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봐도 희극

왜 또다시 공부하는가

by Jeremy

짙은 콧수염에 언제나 검은 양복을 입고 지팡이를 놓지 않았으며, 희극 배우이자 영화감독이었으며 제작자이기도 했던 역사상 최고의 예술가 중 한 명이었던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914년 영화 <생계(Making a Living)>을 시작으로 1936년 영화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모던 타임스(Modern Times)>를 비롯해 1940년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 등 그의 영화는 발표 자체가 역사였다.


현대문명의 기계만능주의와 인간 소외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1인 2역 연기와 히틀러를 패러디하여 뜨거운 이슈를 몰고 왔던 채플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고, 거기서 예술이 나왔다. 사람들이 이 말에 환멸을 느껴도 어쩔 수 없다. 진실이니까(I went into the business for the money, and the art grew out of it. If people are disillusioned by that remark, I can’t help it. It’s the truth).”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Failure is unimportant. It takes courage to make a fool of yourself).”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우리는 모두 서로를 돕길 원한다. 인간 존재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불행이 아니라 서로의 행복에 의해 살아가기를 원한다(We all want to help one another. Human beings are like that. We want to live by each other’s happiness, not by each other’s misery).”


“올바른 순간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삶의 모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I suppose that’s one of the ironies of life doing the wrong thing at the right moment).”


너무나도 숱한 명언들을 남겨 다 적기조차 힘든 위대한 인물이 바로 찰리 채플린이다. 그 중 나는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문장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기쁨만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스스로 겪고 있는 고통도 크고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채플린은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멀리서 한 번 바라보자. 그냥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툭탁거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들 어깨동무하고 맥주 한 잔 마시고, 뭐 그러한 모습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든, 영화에서든, 드라마에서든. 그게 바로 인간의 삶이다. 높은 지능을 갖고 있으며 유일하게 손을 사용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지만 더없이 평범할 수밖에 없고 지극히 본능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 말이다.


물론 그의 말에 진심 100% 공감한다. 그의 말은 언제나 옳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워낙 존경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데 21세기 지금은 가까이에서도 우리의 인생은 희극이어야 할 것만 같다. 매순간, 힘들기만 한 요즘이기에 헛웃음이라도 한 번 짓지 못하면 견뎌내질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제발 가까이의 인생도 희극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푸른 봄, 즉 청춘이니까


사랑에 대해 문득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사랑은 아름다운 희극이었을까, 절망적인 비극이었을까. 아니면 절망적인 희극이었을까, 아름다운 비극이었을까. 사랑할 때는 언제나 이 사랑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덤벼들었다. 20대의 나는 그렇게나 뜨겁고 강렬했으며 영화나 드라마 같은 사랑만이 전부라 여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사랑을 영화나 드라마로 배웠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사랑의 과정을 온몸으로 경험해야 했던가.


그래서 이별을 통보받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매일 멈추지 않는 눈물로 하루하루를 겨우 견뎌냈다. 이 또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이별 후 행동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만 날 뿐이다. 제아무리 당시에는 너무나도 진지했겠지만.


지금의 사랑은 그때의 경험이 축적되어 따스하지만 차분하게 젖어든다. 괜한 실수로 상대를 잃지 않으려 배려하고, 나의 사랑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대를 원망하기보다는 상대의 사랑을 이해하고 보듬으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슴부터 영혼까지 곳곳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우정에 대해 문득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우정은 어땠을까. 충분히 가치 있는 우정이었을까. 인생에서 단 한 명의 친구를 얻은 것만으로도 천하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는데, 나의 우정에 대해 궁금해진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청소년기를 지나 첫 번째 스물 즈음에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우정에 더없이 푹 빠져 진지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친구도 변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떨어져 있고 사회생활을 하느라 연락이 뜸해지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서먹서먹해진다. 어느 순간에는 이름조차 곧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친구라는 이름조차 어색해진다. 두 번째 스물에 접어들고 보니 과하다 못해 흘러넘쳐 바닥에 흥건한 기대나 희망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절실히 느껴질 때가 있다. 그냥 ‘That’s what friends are for(친구 좋다는 게 뭐야)’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연히 만났을 때 깔깔거리고 웃으며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고, 힘들 때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부터 사정없이 풀어 젖히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어주는 친구가 좋다. ‘겨우 그 정도?’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정도도 하지 못하는 관계들이 수두룩하다.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10년 동안 하는 사이보다는 낫지 않을까.


