 더 잘 읽힌다. 분홍색 바탕에 흰색 꽃무늬가 그려진 벽지를 흰색 벽지로 덮어버리고 싶고, 짙은 갈색 침대, 흰색 화장대, 황토색 책상의 색 조합도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훨씬 넓은 바닥이 보이는 새로운 방이 꽤 맘에 든다. 요가 매트도 방에서 쫙 펼쳐서 그 위에서 손 다리를 어느 방향으로 뻗어도 가구에 닿지 않는다.
그렇게 내 공간에 내 취향이 담기자 웅크려 있던 또 다른 취향이 터져 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 실은 하고 싶었는데 미뤄왔던 일이 펼쳐지게 되었다. 방구석에서 온라인 스토어를 오픈하게 된 것이다. 내가 좋아하게 되어버린 물건을 판매하고, 쿠션에 앉아 제품을 포장하고, 그와 어울리는 액세서리도 직접 제작하게 되었다.
이제는 방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앞으로 더 궁금해진다. 내 공간에서 어떤 나만의 취향을 담을 수 있을지. 또 어떤 즐거움을 채울 수 있을지.
김민철 작가님의 하루의 취향을 읽고 쓴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