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작품 앞에 30분 앉아 관람하니 전 여친 화를 내더라 ^^
(사진은 서울아트센터)
사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엣지 있는 것과 엣지 없는 사이의 간극을 ‘정말’ 구분하지 못한다. 두 단어 자체가 무슨 의미인지 받아들이지 못할뿐더러 받아들일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객관적 오차 범위를 따지지 않더라도 거의 진리에 가깝다. 남자는 화성에서 왔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미술관과 갤러리의 차이는 인지하고 있을까? 딱, 생각했던 그대로일 것이다. 문화 예술 좀 안다고 까불거리던 나조차 이 둘의 차이를 언뜻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자 친구나 아내를 더 사랑하는 마음에 짓눌려 있는 상대적 약자라면,
그녀가 엣지로 샤워를 할 만큼 가방, 슈즈, 잡지, 옷에 홀릭해 있다면,
그녀가 영화, 공연, 레스토랑 말고 어디 갈 데 없냐고 돌직구를 날린다면,
갤러리를 적극 추천한다.
마음을 다 잡았다면 주말 계획을 짜기에 앞서 갤러리와 미술관의 차이부터 쉽고 명확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련다. 준비되었는가? Get, Set, Ready, Go!
1번, 갤러리에서는 작품을 살 수 있다.
2번, 갤러리는 현대미술 중심으로 전시된다.
3번, 갤러리는 보통 입장료가 없다.
4번, 갤러리에는 걸려 있는 작품 수가 적다.
5번, 갤러리는 조용하다. 주말에도 조용하다.
자, 이제 미술관에 대해 설명하련다.
1번, 미술관은 가족 단위로 방문한 아이들, 방학 숙제 때문에 온 아이들, 동네 아이들을 포함해 온갖 아이들로 가득하다. 쓰나미 인파로 가득한 주말 못지않게 평일도 쓰나미다.
2번, 미술관에서는 작품을 거래할 수 없다.
3번, 미술관은 입장료를 받는다.
4번, 미술관은 작품 수가 무척 많은데 다 둘러보려면 순간 스캔이 가능해야 한다. 제대로 된 작품 감상은 솔직히 불가능하다. 뒤에서 계속 밀고 들어온다. 이런 시츄에이션, 무척 어이없으면서도 슬프기 그지없다.
5번, 미술관은 정신없다는 그녀의 불만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의 차이점을 설명하고자, 또는 갤러리의 의미를 이해하고서 개인적인 취향이 이쪽으로 옮겨왔기에 미술관을 약간 부정적으로 설명했다고 누군가는 느꼈을 테지만 우리나라 관람 현실이라 어쩔 수 없다, 분명히. 애써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거장의 작품을 직접 한 번에 확실히 눈도장 찍는 데 미술관에서의 대형전시만한 즐거움은 없다. 도록이나 미술책에서만 감상했던 마스터피스를 언제 한 번 지긋이 바라볼 수 있으랴? 물론 이런 아티스틱하면서도 엣지 좌르르 넘치는 표현을 지인에게 늘어놓으면 어이없어 한다.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왠, 미술관? 왠, 갤러리? 이러면서.
미술 작품은 작가의 영혼과 에너지, 사상과 철학, 희노애락 등을 캔버스에 쏟아 붓는 완벽한 결정체라 주장하고 싶다. 평면이 3차원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하나의 선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춤을 추기도 한다. 피사체의 표정이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 그 경계에서 오묘하게 팽팽한 줄다리기를 펼치기도 한다. 작품 감상의 즐거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의 의지가 200% 담겨 있겠지만 나름대로 지극히 나만의 주관적 평가가 가능한 매력. 텅 빈 머릿속을 꽉 채우기도 하고 꽉 찬 머릿속을 말끔히 지워주기도 하는 아이러니.
타 장르를 뛰어넘는 크로스오버로 나를 들뜨게 하는 설렘.
나를 사로잡는 바로 거기
경복궁 옆 삼청동 길 초입에 들어서면 오른편부터 갤러리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몰랐고 나 또한 우연히 혼자 걷다 발걸음을 틀었을 뿐이다. 쇼윈도에 내걸린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들어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작품 상태를 확인하러 나온 큐레이터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며 애써 불려 들어간 그곳. 갤러리라고 하는 마법 같은 아트 스페이스. 의도치 않았던 홀릭이 시작되었다. 더불어 나만의 필수 데이트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예쁜 레스토랑과 카페만 찾느라, 사진 찍을 장소만 섭외하느라 무심코 지나쳤다면 뚜벅이 걸음을 잠시 멈추고 주위를 마음껏 휘휘 둘러보시길. 국내 메이저 규모를 자랑하는 갤러리들이 아티스틱하게 당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을걸. 갤러리는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 있다며. 잠시 쉬다 가는 공간이라 생각해도 상관없다며.
