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의 제 2의 고향
'적당히'가 없는 곳. 뉴욕의 첫인상이었다.
그림을 전공한 나는 원하던 대학에 여러 번 낙방하고, 남들 다 그렇듯이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갔다. 가고 싶던 학교가 아니라서 입학 후 1년을 방황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열렬히 가고 싶던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들어가기 위해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시험을 봤다. 휴학한 시간이 아까울 만큼 1차에서 바로 떨어졌다. 결국, 다시 원래의 학교로 돌아갔지만, 미련이 남아 전공을 바꿔가며 한예종에 시험을 여러 번 쳤다. 조형예술과, 디자인과, 무대미술과 모두 불합격. 나랑 맞지 않는 곳이라고 결론 내리고 원래 다니던 대학에서 장학금이나 받자고 다짐하며 최선을 다해 다녔다.
대학 1학년 때부터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2학년 이후로는 장학금도 종종 받았다. 받은 장학금을 핑계 삼아, 부모님께 용돈을 받고 그것을 조금씩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생애 첫 유럽 여행을 갔다. 당시 유럽 여행을 함께 갈 친구가 없었는데, 너무나도 가고 싶은 나머지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 가게 되었다. “여자 한 분 동행자 찾습니다.”라는 글을 온라인 여행 커뮤니티에서 보고 공대남 2명, 공대녀 1명과 함께 서유럽 6개국을 2주 동안 여행했다. 서양의 나라는 처음이었다. 유명한 관광지만 돌았을 뿐인데도, 처음 접한 낯선 문화와 음식, 공간들이 그저 좋았고, 인상 깊었다. 그리하여 그다음 해에 또 가게 되었다. 그해에는 수많은 예술 축제가 겹치는 해였는데,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한 유럽 전역의 다양한 페스티벌을 방문하면서 현대미술의 매력에 빠져버렸고, 어쩌면 그 경험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당시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는 뉴욕이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버지의 회사가 프랑스계열이라서 프랑스로 가면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대학원만큼은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곳에서 다니고 싶었으므로. 뉴욕의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빠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아빠는 내가 쓴 구구절절한 '유학을 가야 하는 이유, 유학에 임하는 각오와 계획표'에 속아 비교적 순순히(?) 보내주셨다. 어쩌면 그곳에 큰고모의 가족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난 2009년 여름,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뉴욕에 발을 디딘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었다. 공항에서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하며 꺼이꺼이 울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뉴욕에 도착해보니 나의 입은 귀 끝에 걸려 있었다.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 뉴욕에 처음 도착하던 그 날의 뜨거운 햇살과 마음을 잊지 못한다. 픽업 나오신 고모부의 차 안에선 올드팝이 나오고 있었고, 긴장과 흥분상태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내 심장은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미국과 뉴욕을 경험해갔다. 처음 경험한 뉴욕은 '적당히'라는 것을 찾기 힘든 곳이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 “설탕 적~당히 넣으시고요, 간장도 적~당히..”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들 덕분에 '적당히'가 통용된다. 하지만, 미국의 요리 프로그램이나 책을 보면, 설탕은 티스푼에 몇 스푼, 물은 몇 온스, 이런 식으로 아주 정확한 계량으로 알려준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가정집에서 정확한 계량으로 요리를 한다) 그러므로 '손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적당히'라는 기준이 매우 주관적이라, 평가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내 기준에서 처음 느낀 미국의 많은 것들은 '적당히' 가 아닌 '정확히' 정돈되고, 구분된 것들 천지였다. 매우 '정확한' 계량, 매우 '정확히' 구분된 다양한 종류의 슈퍼마켓, 매우 '정확히' 계량되어 만들어진 음식....
내가 처음 뉴욕에 입성한 2009년 겨울, 그해 눈의 양과 바람의 세기도 '적당'하지 않았고, 매우 많고 강했다. 그렇게 '적당히'가 없는 뉴욕의 혹독한 겨울을 세 번 맞는 동안, 모두 학교 앞 기숙사 15층과 16층에서 지냈다. 작은 라디에이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에 겨우 의지해야 했던 매우 추운 뉴욕의 겨울, 기숙사 생활은 코가 시려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 '적당히' 아니고, '정확히' 좋았던 것은 기숙사 창에서 바라보는 매우 많이 내리는 눈이었다. 그 많은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쌓이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코가 시린 겨울의 기숙사 방에서 창밖에 내리는 적당하지 않은 많은 눈을 바라보며, 아주 단 핫초코를 마시던, 그 세 번의 겨울을, 한국의 한여름을 맞이하며 떠올린다. 많이 휘발돼버린 뉴욕의 기억들은 가끔 이렇게 어떤 작은 부사('적당히','정확히', '매우', '아주'...)만으로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언젠가 코로나가 잠식되면 그 또렷한 기억을 되새기러 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