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貢曰 ;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자공왈 유미옥어사 온독이장저 구선고이고저
子曰 ; “沽之哉沽之哉 我待賈者也.”
자왈 고지재고지재 아대고자야
자공이 공자에게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이것을 상자 속에 넣어 감춰야 할까요? 아니면 좋은 가격을 받고 팔아야 할까요”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물건을 살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다.” - 자한子罕 9.12
공자는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양성하면서도 ‘현실 정치’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인’과 ‘예’의 정신을 위정자와 신하들에게 설파하고 익히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 ‘도’의 완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나라에서 왕을 쥐락펴락하는 세도가들이 찾아와서 정치 자문을 구해도 결코 꺼리지 않고, 이들을 계몽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물론 결과는 그가 의도한 만큼 좋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공자는 ‘값을 쳐줄 사람’, 즉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아름다운 옥(玉)이 있다면, 이것을 상자 속에 넣어 감춰야 할까요? 아니면 좋은 가격을 받고 팔아야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질문은 단순히 ‘옥’을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 지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는 스승이 여전히 정치에 참여할 뜻이 있는지 의중을 떠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물건을 살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다.” 공자는 ‘인’의 정치를 받아들일 위정자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혼동의 춘추시대 말기 군주들은 ‘인’보다는 힘으로 통치하는 ‘패권’을 선호했습니다. 그의 고국 노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대사구라는 높은 벼슬을 버리고, 천하주유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가 처음 방문한 나라는 위나라였습니다. 노나라의 시조 주공 단과 위나라의 시조는 형제였습니다(자로 편 13.7). 위나라는 노나라처럼 문화와 예술이 발전한 문명국이었습니다.
반면 이웃한 강대국인 제나라에 비해서 힘이 없었었습니다. 공자는 이러한 사태를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나라 영공을 찾아가서 백성을 위하는 도덕정치를 펼치고 종국에 이웃나라의 존경을 받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진정한 대국(大國)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공은 그다지 현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그는 공자를 환영하고 중용하려고 했지만 그는 공자가 주창하는 ‘인’과 ‘예’와는 거리가 한참 먼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부인인 남자(南子)가 친정 오빠와 불륜을 맺는 것을 용인할 정도였으니까요. 공자는 결국 영공에게 깊은 실망감을 감추고 다시 길을 떠나게 됩니다.
여기서 포기할 공자가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50대 중반에 시작한 주유천하를 무려 14년간 멈추지 않았습니다. 위, 송, 정, 진, 채, 초, 위가 대표적인 행적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자신의 기회를 찾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비록 그가 원하던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셈입니다.
관계형성과 노력을 통해서 기회를 모색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생에서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 기회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방향성이 바뀌는 ‘변곡점’을 기회라고 정의해 보시죠. 그렇다면 몇 번의 기회가 있을까요? 아마 한 번 또는 여러 번일 수 있습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올 때도 있고 내가 스스로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연히 찾아온 기회도 결국 내가 노력을 했기 때문에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그냥 집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기회의 여신은 나를 제 발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나의 시간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수록 새로운 기회가 찾아옵니다.《돈보다 운을 벌어라》의 저자는 “운은 집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저자는 45년간 주역을 공부하면서 사람의 운명을 연구했지만, 이 중에서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한 ‘운’을 강조했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생기다가 사라질 수 있지만 ‘운’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좋은 운은 또 다른 좋은 운을 부르기 마련입니다.
회사 생활을 하게 되면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 새로운 팀원이 필요할 때 그 사람에 대해서 평가를 원한 경우입니다. 평소 그나 그녀가 ‘운’을 모으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후한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주변의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덕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모두 회피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운을 하나도 모으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적당한 광고도 필요하다
공자는 “만약 나를 등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1년이면 웬만큼 좋아질 것이고, 3년이면 성과가 있을 것이다.”(자로편 13.10)라고 했습니다. 만약 그가 조용히 은거해서 학문에만 몰두했다면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의 명성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가 위정자들에게 쓸모가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공자는 자신의 능력을 은근히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과대광고는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나를 등용하면 당장 세상의 혼란과 질서를 바로 잡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웬만큼’ 좋아지고, 3년이 지나면 성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정도 시간이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공자가 노나라에서 공직을 맡고 있을 때 실질적으로 좋은 성과를 냈기 때문에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겸손한 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자처럼 때로 우리는 자신을 드러낼 필요도 있습니다. 동양 사회에서 겸손은 미덕이지만, 글로벌 사회에서 마냥 겸손한 것은 자칫 자신감이 없다고 비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제자 자공을 통해서 ‘옥’을 살 사람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자신의 정치 참여 의중을 드러냈고, 또한 실제로 천하주유를 통해서 이를 실천했습니다. 자신의 컨설팅 실력에 대해서도 적당하게 광고를 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발품을 통해서 많은 관계를 형성했고, 자신의 뜻을 널리 알리면서 더 많은 제자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공자는 생전에 ‘옥’을 제대로 팔지 못했지만, 후세에 자신의 뜻을 알릴 기회를 잡았습니다. 결국 기회는 그 누구에게도 우연히 찾아오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 개인의 노력, 자신에 대한 적당한 홍보를 통해서 스스로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