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말이 자기 뜻대로 받아들여질 거라는 확신이 없는 사람이 말을 많이 한다.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중언과 부언을 만든다. 한 말을 또 하고 같은 말을 다르게 한다. 그런데 이런 불안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이해받는, 받아야 하는 자로 자기를 규정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가운데 언덕이라는 특이한 뜻을 가진 이름의 그 남자는 나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꾸 딴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원유 거래하는 일을 한다는 그는(아직도 정확히 어떤 일인지 모르겠다) 본인이 돈을 잘 벌지만 겸손하고 교양있다는 말을 다른 방식으로 여러 번 되풀이했다. “제 자랑 같지만…” 이라는 구절을 앞에 꼭 붙여서 ‘나는 나 자신을 칭찬하고 있지만 겸손한 사람이다’를 표현하고 싶은 듯 보였다.
그 되풀이되는 말과 행동이 영락없이 누군가의 사랑을 구걸하는 모습 같아 보여 찌질 하기 그지없었다.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도, 하는 일에도 확신이 없는 사람 같아 보였고 그리하여 내가 알아주길 바라는, 칭찬에 고픈 어린아이 같았다.
30대가 되어 가끔 소개팅에 나가 남자를 만나면 유난히 말이 많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해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경우에는(생각해보건대,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을 느꼈을 경우인 것 같다) 많지도 않은 본인 자랑을 되풀이하는 남자가 있다. 이승우 작가가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말한 것처럼, “이해 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중언과 부언을 만드”는 순간이다. 본인을 이해시키기 위해 나오는 말들이 나에겐 초라한 자격지심의 언어로 들리고, 내가 그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건 마치, “나를 꼭, 이렇게 봐주세요.”라고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가 본인을 파악하고 관찰할 수 있는 유연한 시간과 거리를 제공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은 나를 매우 불편하게 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중언부언을 끊임없이 하는 남자라면 노땡큐다. 그 중언부언이 자기 자랑이라면 더더욱. 장기 자랑이면 재밌기라도 하지.
혹여, 이 글을 보는 연애와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30대 싱글 남자들이 있다면, 그녀 앞에서 말을 아끼시라. 침묵을 견디시라. 그렇다면 그대가 원하는 그녀가 가까이 올지도 모른다. 의외로 여자들은 말이 많은, 특히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드물다.
---------------------
* 이승우, 『소설가의 귓속말』 p19, 2020,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