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소중한 순간 기록하기

아버지의 기록 1편

by 나단 Nathan 조형권

예전에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침통해하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 목소리를 기록한 것이 없어. 그것이 제일 아쉽더라고.”


친구 어머니는 치매에 당뇨병까지 와서 힘들게 고생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지만, 막상 건강하실 때 생전의 어머니를 기억하고 싶어도 사진밖에 안 남아서 너무 아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부모님과의 대화, 가족 모임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서, ‘녹음’ 했습니다. 아버지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당시 급변하는 시대에 중요한 인물에 대해서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평생 개인사에 대해서는 별말씀이 없으셨지만, 이제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버지는 ‘영어’를 잘하십니다. 진도에서도 아주 궁벽한 시골에서 성장했는데, 당시 초등학교 때 옆 마을에 친구가 영어를 잘하는 것을 보고, 집에서 학교까지 30리(약 11km)를 걸어갈 때 영어 단어를 열심히 외우고, 교과서에 문장도 통째도 외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그것이 평생 영어에 대한 자신감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영어는 결국 노력과 기억력”이라는 지론을 믿고 실천하셨기 때문에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영어 공부를 지금도 즐기는 이유가 아버지의 DNA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반면, 아버지는 수학, 미적분에 약하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저와 비슷합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서울대 교수 출신의 수학 선생님이 미적분을 너무 잘 가르쳐줘서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덕분에 육사 생도 240명 중 40등 정도로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로는 Top5 안에 들었지만, 역시 힘든 수학 때문에 상대적으로 등수가 떨어졌습니다. 재학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결국 전체 7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군대에 가셔서 수색 중대에 소속되었고, 첫 부임지는 비무장지대였습니다. 거기에서 GP(Guard Post) 장으로 1년여간 근무하셨습니다. 당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북한은 양동작전을 구사하기 위해서, 비무장지대를 종종 공격했고 혼란을 야기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GP의 다른 몇 곳에서는 북한군의 공격으로 몇 명이 납치되거나, 살해당했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흉흉한 분위기였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담당한 GP에는 아무런 사고가 없어서 모범 소대로 표창을 받고, 당시 별 2개 소장인 사단장의 집에 초청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그 장군님의 부인께서 아버지의 겨울 잠바를 손수 받아주시고, 장군과 함께 회를 드신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높은 지위의 리더가 고작? 다이아몬드 하나인 소위를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한 것도 흔하지 않고, 지금도 과연 그런 리더가 있을까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어떻게 보면, 소대장 시절부터 모범 장교로 당시 권력자 들의 식사에 소대장 대표로 초대를 받을 정도로 굉징히 잘 나가셨지만? 특유의 고지식함과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 군생활이 그다지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육사에서 교수로 근무하실 때도, 다른 교수들에 대한 잘못된 처우를 항의하고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만약 좀 더 아부를 잘 하시거나, 뇌물?(당시에는 성행한)을 잘 상납했다면 좀 더 다른 길을 걸으셨겠지만, 과연 그랬다면 지금의 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젊은 시절 깐깐하고 고지식한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후배들을 많이 생각해서 아버지에 대해서는 평판이 엇갈립니다. 저에게는 존경스러운 아버지이지만 말입니다. 지금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아주 부드럽고 불같은 성격도 많이 죽었습니다. 마치 ‘슬램덩크’의 안 선생처럼 굉장히 성격이 ‘유’해지셨다고 해야 할까요?


아버지는 몇 년간 육군사관학교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880년대부터 시작해서, 1911년에 시작된 신흥 무관 학교, 1940년대 중반 이후 설립된 육사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야심 차게 시작한 기록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방대한 작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께 적어도 2권으로 나누거나, 아예 벽돌책으로 만들어야 될 것 같다고 제안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아버지의 기록을 브런치에 조금씩 올려서 다른 분들과 미리 공유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책을 내서 돈을 벌기보다는, 앞으로 육사에 입학할 생도들에게 역사를 알려주고, 교훈을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결국 민심이 중요하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설명절에도 여전히 원고 작업 막바지에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관련 서적도 계속 탐독하면서 내용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내년 정도 아버지의 기록이 세상에 나왔으면 합니다. 그것이 아마 아버지가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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