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력형 천재 vs 타고난 천재
“아들아, 넌 계획이 다 있구나?”
2019년 전 세계를 뒤흔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은 계획에서 출발해서 무계획의 대혼란을 거쳐, 다시 계획으로 끝난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다루면서도 수많은 은유를 담고 있는 이 영화의 감독, 봉준호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완벽주의자다. 나는 이 영화가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나,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을 때도 아닌 그 이후에 공개된 각본집과 스토리보드를 보고 제일 크게 놀랐다. 손가락 움직임 하나까지도 계획한 이 사람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떤 판이 짜여 있을까?
영화 기생충을 무려 3번이나 보고, 각본집과 스토리보드를 읽었다. 마치 영화를 4번째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그것은 촘촘하고 치밀하게 짜여 있었다. 완성된 영화와 다른 부분은 기껏 해봐야 1~2컷 정도였고, 인물들의 동선, 표정, 손가락 위치까지도 철저한 계획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이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그것을 위해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 새삼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노력형 천재란 그를 두고 하는 말이지 않을까?
봉준호 감독의 이 뛰어난 노력의 감흥을 지니다가, 우연히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변 호텔』(2018)을 보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언제 어디서 보든 혼자 낄낄거릴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감독 영화의 매력이다. 그 어느 영화에서도 드러내지 않은 캐릭터를 가감 없이 보여준달까. 현실적이기도 하면서 비현실적이기도 한 그런 캐릭터들이 우습고 재밌다.
애초에 있지도 않겠지만, 홍상수 감독의 미리 짜인 각본과 스토리보드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홍상수 감독은 촬영 당일 아침에 그날 촬영분 시나리오를 쓴다. 그리고 촬영 중에 고치기도 한다. 그에게 내일은 없다. 오늘만 있을 뿐이다. 내일 촬영분 시나리오는 내일로 미룬다. 다행인 것은, 무계획의 시나리오는 산으로 가지 않는다.
숲을 보며 철저한 계획된 판을 짜는 봉준호 감독, 그리고 순간에 집중하며 나무를 촘촘히 심으며 숲을 향해 달려가는 홍상수 감독. 이 두 감독 중에 과연 누구를 더 천재라고 할 수 있을까? 각자의 취향 차이이겠지만, 나는 두 감독의 영화를 모두 좋아한다. 카메라 앵글이며, 음악, 배우들의 동선까지 잘 차려진 밥상을 보는 듯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치밀해서 좋고, 밑도 끝도 없는 줌(zoom)을 들이밀며 뱉고, 성의 없게 마구 사인펜으로 휘갈겨 쓴 것 같은 크레딧 글씨로부터 느껴지는 대충 그까짓 거 느낌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가볍고 그냥 웃겨서 좋다.
『기생충』의 계획이 있는 아들 기우(최우식)는 영화 중반부에 아버지(송강호)에게 계획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에 대해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노 플랜.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되거든, 인생이.”
이 대사를 만든 봉준호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계획을 세워 만든 작품으로 실패하지 않았고, 노 플랜으로 그저 하루를 열심히 사는 홍상수 감독도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는 데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냄에 있어서는 실패하지 않았다.
『기생충』의 계획 없는 아버지가 홍상수라면 마지막까지 야심찬 계획을 꿈꾸는 아들 기우는 봉준호다. 그리고 난 그 아버지와 아들의 다음 계획들을 모두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