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와 재활용에 대한 단상
1. 작은 구멍 하나 놓치지 않고 Duct/Duck Tape(강력한 접착력을 자랑하는 은색테이프)로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막을 것.- 유연성을 가진 쥐가 어느 구멍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므로.
2. 도착하자마자 스탠드 조명부터 살 것.- 뉴욕 기숙사엔 조명조차 네가 사서 켜야 해.
3. 쓰레기는 분리수거 필요 없이 한 봉지에 다 버려도 되는데, 웬만하면 바닥에 두지 말 것.- 공중 어딘가의 고리에 봉투를 걸어 꽉 묶어둬야 쥐들이 잘 안 나옴.
뉴욕에 나보다 3년 먼저 입성한 나의 영리한 친구 영리는 이 세 가지의 임무만 완성하면 일단 첫 시작은 두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학교 기숙사에 처음 입성하던 날, 가장 먼저 덕테잎과 스탠드 조명, 이불, 그리고 청소도구를 샀다.
눈에 보이는 구멍 비슷한 것까지 테잎으로 꽁꽁 막았다. 당시의 계절은 여름이라 라디에이터의 구멍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마저 테잎으로 스타일링을 했다.
저 세 가지의 꼭 지켜야 할 조언을 해 준 나의 친구는 아무도 없는 미국 땅에 와서 첫날 밤, 조명이 없는 깜깜한 기숙사 침대에 눕자마자 “한국 집에 가고 싶다”를 읊조리며 울면서 잠들었다 했다. 친구가 기억하는 뉴욕의 강렬한 첫날 밤 덕분에 내가 기억하는 뉴욕의 첫날밤은 비교적 아늑하고 산뜻했다. 방 안 구석구석을 청소한 후, 조금만 움직여도 스프링이 출렁거리고 삐거덕거리는 침대에서 마스크팩을 붙이고 꿀잠을 잤다.
그렇게 뉴욕의 학교 기숙사 생활로부터 미국 문화의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아갔다. 그 많은 것 중, 쓰레기통 시스템은 가장 충격적이었다. 18층 건물의 기숙사에 나의 방은 15층이었다. 쓰레기통은 각층의 한쪽 끝에 서랍(?)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서랍 같은 곳을 열어 봉지에 담은 쓰레기를 놓으면 쫘악~~하고 지하 1층까지 시원하게 내려간다. 그러니까 18층에 사는 학생들은 가장 빠른 속도와 큰 소리를 만끽할 수 있었을 터이다.
뉴욕에서는 유기농 제품을 파는 Whole Food 마켓이나, 주말마다 열리는 농부가 직접 재배한 농산물 직거래 마켓 등만을 이용하는 그린슈머, 에코슈머[1]들을 많이 마주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외의 많은 곳에서는 일회용품을 저렇게 많이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소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주거지에서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머물던 2009년~2012년에는 음식물, 재활용품, 일반 쓰레기 할 것 없이 죄다 모아 쓰레기 봉지에 넣어 영차!하고 서랍처럼 생긴 구멍으로 쏘옥 던지면 그만이었다.
지구에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재활용 쓰레기는 물론이고, 음식물 쓰레기도 철저하게 분리해서 버리는 한국의 쓰레기 배출 시스템을 경험하고 온 대한민국인인 나는 분리수거를 그 누구보다 즐기고 잘 해내던 사람인데, 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곳이 미국이었다. 각 층에서 던져진 쓰레기들은 지하 1층으로 떨어져서 모였고, 그것들을 다 꺼내어 분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잠시 열던 그 서랍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악취를 느낄 수 있었다. 지하 1층에서 다 모인 쓰레기를 분리하는 노동자는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악취에 시달리면서 일을 할까? 라고 생각한 이후로는 나 나름대로 분리수거를 해서 버렸다. 가장 많이 소비하는 종이컵, 패트병, 맥주캔,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정도는 꼭 분리해서 각각의 봉지에 담아 던졌다. 지구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과 지하 1층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시간과 그가 느끼는 악취를 덜어주려 하는 나의 작은 노력이라고나 할까.
다소 무자비한(?) 쓰레기 배출 시스템을 익숙하게 경험한 미국 친구들과 함께 5주 동안 이탈리아 로마에 수업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유럽 또한 꽤 철저한 분리수거를 자랑하는 대륙이기 때문에 한동안 미국에서 지내다가 방문한 그곳이 참 반가웠다. 간만에 나는 신나게 분리수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리수거에 익숙하지 않았던 미국 친구들은 엄격한 이탈리아의 쓰레기 배출 시스템에 많이 놀란 눈치였는데, 그것에 놀라는 그들을 보며 나도 놀랐다. (물성이 다른 쓰레기들을 그저 분리할 뿐인데, 왜 이것이 놀랄 일인가?에 놀라워하며) 아시아와 미국에서 모인 우리 팀 5명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함께 'Plastic Arch'라는 설치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그 작품은 관광객에 의해 많이 버려지는 플라스틱 패트병을 모아 이탈리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아치를 만든 것이었는데, 그 속에 우리 각각의 의미 있는 쓰레기들을 넣어 관람객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 이를테면, 로마에서 친구와 주고받은 엽서, 각종 박물관/미술관 리플렛, 기차표, 여행에서 닳아버린 물건 등이었다. 이를 광장 한쪽에 설치한 후, 오고 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했던, 의미 있고 기억에 남는 재활용 프로젝트였다.
북극과 남극에 고온 현상이 생겨 얼음이 녹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었고, 역대급 폭우 등에 지구가 아프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각자의 편리함을 위해 여전히 이기심을 보인다. 코로나 19로 인해 중국의 많은 공장이 가동을 멈춰 우리나라의 미세먼지가 줄어들었다. 이는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인간이 이기심과 욕심을 조금만 줄이면 나비효과처럼 지구 어딘가에서는 더욱 행복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다는 예가 될 수 있다.
지금 나의 모교인 뉴욕 브루클린의 기숙사는 여전히 쓰레기를 하나로 뭉쳐 버리며, 일회용품 사용을 밥 먹듯이 하고 있을까?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요즘같이 지구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낼 때면 나서서 캠페인 활동이라도 하고 싶은 심경이다. 지구의 많은 사람이 오래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적어도 미국과 중국에서 쓰레기 배출 시스템과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주면 참 고마울 것 같다.
[1] 에코슈머: ecology+consumer, 그린슈머:green+consumer의 뜻으로,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