가족에 대해 문득 생각해 보게 된다. ‘아빠(드디어 여기서 아빠라고 쓸 수 있다)’를 생각하면 늘 미안하고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온다. 늘 이렇게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해 더욱 미안하고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온다. 엄마는 언제나 나와 통화하는 것을 즐기는 수다꾼이다. 고향에 내려오지 말고, 그 돈 아껴서 야옹이들 밥 잘 챙겨주고, 나 맛있는 거 더 사 먹으라고 하실 뿐이다.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처음 서울에 와서 좌충우돌 생활하며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진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가 안쓰러워서 차마 내려오라고 하지 못하신다는 것을. 반어법으로 속내를 표현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내 동생. 결혼하고 딸까지 함께하고 있어 더없이 삶이 버겁다는 것을 잘 안다. 전화 통화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그냥 묵묵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에 대해 문득 생각해 보게 된다. 두 번째 스물을 아~~~~~~~~~~~~~~주 조금 넘긴 나. 언제나 지금 여기 이 자리에 한결같지 않게 신나고 재미있게 살려고 발버둥 쳐온 나. 그러한 나를 나는 무진장 사랑한다. 나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충분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거 같다. 나는 위대하거나 거대하다고 말하는 그런 성공에 관심이 없다. 주식 부자에 관심이 없다. 그들이 사는 방식이고, 내가 주식으로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을 테니. 주식에 빠지지 않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로또에도 관심이 없다. 가끔씩 사긴 하지만 그건 일주일 동안 내가 갖게 될 행복감 정도로만 여긴다. 1등 걸릴 확률 때문에 산다고? 차라리 번개를 맞는 편이 빠르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으로 충분하다.


대기업 CEO가 될 생각도 딱히 하지 않는다. 어휴, 이건 그냥 뭐랄까. 번개를 100번 연속으로 맞는 것보다 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냥 빨리 포기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편하다. 되지도 않을 일, 될 수도 없는 일에 에너지 낭비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충분히 해도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솔직히 말하건데, 흙수저가 금수저 될 확률이 거의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흙수저에서 동수저 정도는 노력해볼 수 있을 거 같다. 인간에게는 흙 한 줌에 필적할 만한 희망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이유를 찾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빨리 잘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만 충분히 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매일 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고 있다.


이렇게 보니 내 인생은 정말 가까이에서 봐도 희극 같다. 냉소적으로 웃길 때도 있겠지. 그럼 뭐 어떠랴. 그것도 내 인생인 것을. 그렇게 마음먹고 살아가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용기도 충분히 필요하다. 사람들은 그걸 용기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 적절히 타협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데 말이다. 그런 용기를 갖고 있는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조금은 희망을 담은 내일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러니 인생은 사실 가까이에서든 멀리서든 희극이 되어야 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래야 살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으니까. 당신의 삶도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기를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끝없이 펼쳐진 성공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당신을 가로막을 생각은 없다. 그것이 당신의 행복이라면 그것을 누렸을 때 충분히 행복할 것이니까.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와 책임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좌절의 순간이 다가올지라도 결코 포기하지는 말 것.


다시 한 번 말해도 충분할 것만 같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봐도 희극이어야 한다. 무엇을 해도 언제나 빛나고 싱그러운 당신을 응원한다. 뭐, 어때. 당신은 아름다운 푸른 봄, 즉 청춘(靑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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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같은 회사에 거침없이 어퍼컷>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브런치에 한창 글을 올릴 때 이 이야기를 좋아해주신 분들이 참 많았는데, 드디어 이렇게 책으로 나왔네요.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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