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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Seattle May 23. 2020

부모 대 부모: 딸의 입시 스캔들

거짓말 같은 진실

알려지지 않은 입시 부정에 연류된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 동네 공원에서 휘리릭 쓴 교통안전 캠패인 글로 도지사가 주는 작은 상을 받았다. 몇 년의 외국 초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제한된 어휘로 쓰려니 세련된 내용은 못 쓰고 자동차를 의인화한 에피소드 3개를 일기처럼 엮어서 제출했다. 장려상이었던가? 한국에서 받은 첫 상이라 감지덕지했던 기억이 난다. 몇 달 후 아침 라디오에서 내 글이 읽혀졌다. 무려 전국 글짓기 대회 1등. 다른 아이 이름이었지만 처음 3개의 에피소드는 어눌했던 필체까지 정확히 내 것이었다. 마지막에 재미 없는 에피소드 하나가 더해졌고 라디오 아나운서가 '어린이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독창적인 시각'을 칭찬했던 것은 기억난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어린이가 남의 글을 홀랑 배껴 겁 없이 전국 대회에 출품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이 탓이 아니다. 체계적인 스펙 쌓기 팀의 양심 없는 전문가들과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는 도덕성 즘은 쉽게 팔아 먹는 파렴치한 부모의 합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죄 없던 아이는 자신의 부모와 비슷한 부모가 되 있을 확률이 높다.


나의 부모님은 이 일을 바로 잡기 귀찮아하셨다.처음에는 내 말 자체를 안 믿었고 내 글을 읽어보시고는 '그닥 잘 쓴 것도 아니구만. 누군가 뇌물을 먹었네. (억울한 와중에 객관적으로 나도 동감했던 바다)'. 내가 진실을 밝혀야한다고 몇 일간 끈질기게 주장하자 결국 화를 내어 입을 막아 버리셨다.


내가 딸인 것도 작용했다. 부모님의 최종 목표는 내가 일류 남편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너무 스펙이 좋으면 곤란했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적이 지나치게 잘 나올 때면 복잡한 표정을 지으셨다. 부모님끼리 '저러다 서울대 법대라도 가면 xx(내 사촌언니)처럼 노처녀 되는 지름길인데...'라고 한탄하는 소리도 들었다. 결국 나는 게으른 천성과 산만한 관심사로 인해 사촌언니와는 퍽 다른 길을 걸어 왔다.


미국에서는 입시 관련 부정으로 발각되면 거의 재개가 어려운 처벌을 받는다. 두뇌가 비상한데다 성실하기까지 한 미국 친구에게 너라면 HYPS(하버드-예일-프린스턴-스탠포드)에서도 날고 기었을텐데 그가 졸업한 대학(명문이지만 10위권)에 간 이유가 있냐고 물었을 때 그 친구가 해 준 말이 있다. 자기는 중학교 때 반 친구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자기 시험지를 보여준 것 때문에 이름이 입시 블랙 리스트에 올라 정규 대학을 못 가는 줄 알았다고. 자기 인생을 구할 기회를 준 모교에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시부정은 늘 있는 일이다. 다른 점이라면 내가 당한 류의 부정이 발각될 시 그 부모가 구속된다는 것? 그러니 이런 엄격한 무관용 원칙(zero-tolerance policy)을 뚫는 부모의 이기심을 제어하기란 인류의 난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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