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by 조작가

한참 손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집전화는 대개 부모님이 받으셔서 연락하기가 힘들었던 반면 손편지는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무사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손편지를 더 선호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이 느린 세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무리 빨라도 1주일 걸리는 편지로 약속을 잡았다는 걸 지금 세대는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시절의 편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사와 취업을 하게 되면 자연 버리게 마련인 것을 나는 끝까지 가지고 있었고 결혼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처분하지 않았다. 그 위기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찌하다 보니 편지를 보관한 박스가 여동생 손에 쥐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동생이 결혼할 때 어머니가 집 정리를 하게 되면서 편지 박스가 여동생 물건인 줄 알고 여동생에게 줬었던 모양이다. 여동생은 그 물건이 내 물건인 것을 알고 함부로 처리하지 못했고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동생에게 편지 박스를 전달받고 그것을 집으로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와이프나 아들, 딸에게 공개해도 될 만큼 내 모습에 스스로 당당하기 때문이다.


편지 박스에는 대부분 여자 친구와 나눈 편지, 지금은 문학적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동네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들, 한때는 나보다는 사회를 더 걱정했던 대학 동기들과의 진지한 대화, 그리고 전혀 기억에도 없는 잠깐 만났다가 헤어진 숱한 사람들의 편지가 담겨있다.


그때는 모두 시인이었던 듯싶다. 어떤 건 날 웃게 하고 어떤 건 가슴 아리게 한다. 그땐 얼마나 기다렸던 편지였던가, 또 몇 번씩 읽어 내려갔던 편지였던가. 한 가지 아쉬운 건 그 시절 내가 보낸 편지를 내가 볼 수 없다는 거다. 대충 답장의 내용으로 내가 어떤 편지를 보냈는지를 추측할 뿐이다. 받은 편지로 그때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와 나의 그때의 모습도 그려본다. 지금 그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편지의 주인공은 30년이 넘는 시간에 자기의 편지를 읽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편지는 다른 물건과 다른 속성이 있다. 내가 쓴 편지는 그의 소유이고 그가 쓴 편지는 나의 소유가 된다는 점이 그렇다. 그 편지엔 서로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내가 그에게 줬던 마음은 그의 것이고 그가 나에게 줬던 마음은 나의 것인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장례식 논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