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리는 것, 그리고 포기해야 하는 것?
오늘도 아이들 수업 일정표를 살펴본다. 국어, 수학, 실과, 체육.
체육 시간에는 제자리 멀리 뛰기가 있다. 문득 나도 예전에 운동장에서 멀리 뛰기 발판에서 '제자리 멀리 뛰기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났다. 친구들과 누가 멀리 뛰는지 경쟁하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그런데, 오늘 '미세미세' 앱을 실행해 보니, 역시 미세먼지 '나쁨'이다.
빨간색 화면에 실망한 표정이다.
오늘도 실내에서 수업하겠네?
응...
아이는 별다른 반응 없이 대답했다.
이미 2주 넘게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제는 그냥 운명이라고 받아들여야 되는 건지. 그래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에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과연 며칠이나 될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잠깐이나마 생활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맑고 높은 푸른 하늘.
하늘만 봐도 감탄사가 나서 사진을 찍은 적도 많다.
집 밖에 바로 잔디밭도 있어서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았다.
물론 작년 캘리포니아의 산불로 몇 주 동안 최악의 공기를 맛봤지만 말이다.
그래도 운전해서 5분 내지는 10분만 가면 대형 공원이 즐비했고,
푸른 잔디가 늘 함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뛰거나,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운동을 했다.
미국에서의 외로움, 얼마 간의 불편함(느림의 미학), 가끔 느끼는 인종차별, 높은 생활비.
이것만 극복한다면, 대신 자연과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아이들은 지금도 가끔씩 미국 생활을 그리워한다.
물론 제일 그리워하는 것은 음식, 그중에서 바로 '타코'다.
한국에서 타코를 주문해서 먹어봤지만, 미국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선택 옵션도 없고, 너무 매웠다.
왜 우리나라에는 맛있는 타코 음식점이 없을까?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뿌연 하늘,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 시간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편안함과 익숙함(빠른 일처리),
더 이상 인종 차별에 민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내가 소수 민족이 아니라, 다수 민족에 속한다는 안도감.
귀를 쫑긋하지 않아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1등급 한국어 실력.
이러한 이점을 다시 누리면서, 반면 다른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그중에서 '공기'가 제일 심하다.
물론 좀 더 자연이 많은 곳으로 가면 나아지겠지만, 그곳은 교육 때문에 차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참 밖에서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인데, 학교 공부, 학원 공부에 치어서 그렇지 못하다.
교육열이 더 심한 곳(목동, 분당, 대치 등)보다는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시간에 쫓겨 산다.
그나마 체육 시간에라도 마음껏 뛰어놀아야 하는데, 안타까운 마음이다.
아이들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지 않는 이유다.
뛰어놀지 않으니, 물을 많이 마실 이유가 없다.
늘 물이 남아있어서 아깝게 버려야 했다.
지난주 토요일처럼 청명한 하루가 되기를 기다려본다.
체육 시간에 아이들이 모두 운동장에서 즐겁게 운동하기를 기대한다.
땀을 흘리는 아이들이 제일 아름답게 보인다.
물론 땀을 흘리고, 학원을 가야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