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뉴욕

1월 1일의 해장 in 뉴욕

술 셔틀 in 뉴욕

by Eugene

떡국을 석션했다. 그것도 뉴욕에서. 절친의 집도 아닌, 절친의 친구 집에서.


2015년 12월 26일, 3년 반 만에 뉴욕에 방문했다. 크리스마스가 막 지나고 연말연시를 준비하고 있던 뉴욕시는 그야말로 바쁘고 반짝이던 시기였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그 도시에 보름간의 여행은 잔인하리만치 짧은 시간이었다.


뉴욕의 사계절은 좋아하는 순서를 매기기 어려울 만큼 매력이 제각각 다르다. 봄은 종이봉투에 캔맥주를 싸서 몰래 공원에서 마시기 좋은 계절이고(뉴욕은 실외에서 알코올 섭취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라벨 가리기 신공으로 언제부턴가 종이봉투를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여름은 밤늦게까지 펍 테라스에서 생맥주 마시기 좋은 계절이고, 가을은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텀블러에 든 와인을 마시기 좋은 계절, 그리고 겨울은 무릎까지 쌓인 눈을 바라보며 위스키나 소주를 마시기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누가 보면 술꾼인 줄 알겠으나, 주종을 불문하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시뻘게지는 귀여움을 장착한 나다!)


아무튼, 2015년의 끝과 2016년의 시작이라는 뉴욕의 겨울을 뜨끈한 술과 함께 즐길 수 있게 된 건, 당시 조교로 일하고 있던 학교에서 지원한 학술 탐방에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이 공모에서 나는 비행기 값과 숙소비 일부를 받았다. 공짜로 가는 여행이라 그런지, 설렘은 두 배가 되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곳들을 다시 갈 수 있음에 두근거렸다.


2015년 12월 31일, 뉴욕에 사는 친구,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여행을 온 친구 커플과 함께 맨해튼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밤 10시쯤 만났다. 이 친구들은 내가 뉴욕에 머물던 3년 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해 왔기에, 그 누구보다 새해를 같이 맞는 것이 당연했다.


10시 반 경, 주문한 음식들과 샴페인이 나왔다. 천천히 이야기하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12시에 그 레스토랑에 있는 모두와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우니, 한 잔 더 해야지~”라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앞다투어 말했고, 근처 펍에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취중 탁구를 쳤다. 다들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많이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자, 친구 중 한 명이, “데낄라 한 잔, 콜?”라고 말하며 내 입에 데낄라를 털어 넣었다.


‘와우~ 뭐지? 식도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느껴지는 이 느낌은?’


타들어 가는 식도를 부여잡고 겨우겨우 펍에서 나왔다. 각자의 집, 숙소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택시마저 팁을 줘야 하는 미국의 문화에서 24시간 운영하는 뉴욕의 지하철, 쥐는 많아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지하철을 타니 다시 멀쩡해지는 이 기분, 옳지 않아~’


모두 이런 느낌이었을까? 용기를 낸 한 친구가 “킨포크(디제잉을 하는 바이며 우리가 자주 가던 곳이다)로 3차 어때? 딱 맥주 한 잔만 더 하고 가자.”라고 말했다.


새해의 킨포크는 만석이었다. 맥주를 한 손에 쥐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리듬을 둠칫둠칫 타며 2016년을 맞이했다. 새벽 3시 반. 각종 주류가 섞인 내 간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이제 그만 퇴근하자~”를 외치며 바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뉴욕에 3년 사는 동안, 구질구질한 기숙사 생활을 했다. 그렇기에 언젠가 뉴욕에 놀러 온다면 가족과 친구의 집에 갈 수 있어도 한 번 쯤은 맨해튼의 숙소에서 머물러보고 싶던 나의 꿈은 학교가 제공해 준 돈으로 이룰 수 있었다. 브라이언 파크가 훤히 보이던 맨해튼의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달렸다. 브루클린에 위치한 킨포크에서 맨해튼의 브라이언 파크까지는 차로 20~30분이 걸렸다. 택시 차 창밖으로 도시의 수많은 불빛들이 흔들거렸다. 그리고 내 위장도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좀만 더 흔들거리면 토할 것 같은데.. 어쩌지’


나오는 침을 계속 삼키며 창문을 다 열었다.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택시 기사님은 전속력을 향해 달렸고, 숙소에 다다랐다. 함께 학술 탐방을 온 멤버들이 다른 방에서 자고 있었고, 나는 까치발을 든 채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 이후의 일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어요)


강렬한 2016년의 첫날이었다. 기분이 좋아 빨리 마신 알코올들, 그리고 난생처음 마셔본 데낄라가 원인이었다. 비워내고 씻고 나니 아침 5시였다. 다행히 겨울이라 해는 느리게 올라오고 있었기에 아직은 어두움이 차 있는 방에서 간신히 잠을 청했다.


보름간의 알찬 일정을 위해 미리 뉴욕에 있는 친구들과 약속을 다 잡아 놓은 상태였다. 휴대폰 캘린더엔 “2016년 1월 1일 점심-연주 언니네”라고 적혀 있었고, 정오쯤 겨우 일어나 물을 벌컥 마신 후, 케이크를 사 들고 기어갔다.


언니의 마음씨와 얼굴처럼 예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한국에서 왔지만, 보름 간의 일정동안 한식이 고파지던 찰나였는데 언니가 나를 위해 준비해 준 음식은 무려 수육과 떡 만둣국이었다. 연주 언니는 뉴욕에서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의 친구였다. 나는 페인팅, 내 친구(14살 많은 언니)는 인테리어 디자인과였는데, 언니의 친구들과 나도 모두 알고 지냈다. (하물며 인테리어 디자인과 교수들도 알았다 ㅎㅎ 세상 철판인 오지라퍼)


전날 고생한 나의 위장에게 그 어떤 해장국보다 따듯하고 맛있는 새해 첫날, 해장 떡 만둣국이었다. 이 국 덕분에 나머지 10일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군인이 화장실에서 몰래 먹던 초코파이의 맛을 제대 후에 먹으면 그 맛이 똑같지 않듯 그날의 떡 만둣국과 수육의 맛은 다시금 경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시 경험하려면 그날의 루트대로 마셔야 하나…) 떡국을 먹으면 왠지 나이 드는 것 같아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2016년 1월 1일의 떡 만둣국은 나의 소울푸드인 순댓국보다 맛있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IMG_0849.jpg
IMG_0851.jpg 연주 언니가 차려준 2016년 1월 1일의 밥상이자 그 해 나의 첫 해장국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적당히'가 없는 곳,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