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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Jun 16. 2021

Dear, Grandma

눈으로 건넨 말 기억하고 있어요.

 할머니.


 이상하게 중요한 일이 있거나, 고민이 많을 땐 꿈에 할머니가 나와요. 전 지금 곧 있을 개인전을 준비하며 글을 쓰고 있어요. 요즘은 글 쓰고 책 만드는 재미에 빠져 있어요.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서 어깨가 무거웠는지,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무의식에선 그 무게를 느꼈었나봐요. 그래서일까요? 얼마 전 꿈에 할머니가 나왔어요. 


 꿈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저 할머니가 나왔다는 것밖엔.. 그 꿈을 꾼 후 며칠 뒤에 갑작스레 할머니가 계신 곳 근처를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도 들르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빠한테 혼나기도 했고요. 죄송합니다. 


 4월 말의 장성은 너무 아름다웠어요. 친구와 함께 오른 백암산은 고요하고도 경이롭기까지 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 근처에 할머니가 계신다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고등학생 때 이미 할머니는 아흔이 넘으신 나이셨죠. 어린 나이에 가까이 있던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사실‘죽음’이라는 것이 뭔지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할머니.


 지금 전 세계에서는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있어요. 그런데도, 바이러스 때문에 가는 길을 제대로 배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의 마지막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보낸다면 그 가족과 친구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 속에 미안함으로 가득 찰까요?


 다행히도 전, 할머니의 마지막 숨소리를 기억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헐떡이던 그 숨을요. 몇 번 남지 않은 숨을 쉬고 뱉으며 할머니가 눈으로 저에게 건네던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렇게 살게요. 할머니. 


 할머니와 함께 살던 그 시절에 할머니 마음 아프게 했던 일들 많았죠. 철없던 사춘기 십 대 소녀여서였다고 이해해주세요. 막둥이 아들의 막내인 제가 걱정돼서 하교 시간 때마다 늘 학교 앞에 기다려주셨던 일도, 엄마가 없을 때면 끓여 주셨던 매콤한 된장찌개도, 모두 기억합니다.  


 가죽만 남은 채 숨을 헐떡이던 마지막 순간의 할머니 모습이라도 뚜렷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지금 살아 계신다면 할머니의 그 작은 손과 몸을 꼭 잡고 안아주고 싶네요. 많이 보고 싶어요. 그러니 제가 힘들 때 꿈에 가끔 나와주세요. 


 곧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이에요. 장성은 언제 가도 좋지만, 단풍나무가 많아서 가을에 더 이쁘잖아요. 

 이번 추석 때는 꼭 찾아갈게요. 


                     2021년 4월, 할머니의 막내 손녀 Eugene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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