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지혜를 뺏었다면 네 것도 뺏길 줄 알아야 한다

왜 또다시 공부하는가

by Jeremy

한국인의 독서 시간은 하루 평균 6분, 그 중에서도 성인 10명 중 3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워낙에 들여다보는 인류를 위해 전자책이 발명되어도 책을 읽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읽지 않고 듣기라도 하면 어떨까 해서 오디오북까지 발명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독서는 늘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읽지 않는 것일까.


‘고개 숙인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지하철에서건, 버스에서건, 식당에서건, 커피숍에서건 스마트폰만 열심히 들여다본다. 딱히 볼 것도 없는데 말이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유튜브를 들여다보고, 인터넷 검색만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훌쩍 가버린다. 눈이 바쁜 만큼 손가락도 바쁘기 그지없다.


정보를 수집하는 시간은 빨라졌지만, 이에 집중하기는 힘들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지적 능력은 점점 퇴화되고 있다.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은 우리 눈앞에 엄청난 양의 지식을 떡 하니 만찬처럼 한 상 차려놓지만, 깊은 사유를 통한 지식의 양과 질은 오히려 빈곤해졌다. 풍요 속에 빈곤이라고나 할까.


이럴 때마다 독서의 중요성은 지나치지 않을 만큼 강조된다. 이제는 지겨울 만큼 말하고 또 말하는 데도 왜 이렇게 변화 또는 발전은 더딘 것일까. 읽기가 아니라 단지 보기에 가까운 행위로만 넘어가는 우리의 지식 습득 행위. 어느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학력자들의 문서 문해력이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로 밝혀진 우리나라. 이렇게 말하면 무안해지지만 사실 딱히 새롭거나 놀랍지도 않다. 읽고는 있지만 아니 보고는 있지만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는 많은 책들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많은 학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피와 땀, 눈물 그리고 무한의 시간으로 영글어낸 그들의 지식 총합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책을 후대에 많은 이들이 지식으로 쌓고 지혜로 엮어 더욱 발전된 삶을 꾸려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그 책을 읽어야 하는 의무는 없겠지만, 이는 단 한 권의 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류 문화의 유산을 잘 이해하고 아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뭔가 찝찝한 감이 없지 않다. 역사적 사명이나 문화의 중흥과 같은 표현은 우리 때나 썼을 단어들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과연 어떻게 더 설명해야 할지 헷갈리기만 하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또 잔소리 같은 말만 늘어놓아야 할지, 아니면 공부를 하라고 닦달하면서 꼰대를 자청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너무나 좋은데, 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싶기만 할 때가 있다.




신선놀음을 하며 유유자적이나 해야겠다


이 글은 제목을 조금 거창하게 잡았다. ‘세상의 지혜를 뺏었다면 네 것도 뺏길 줄 알아야 한다.’ 뭔가 아주 있어 보이고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 말은 독서를 의미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소개하고 선물하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비효과처럼 그 책의 지식과 지혜가 널리널리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1426년. 단기 3759년. 간지 을사년~병오년. 불기 1970년. 이슬람력 829~830. 황기 2086년. 히브리력 5186~5187. 아시리아력 6176년. 에티오피아력 1420~1421. 이때는 바로 세종 8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당시 어느 날 세종대왕은 신하들을 소집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나이가 젊고 장래가 있으니 오늘부터 집현전에 출근하지 말고 오직 독서에만 전념하여 성과를 나타내도록 하여라.”


자택 독서를 유급휴가로 줄 터이니 그동안 직무에 시달리느라 읽지 못한 책들을 마음껏 읽고서 복귀하라는 의미였다. 생각만 해도 눈이 휘둥그레질 제안이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영화관도 없고, TV도 라디오도 없으니 그냥 무작정 책만 읽으라는 어명은 천국의 속삭임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휴가 때마다 책을 한 보따리 싸 짊어지고 떠난다는 어느 글로벌 기업 CEO나 대통령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세조에 의해 폐지되지만 다시금 성종에 의해 부활한다. 이때 바로 상설 국가 기구인 ‘독서당’이 등장한다. 1491년 지금의 용산 자리에 독서당이 열렸으며 이후 옥수동 부근으로 옮겨 동호 독서당이라 불리게 되었다. 동호대교의 동호가 바로 동호 독서당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임금이 직접 독서를 장려하고 유급휴가까지 하사했다고 하니 그 유용한 가치가 얼마나 클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직하다. 지금에야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그만큼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할 여유가 많지도 않고, 시간에 쫓기고 회사일, 학교수업에 허덕이다보니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역시나 또 꼰대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스마트폰 들여다볼 시간에 잠시라도 정말 잠시 잠깐이라도 책을 ‘읽었으면’ 한다.


내실이 튼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어려움이나 힘든 상황을 지혜롭게 이겨내지 못한다. 그냥 쉽게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책은 당신의 삶에 주춧돌이자 중심이 되어줄 것이다. 한 줄, 한 권으로는 느끼지 못한다. 시나브로 내 육체에, 가슴에, 영혼에 쌓여가는 것이다. 그 쌓여버린 결과로 당신은 더욱 단단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냥 무턱대고 독서하라고 채근하고 싶지는 않다. 솔직하게 세상을 둘러보면 독서보다 재미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독서는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첫 번째 스무 살을 지나 두 번째 스무 살까지 올바른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일 수 있기에 조심스레 의견을 건네 본다.


만화책이어도 상관없다. 만화책 중에서도 철학적 깊이고 인문적 가치관이 뛰어난 책들이 무진장 많다. 동화책이어도 좋다. 쉬운 책부터 시작해야 어려운 책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할 때도 기초부터 탄탄하게 다져나가야 하지 않은가. 제발 오늘은 책 한 권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한 권을 읽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 잠깐 읽다가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봐도 좋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책을 읽다가 짐짓 지겨워지면 한강 변에 나가서 뱃놀이도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고 하니까. 습관으로 천천히 들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독서가 생활이 되고, 호흡이 되고, 밥 한 끼 먹는 것처럼 당연해질 것이다. 그러한 당신이 한 명, 두 명 늘어나는 모습을 본다면 이 글을 쓴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빈 시간에 할 것이 없는데 심심한 마음에 만화책도 읽고, 동화책도 읽고, 자기계발서도 읽고, 인문서도 읽고, 철학책도 읽다보니 여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책을 편집도 하고, 직접 글도 쓰면서.


시작이 어렵지 하다 보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시작이 어려웠지 지금은 늘 버릇처럼 책을 한 권 들고서 외출을 하게 된다. 최근에야 전자책이 있으니 스마트폰 보는 셈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중간에 오디오북을 듣기도 한다. 이것도 나름 재미있다.


이 글 다 쓰고 나면 뒷산 가서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책이나 읽어야겠다. 빈둥거리며 책 읽는 나는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내가 진짜 신선이려나. 여기가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유유자적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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