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은 사랑을 싣고~(1)

당근 마켓 경험담

by Eugene

“당-근” 알림은 “까톡” 알림보다 덜 방정맞고 귀엽기까지 하다. 가끔은 그래서 그 알림 소리를 듣고 싶어서 업데이트와 끌어올리기를 열심히 하기도 한다. 사진을 찍어 올리고, 물건의 설명을 위해 가끔은 리서치에 쏟는 시간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처음에 모두가 당근, 당근 할 때 ‘저 귀찮은 걸 왜 할까? 얼마나 번다고..’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내가 이제 하루에도 당근질 한 번은 보통이고, 집안 곳곳에서 당근밭을 물색한다. 당근 덕에 나의 하루가 바빠졌고, 덕분에 휴대폰인지 시계인지 모를 나의 아이폰이 귀엽게 “당-근”하고 울려댄다. 급하게 현금을 쓸 일이 있을 땐 이젠 더 이상 난감하지 않다. 당근을 팔고 번 현금이 나의 지갑엔 두둑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유명 브랜드 텀블러를 한두 번 사용한 후, 1/5 가격으로 당근에 올렸다. 올리자마자 귀여운 “당-근”소리가 “다다다다다당-근”으로 방정맞게 울렸다. 그렇게 동시에 많은 알림은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한 나는 나름의 형평성을 가지고 가장 먼저 구매를 원하는 사람과 거래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품의 디테일을 물어보시더니 갑작스레 마음을 바꾼 1번 타자가 떠나갔고, 두 번째로 문의를 한 사람의 프로필을 보니 왠지 땡기지 않았다. (사실, 가끔 거래를 원하는 사람 중에 말투, 맞춤법, 채팅 매너 등을 보면 대충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짐작이 된다. 그리하여 거래가 가능한 경우에도 거절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도 참 유별나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2번 타자는 말투와 채팅 매너가 마음에 들지 않아 패스하고, 3번 타자에게 1번 타자의 거래 불발 소식을 알렸다. 그리하여 그는 나와 거래를 하게 되었다. 거래 약속을 정한 후, 그의 프로필과 판매 내역을 들여다보았다. 무릇 싱글 남자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물건을 보유한 소유자였다. 게다가, 나와 취미가 비슷한지, 캠핑용품이 더러 보였다.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 물건을 픽업하러 온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훈남의 느낌을 풍겼다. 재빠르게 네 번째 손가락을 확인한 나는 공식적인 유부남은 아니다 싶어 몇 마디 건네고 싶었지만, 집 앞에 당근 거래하러 나간 나의 꼬락서니를 확인하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현금이 없었던 그는 계좌로 보낸다며 나의 계좌번호를 물었고, 덕분에(?) Face ID가 필요한 시점에 마스크 내린 그의 얼굴을 잠시나마 볼 수 있었다. 마스크 속의 짐작한 이미지가 적중하였고, 나는 잠시 내가 당근 거래를 하러 나온 것인가 소개팅을 하러 나온 것인가 착각하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5분 정도의 거래 끝에 매너 있게 인사를 하고 나서 아쉽게 돌아선 나는 그가 타고 온 차가 궁금해 슬쩍, 뒤 돌아보았다. 그의 이미지와 비슷한(?) 흰색 SUV였다.


집에 돌아와 나의 계좌에 찍힌 그의 이름을 SNS에 혹시나 하고 검색해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당근 거래의 매력은 동네 사람이 아니던가. 내가 사는 지역에서 초, 중, 고를 다 다닌 나처럼 그도 그러했다. 나와 공통된 친구가 두 명이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대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공통 친구 두 명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다행히 그 두 명은 최근에 연락했던 기록이 있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내 고등학교 동창 남사친 두 명과 그는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와 관련하여 궁금한 정보를 친구 두 명에게 물어보았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거의 20년간 그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근데 왜 SNS는 친구냐 이 녀석들아’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예술가인 나는 첫 느낌과 직감을 믿는 편이다. 특히, 이성을 만날 땐 더더욱. 물론, 소개팅으로 만난 상대는 아니지만, 첫인상이 너무 호감이었던 그와 어떻게든 엮이고 싶었다.


다행히, 그의 SNS 계정은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었고, 하트를 피해가며 온라인에서 조심히 그를 탐독하였다. 당근에서 그가 판매하는 여러 물건으로 내가 유추했던 것처럼, 그는 역시 캠핑이 취미였고, 게다가 나와 같은 가방을 소지하고 있었다. (벌써 커플템이란 말이냐) 이 정도면 인연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남사친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망할 놈의 오지랖) 당근 채팅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한 번 걸어보라는 대부분의 의견으로 모아졌다.


마치 몰랐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그에게 거래 후 약 3시간이 지난 시간에 말을 걸었다.


나: “캠핑 좋아하시나 봐요?”

그: “네, 종종 다니고 있습니다.”

나: (남사친의 조언으로 뜬금없이 나는 캠핑에 찍은 일출 사진 한 장을 보냈다)

그: “와, 멋있네요. 어딘가요?”

나: “XX이에요. 새해에 캠핑 갔다가 일출 보러 갔거든요~” (하.. TMI의 끝)


결론만 말하자면, 난 이 어정쩡한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로 읽씹을 당했다. 그리곤 어떻게 그와 다시 엮일 수 있을지를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고 있다. 마치 연애조작단처럼 우연을 가장한 만남의 방법을 아래와 같이 쥐어 짜내는 중이다.


1. 고등학교 동창 친구에게 연락처도 모르는 중학교 동창 친구에게 20년 만에 SNS 메시지로 연락하라고 해서 소개팅을 받기

2. 그의 당근 물건 중 하나를 사며 커피 한잔하자고 조르기(?)

3. 당근 채팅으로 다시 말 걸기

4. 데이팅 앱에서 모르는 사람인 척 말 걸기

(알고 보니 한 달 전쯤 데이팅 앱에서 그와 나는 매칭이 되었었다. 이것을 그의 SNS를 탐독하다가, 가방이 같은 것을 보고는 데이팅 앱의 한 사진이 떠올라, 다시 들어가 보니 그였다. 매칭은 되었지만 그와 나는 서로 말을 걸지 않았다. (왜 그랬니? 과거의 나야…) 근데 이 정도면 진짜 인연 아닌가? 어쨌든, GPS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앱들 덕에 그는 나에게 탈탈 털리고 말았다)


혹여, 이 글을 그가 볼까 무섭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괜히 스토커 취급을 받을 것 같아서. 어쨌든, 당근 거래로 그 어떤 소개팅과 선에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났고 그 이후로 난 근거리에 있는 그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추후, 2편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1편이라고 생각하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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