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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Apr 24. 2024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내 몸은 무너졌다.

늦은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거의 한 달을(혹은 그 이상) 감기를 달고 샆았다.

이번 감기는 독해서, 약 없이 버티기는 어려웠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목에 좋다는 ‘도라지+배’즙 마셔봐도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한번 시작된 기침은 배가 아프도록 계속되었다.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잠잠해질 줄 알았으나 어림도 없는 소리.      

동네 의원에서 주사를 맞아도 그 때뿐. 

그래, 이럴 때는 그냥 약에 취해 기절하는 것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약을 독하게 처방하기로 소문난 병원을 찾아가서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회 복용량으로 알약이 한 웅큼인 약을 지어오기도 했다.      


약 덕분인지, 때가 되어 나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3월에서 4월로 접어들자 감기는 조금씩 괜찮아졌다. (물론 지금도 갑자기 밤기침을 한다. 가래도 조금 남아있다. 그래도 살았다. 죽는 줄.)     




1월 중순쯤에 발목을 다쳤고, 2월 중순에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3월에 감기를 앓았다. 

그때부터 내 몸에 쏟아부은 항생제며, 소염 진통제를 생각하면 내 몸의 피가 약이라고 해도 믿겠다. 

타고난 체질인지, 나이가 들면서 바뀐 것인지 그것의 근본은 알 수 없지만 나는 항생제나 진통제가 몸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몸이 붓는다. 주먹을 잼잼 쥐는 것이 불편할 정도라 남들은 몰라도 나는 금방 알아채게 된다. 

그리고 그대로 살이 된다. (물론, 먹기도 많이 먹었겠지.....)     


어쨌거나 나는 지금 토실토실 살이 쪘다. 우리의 국민판다 푸바오는 다른 판다들보다 얼굴도 크고 팔다리도 짧고 뚱뚱해서 귀엽다고 하던데, 40대 무명작가(혹은 호소인) 최작은 살이 찌면 안 귀엽다. 

(사실 비슷한 점이 많은데 푸바오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나의 뽀얀 뱃살에는 네 군데의 소심한 칼빵이 원래 있던 것의 부재를 알려주고 있다. 그 중 한 곳은 아직도 새살이 다 차지 않았다. 그리고 수시로 가렵다.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무심코 배를 긁다보면 손이 닿은 곳이 그곳이라 흠칫 놀란다. 내가 모르는 몸 속 어딘가에서 세포들이 피흘리며 애쓰는가보다. 

그렇듯 숨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면서 원래 있던 것이 사라졌음에도 나의 복부는 그 전보다 더 통통해졌다.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위엄과 위용을 뽐내는 중이다.    

 

발목은 아마도 초기 치료가 망했나보다. 아직도 걸을 때 시큰시큰 아프고 책상다리로 앉아있다 보면 눌린 부위가 눈물이 질끔 나게 아프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별로 새로울것도 없다.

그저 뚱뚱하다는 이야기. 아팠다는 이야기.

그래도 뭐,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오늘 비가 오려고 했는지, 어제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 나무에 꽃이 피면 참 예쁜데 어느새 연두연두하더니 곧 초록이겠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내 몸은 무너졌(흘러내리는?)으니 조금씩 운동이라는 것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다 발목이 아파서 뜻하지 않게 (나만 알도록) 절뚝이며 걸었는데, 어쩌면 이토록 나를 닮았나 싶어 비싯 웃음이 났다. 사실 가까운 이들일수록 나의 휘청임을 잘 모를때가 많다. 속편하게 글이나 쓰고 사는 줄 알지. 매순간 마주하는 좌절과 맥빠짐, 지독하게 쪽팔린 현실은 모르지. (사실 당신들까지 알면 안되지.)


때론 위로라도 받고 싶어 종알거리고 싶다가도 말을 삼킨다. 

나도 적잖이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타인의 결핍이란 재미는 없고, 얕은 흥미만 부르는 이야기 아니던가. 

여기선 왜 쓰느냐.. 나 누군지 모르잖아요. 세상에 40대 최씨가 얼마나 많은데. 

아무튼 절뚝이는 것을 나만 알면 됐지, 알아 달라 울부짖을 것은 없지 않나. 

는 내내 절뚝임을 감추고, 뒤뚱거림을 감추고 꼿꼿한 척 살란다. 진짜로 꼿꼿해질수도 있겠다.      



문득 둑이 차올라서 때때로 할 말이 넘치는데, 그냥 문을 닫자.

무거울 것은 몸이 아니라 다른 것이더라. 

두툼한 것은 뱃살보다는 통장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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