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한 스푼을 빼고, 희망 두 스푼을 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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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하지 못했던 뮤지컬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 또한 이렇게까지 엄청난 배우가 될 줄 알았으면 뮤지컬 아카데미 시절부터 함께했던 조정석 배우와 더 친하게 지낼 걸 하는 속보이지만, 너무나도 솔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뮤지컬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아, 정석이! 실력도 있고, 연습도 많이 했던 친구라 잘될 줄 알았어. 같이 술도 마시고 그랬지’라고 으쓱댄다. 그럴 때마다 괜히 내가 뮤지컬 배우였음에 더욱 자존감이 높아진다. 물론 당시 정석이는 잘~하고, 노력도 많이 하는, 촉망받는 예비 뮤지컬 배우였다.) 여하튼 뮤지컬은 나의 인생 첫 여정이자, 청춘의 대부분을 함께했던 나침반이었다. 그러니 그만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후회는 없지만 가끔씩 가슴 속 어느 구석에서 불꽃처럼 솟아오르는 뜨거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천상 나는 배우였나 보다.


오디션이라도 볼 걸 싶은 뮤지컬들도 떠오른다.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아이다> <브로드웨이 42번가> <지킬 앤 하이드> <풀 몬티> <영웅> <사랑은 비를 타고> <빨래> 등 오디션을 보고서 탈락한 작품도 있고, 오디션을 볼 기회조차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작품도 있다. 그런데 오디션을 잘 보려고 어떻게 했느냐고 가끔씩 누군가 묻곤 한다. 배우로 살았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신기한가 보다.


책 좋아하고, 종종 글을 끄적거리던 문과적 성향의 공대생이 뮤지컬 배우라고 하는 아티스틱한 삶을 살았다고 하니, 공집합은 쉽게 찾을 수 없으니까 합집합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용기를 냈던 것이고 그 용기만큼 밀고 나갔을 뿐인데 저 안드로메다 너머의 다른 별에서 온 생명체로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부분 잃게 되는 것들에 대해 충분히 각오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그냥 내 삶을 살았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그냥 했던 것’이다. 배우로 살겠다고 다짐했고 배우로 살고자 이것저것 배우고 연습하고 오디션 보고 합격하면 공연하고 그러는 일련의 삶을 차근차근 살았을 뿐이다. 다른 배우들도 다 하는 그러한 삶. 배우 입장에서는 더없이 뻔한 그러한 삶.


누군가 당신에게 왜 직장인으로 살고 있냐고 묻진 않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살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고 그렇게 묵묵히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인데 말이다. 가끔씩 나에게 쏟아지는 그러한 질문들이 불편할 때가 있다. 그렇다, 분명히 불편할 때가 있다. 어느 자리에 가면 꼭 그 질문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대답하기 귀찮은 질문을 계속 받다 보면 차라리 휴대폰에 녹음해 그냥 그 자리에서 틀어주고 말았으면 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 제발 관심 있는 척 좀 하지 않았으면 싶은 그런 찰나 말이다.


뮤지컬 배우라는 삶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고? 그럼 내가 뮤지컬 배우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 당신을 초대했고 그 자리에서 ‘왜 직장인으로 살아요?’라고 묻는 누군가와 당신이 마주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상대의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왜?”라는 질문으로 분석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그냥 “아, 네”라며 받아들이고 그러려니 해주었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직업은 자신에게 더없이 특별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평가받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청춘을 대할 때도 그랬으면 좋겠다. “왜 그 대학교, 그 학과에 가려는 거야?”라고 하지 말고, “그래, 네 결정이니 잘할 수 있을 거야. 네 삶이잖아”라는 격려 말이다. 부담 주지 않는 격려라면 더욱 완벽하다. 시작하기 전에 기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그렇게 할 자격도 없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발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고도 말하지 말자. 그 말 듣다 보면 될 일도 안 될 것만 같다. 그러니 그냥 옆에서 묵묵히 바라봐주거나, 차라리 무관심으로 가만히 두면 알아서 잘할 것이다. 청춘이라고 하는 푸른 봄을 충분히 만끽하고 있으니 더없이 여물었을 것이고 성숙해 있을 것이다. 괜히 과도하게 관심을 가졌다가 시들어버리는 꽃이나 식물들을 본 적이 없는가. 괜한 걱정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들지도 모른다.



뒤돌아서서 흘린 눈물만 해도


첫 공연의 첫 무대, 그 자리의 커튼콜 당시 나는 주연이 아니었음에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너무나 서럽게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방금 전처럼 선하게 떠오른다. ‘아, 나는 살아 있구나’ 싶은 감정이 폭발했던 것이다. 제아무리 고생하고 하루에도 열두 번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래도 한 길을 꾸준히 걷다 보니 나에게도 기회가 오는구나 하는 확신이 더욱 단단해졌던 것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난 공연만 하면 눈물을 쏟아냈다. 주르륵 흘리기도 했다. 핑 하고 맺히기도 했다. 가끔씩 분장이 범벅이 되어 메이크업 담당자에게 미안할 때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나 하고 싶었던 것을 진짜 하게 되는 짜릿한 감격의 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었고, 나에게 숨김이 없었으면 했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때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멈춰야 했으니 지금은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해보지 않았던가. 한 번뿐인 내 인생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축복이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영광이겠는가 말이다.


젊은이들에게 그러한 인생을 꼭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고생해서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으로 1년 이상 장기 해외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 감격스럽다. 학창 시절을 즐길 만한데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일찍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친구들도 보았다. 멀지 않은 미래의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잭 도시 들이다. 남들은 기피할 것만 같은 가업, 부모님이 물려주지 않으려 할 것만 같은 가업을 물려받아 현대식으로 발전시키고 성장하는 친구들도 보았다.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아쉬움은 남을지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 우리 모두. 그렇게 당당하고 열심히 살다보면 시련도 닥쳐오고 실패도 몰려올 것이다. 시련과 실패를 최고의 기회로 바꾸어 더욱 성장해 나간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엄청난 성공이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충분히 재미있을 정도만 되어도 문제없을 것이다. 그 자체로 즐거울 테니까. 행복할 테니까. 하루하루가 더없이 쏟아지는 햇빛처럼 감동의 연속일 테니까.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불 킥 제대로 해서 벌떡 일어나고 싶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그런 삶을 나는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련다. 그런 삶을 너도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 모두 함께 그러한 삶을 살아가자고 넌지시 손을 뻗고 싶다. 그리고는 꼬옥 잡아주고 싶다. 한 번뿐인 인생이다. 가치 있게 살아가자. 그리고 그 가치는 당신이 제대로 만들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