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반려묘 손발이 이야기
국내에 고양이를 기르는 인구가 자그만치 50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을 우리네끼리 집사라고 부른다.
고양이는 사실 기르는 동물이 아니다.
함께 생활하는 동물이지.
여간해선 훈련시킬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는 뜻.
올해 1월 전,
그레이 빛깔이 보슬보슬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했다.
빅뱅을 비롯해 숱한 연예인이 분양해 간다고 하는,
홍대에 XX숍이다.
생각보다 거금이었다.
사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격이라,
집안에 나를 제외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서는 그냥 나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외로움이란 저절로 치유되지 않았다.
딱히 불같이 연애를 해야겠다며 나대지도 않으니
그냥 하루하루 집안은 정말 고요했다.
평화로운 것이라고 되새김질하며,
나 스스로를 세뇌시켜나갔다.
없던 텔레비전을 구입하고,
굳이 라디오를 켜두는 것이 습관이 되어갔다.
사람의 목소리에서, 텔레비전 너머 사람의 형체에서
위로를 받으면 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사람이 왜 人이라는 한자로 표현되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기댈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려동물을 들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그 생각이 2년 가까이 머릿속 한켠에만 머물렀다.
그런데, 결정적 순간이 터져버렸다.
주위에서 워낙에 고양이를 키워보라며,
네가 고양이 닮았다며,
언제까지 평생 혼자 살다가 늙은 홀애비 냄새나 풍기겠냐며,
결혼도 늦고 애 낳는 것도 늦었으니 반려동물을 키워보면
그 두 가지에 대한 욕심이 본능적으로 모락모락 피어날 거라고
꼬드기고, 설득하고, 어르고, 달랬다.
'정말, 그럴까? 싱글이 편하다고 착각하고 사는 걸까? 내게도 부성애라는 것이 있을까?'
그렇게 우리 고양이, 손발이가 집에 당도했다.
왜 손발이인고 하니, 처음 본 순간 손과 발이 너무 예뻐서
무심결에 툭 튀어나온 이름이었다.
"아이고, 우리 손발이, 왤케 손발이 예쁘지."
그냥 그렇게 3개월 된 그 아이는 손발이가 되었다.
첫날은 공간에 적응하느라 손발이가 힘들었다.
그 손발이가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힘들었다.
길러보는 것이 처음이라 마음이 급했다.
얼른 적응하고, 매일 내 곁에 와서 놀아주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 녀석은 알고 있었지만, 난 몰랐다. 동물은 동물일 뿐이라며 하찮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녀석을 때리기도 했다.
녀석은 날 할퀴기도 했다.
갖다버리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 치밀어올랐다.
피곤한 몸을 겨우 누이고 있었는데, 새벽 3시, 5시만 되면 어찌나
집안 구석구석을 치타나 표범처럼 뛰어다니는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몇날 며칠 고양이 카페를 뒤지고 또 뒤졌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그렇게 이해하려고 애를 쓰면서, 왜 동물은 그렇게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까?
손발이와 밀당을 하기 시작했다.
굳이 내 발 밑을 지나가는 아이를 쓰다듬어주겠다는 핑계로
안으려 들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삶이 있는 거라며 살짝 무심하게 대했다.
왜 '반려'라는 단어를 써서 동물을 대하는지 깨닫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녀석이라며 거리를 두지 않았다.
"우리 손발이"라고 표현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내 욕심에 손발이를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기르는 것이라는 생각도 저만치 밀어내어버렸다.
함께 살아간다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손발이는 날 할퀴지 않았으며,
곁에서 골골거리며, 잠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집 공간에도 익숙해졌나보다.
그렇게 그렇게 나는 아빠가 되어갔고, 집사가 되어갔고, 반려자가 되어갔다.
그리고, 누가 그랬던가? 고양이는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는다고.
사람도 외로울 텐데, 동물이 그러지 않으랴?
결국 친구를 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첫 고양이, 손발이를 들이기까지 2년이 걸렸는데,
마음을 열고나니 둘째를 들이는 데는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결코 아이를 기르기 위한 전초전이 아니었다.
고양이는 고양이고, 인간 아기는 인간 아기였다.
우리의 동거는 이렇게 기본 생각부터 바뀌어갔다.
오늘도 난 출근하며, 신발 신는 공간까지 쪼로록 달려 나온 우리 아이를 안아준다.
"손발아, 아빠 갔다올게요."
오늘도 난 퇴근하며, 신발 신는 공간에서 꼬리를 흔들며 빼꼬롬이 쳐다보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손발아, 아빠가 왔어요."
베어버리려 마음먹으면 잡초 아닌 것이 없고,
품으려 마음먹으면 꽃 아닌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