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다시 공부하는가
어른은 사회인으로서 책무를 다해야 하고, 성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다 자란 사람이기도 하며, 다 자라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사람이며, 결혼한 사람도 이에 속한다. (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지만, 결혼 부분은 삭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정의되었던 것만 같다.) 지극히 사전적인 의미에서 어른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다. 통념적으로 스무 살을 전후로 해 어른과 청소년이 구분 지어진다. 정확히는 만 18세 또는 19세에 성인이 되었음을 만천하에 선포할 수 있겠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어쩌다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아무튼 어른’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하마터면 어른’이 되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겠다고 후회하기도 한다. 물론 후회한다고 해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시간은 앞으로만 나아가지, 뒤로 돌아 뚜벅뚜벅 걸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준비가 되어 있던 그렇지 않던 너무나도 ‘저절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왜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속 시원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혹시라도 부모님께 물어보면 이러한 대답을 듣기에 뻔하다.
“어휴, 뭐 그냥 살면 되지. 닥치는 대로 사는 거야. 특별한 건 없단다. 밥이나 먹자꾸나.”
‘그래도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나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대학 가서도 열심히 공부해. 그러면 앞길이 알아서 탄탄대로가 되는 거야.”
‘대학 가야만 어른이 되는 건가요. 혹시라도 대학 가지 못했거나, 안 가는 친구들은요?’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그들도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글쎄, 우리 언니는 연애하느라 바쁘기만 하던데. 그게 어른이 된 거 아닐까. 마음껏 눈치 보지 않고 연애할 수 있는 특권 말이야.”
‘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연애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뜻이구나.’
“우리 형은 보니까, 맨날 밤늦게 들어오던데. 그렇게 들어와도 부모님이 뭐라 하지도 않으셔. 대학생 되니까 그냥 알아서 뭘 해도 만사 오케이라니까. 부럽다.”
‘귀가 시간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거지? 오케이.’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뭔가 다 하는 거 같아. 어른이란 그런 것인가 봐.”
‘아무거나 다 해도 되는 거야? 그래도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을까?’
이 모든 이야기들이 충분히 정답이 될 수가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내 삶을 누군가가 정의 지어줄 수는 없다. 오직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앞선 길을 내가 따라 걸어볼 수도 있고, 참고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삶이 반드시 똑같지만은 않다. 나는 나대로 어른으로서 나의 삶을 나아갈 뿐이다.
최근 만화영화 <스누피(Snoopy)>에서 정말 주옥같은 명대사를 몇 가지 발견해서 여기에 써보려고 한다. <스누피>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을 하는데 어른에 대해 콕 집어주는 말인 듯해서 너무나 가슴에 콱 와 닿았다.
‘넌 아주 사랑스러운 사람이며 네 인생은 사랑으로 가득 찰 거야.’
‘날 이해하려면 항상 시간이 많이 걸려. 즉 날 안다는 건 날 사랑한다는 거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나도 수많은 멍청한 짓을 하면서 살고 있어.’
‘내일은 그냥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어떤가. 이 몇 마디만으로도 대충 감이 오지 않은가. 앞에서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이 남겼던 말과 함께. 사실 특별하게 정답은 없지만 그렇다고 오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순간들이 모여 ‘너’를 어른으로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기를 당해보기도 하고, 밥을 하루 종일 굶어보기도 했다. 신파적인 감성을 끌어내려고, 뭔가 억지 감동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한 경험들조차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어른인 나를 더욱 단단하게 해준 시간들이었다고 굳게 믿는다. 아끼고 소중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다 ‘나’를 꽉 채워준 밑거름이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다음번에 비슷한 충격파가 몰려와도 적절히 감당해낼 수 있었다.
차라리 나쁜 경험은 어린 시절에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감당할 만큼만 나를 휩쓸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또한 손을 뻗으면 잡아줄 누군가도 존재한다. 하지만 나이가 더 들어서, 두 번째 스물, 세 번째 스물이 되어 몰려오는 나쁜 경험은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파괴하고 몰아치고 휩쓸어버린다. 그냥 끝나버리는 것이다. 나 스스로 다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밀어도 잡아줄 손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커다란 축복이기도 하지만, 계속 어깨에 커다란 짐을 쌓아가는 지독한 현실일 수도 있다. 쌓아가다, 쌓아가다 결국에는 이겨내지 못해 주저앉고 마는 그러한 현실. 그러니 감당해야 할 것들은 감당하고,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은 빨리 접어버리는 지혜가 요구된다. 어른이 되면, 세상 모든 일을 내가 다 정의롭게 받아들이고, 의인으로서 감당하며, 천사처럼 다 들어줄 필요가 없다. 나 스스로가 무너지는 일만은 막아야 하지 않은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이 알아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공부가 끝났다고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인생 공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공부들이 나도 모르게 왕창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하고, ‘어른이’라는 표현으로 조금이라도 더 첫 번째 스물 이전의 삶을 기억해낸다.
2030의 경우는 어른이라는 타이틀 자체도 어색해 하고 있다. 피터팬 콤플렉스로 자신의 삶에 완충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편으로 회피 본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어른이 되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다. 감당하기가 힘든 것이다. 조금이라도 어려 보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의술의 힘까지 빌리는 상황에 이르는 현상도 이에 무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피한다고만 해서 어른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나이에 맞게 살고, 내 나이에 맞게 행동하고, 내 나이에 맞게 사고하는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남들이 뭐라 할 수 있는 부분들도 존재하겠지만, 신경 쓰지 말자. 내가 나를 어른으로서 충분히 정의해둔다면 어른으로서의 삶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결코 뒤로 물러설 수 없고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는 시간 속에서도 어른의 삶을 굳건하게 잘 헤쳐 나가자.
‘어쩌다 어른’이 되었고, ‘아무튼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하마터면 어른’이 되었음을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꿋꿋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자. 너무나도 뻔해서 더 듣기에도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이 사실 가장 보편적이고도 위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태풍이 몰아치면 슬기롭게 피해내고, 폭우가 쏟아지면 튼튼한 대피소에서 여유롭게 기다리자. 그렇게 하나둘씩 경험하고 앞으로 유사한 일이 발생했을 때 초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삶, 그 삶만으로도 충분히 어른으로서 잘 살고 있는 삶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과도하게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에 대한 점은 더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살다 보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올 것이다. 영화 속에서 현자, 제다이, 멘토, 마법사들은 답은 주지도 않고 질문만 던지고 사라지곤 한다. 울컥 하는 마음에 짜증도 올라오는 장면이지만 당사자는 다양한 경험과 삶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낸다. 훗날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언제나 ‘네가 옳다’라고 이야기한다. 늘 그렇다. 네가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이 옳다고 할 것이다.
나 역시 여기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질문만 던지고 답은 주지 않겠다. 오늘은 현자 코스프레를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