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서른아홉, 카페라테 같은 남자

커피는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에스프레소? 당신의 취향은?

by Jer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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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커피에 입도 대지 않았다.

끼니 때마다 커피 3숟갈, 프림 2숟갈, 설탕 3숟갈로 다방 커피를 타서 마시는 어머니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아 괴롭다고 한탄하셨다. 하지만 습관처럼 커피를 들이킬 수밖에 없다며

자책하셨다.

그러한 자책이 깊이 각인되었나보다.

하지만, 홍대 근처로 근무지가 옮겨지면서 커피에 입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에스프레소만 마셨다.

진한 향기가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들었지만,

물이라는 이물질을 넣기 싫었다.

뭔가 원조, 즉 오리지널로 마셔야 멋있어 보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쌉싸름함이 심하게 각성제로 다가왔다.

결국, 아메리카노로 입을 돌렸다.

약간은 밍숭맹숭했다.

샷 추가라는 방법이 있었기에

그리 고민하진 않았다.

깊은 향이 코를 찌르고, 입을 들뜨게 했으며, 눈을 안정시켰다.

그러다가 다시금, 조금 단 커피에 마음이 끌렸다.

라테 아트가 예쁘다는 핑계를 대며, 카페 라테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 같은 남자보다는

라테 같은 남자라 불리는 것이 더욱 달콤하게 느껴졌다.

농담삼아 나를 라테 같은 남자라 칭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카라멜 마키아또, 프라푸치노 등 달콤한 음료들이 나의 혀 끝과 뇌에 각인되었다.

점차적으로 커피를 향한 나의 기호와 취향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딱히 커피 공부를 한 것이 아니어서

지금껏 뭘 마셔도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모든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고, 중독처럼 찾기 시작했다.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뚝심과 심지, 그리고 취향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옆에서 커피 마시니 나도 마시고, 김치찌개 시키니 나도 시키고,

햄버거 먹자면 딱히 싫다 하지 않고 그냥 주문하게 된다.

텔레비전에서는 남들이 예스라 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더욱 귀찮아진다.

Only One은 개척자 정신으로 똘똘 뭉쳐 세상을 뒤바꿀 수 있는 자질을 가졌을지 몰라도,

난 일찌감치 One of Them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괜한 시도를 했다가 에너지만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선택을 하는 데 있어 더욱 조심스럽지만

결국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커피를 마시지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마시기만 한다는 것!

취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

고집마저 사그라들고 있다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모든 열정이 내게 휘몰아친다고 당당했던

그때는 슥슥 지워지고,

세상을 나에게 맞추지 않고 나를 세상에 맞추고 있는 시계 태엽 속 부품,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옆자리 동료가 어떻게 알았는지, 커피 마시러 가잔다.

이번에는 다른 거 마셔볼까나.

그래 봐야 결국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뿐.

아니다, 딸기주스 마셔봐야지.

과일도 자주 못 먹는데

새로운 선택을 해보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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