거래를 위한 상업적 전시가 늘 진행 중이지만 쑥스러워하거나 버거워할 이유는 없다. 보통 1인 이상 소수 작가들의 전시가 주를 이루기에 잠깐만 사전조사를 해도 그녀에게 점수 딸 수 있다.
“이 작가는 물방울만 전문적으로 다룬대. 그 안에서 예술적 철학을 찾는 거지. 작품 OO은 XX라는 사람에게 거액에 팔리기도 했어. 그만큼 인기작가라고 하더라. 언젠가 이 작품을 특정 기념일을 위한 선물로 네게 주고 싶어.”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나를 평가할지 모른다. ‘이 남자 생각보다 센스 있네. 은근 괜찮은걸.’ 미적 감각 제대로 넘친다고 확실히 도장 좀 찍으려면 작품 하나를 지정해 그 앞에 10분이고 20분이고 죽 치고 앉아 있으면 금상첨화.
하지만 난 보통 그녀를 위해 갤러리를 찾진 않는다. 나를 위해 홀로 갤러리를 찾는다. 사람 냄새가 아니라 작품 냄새를 맡으러 간다. 아니 작품의 영혼을 느끼러 간다. 작품이 오롯이 뿜어내는 창조적 아이디어를 찾고자 갤러리를 향해 꾸역꾸역 진격한다. 그렇게 나를 주저앉혔던 작품이 몇 점 있다.
상상의 기계 생명체를 금속성 강하게 표현한 최우람 작가의 작품 앞에 쭈그리고 앉아 버릇처럼 고개를 왼쪽으로 38% 꺽은 채 10여 분간 째려본 적이 있었다. 이후 그 작품이 너무 보고 싶어 3번이나 더 찾아가 똑같은 행위를 펼치기도 했다. 무슨 트리뷰트 아트 퍼포먼스도 아니고.
붉은 산수화가 뿜어내는 강렬함에 매료되어 지하 2층에 자리한 이세현 작가의 작품 앞에서 몸이 꽁꽁 얼어버린 적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층적 공간이 하나의 캔버스에 얽히고설켜 뭔가를 힘차게 외치는 것만 같았다. 이때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10여 분 동안 누구도 그 공간을 찾지 않아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작품에 영혼을 빼앗기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으니까.
모 갤러리의 상설 전시 작품인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도 방앗간 잊지 않는 참새마냥 보고 또 본다. 길가에서 내부로 들여다봐야 하는 구조지만 조용히 관찰하고 있으면 ‘호박’ 속으로 휙 빨려들 것만 같다. 색감이 주는 강렬함도 좋고 볼륨감 있는 사이즈도 무척 마음에 든다. 여력만 된다면 정말 내 방에 곱게 들여다 놓고 싶을 정도로 욕심나는 작품이다. 전 세계 곳곳에 위치한 호박이란 호박은 다 따오고 싶다.
크리에이티브와 믹스매치
이렇듯 나를 버리고 싶거나 나를 채우고 싶거나 새로움을 준비하거나 아이디어가 고갈돼 머리를 쥐어짜도 해답을 찾지 못할 때 갤러리를 찾는다. 그리고 당신에게 권한다. 누군가는 무슨 그딴 취미가 다 있냐며 힐난하겠지. 하지만 내가 찾아낸 나만을 위한 커다란 즐거움이기에 당당히 취미라고 주장할 수 있다.
똑같은 작품을 만나더라도 매일, 매시, 매분, 매초 느낌이 다르다. 오른쪽에 앉아도, 왼쪽에서 서서 보더라도 다른 건 다른 것이다. 작품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외면하는 쿨함도 느껴진다. 그 누구도 나와 작품 사이의 공간과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 커넥션 안에서 온전히 부유하면 그만이다. 밀폐된 공간에 버려진 것처럼. 그렇게 작품과 내가 하나 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다 보면 창의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더라.
아, 지금 당장 달려가련다. 컴퓨터도 끄지 않은 채. 하지만 오늘은 삼청동이 아닌 청담동으로 발걸음을 떼련다. 그곳은 좀 더 과감한 작품들과 함께 아기자기한 소품 스타일도 믹스매치되어 전시 중이다. 한 점 구입하겠다는 충동질을 가까스로 억누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생각보다 저렴한 작품들이 나에게 손짓하는 놀라운 체험을 여러 번 했었다. 최근 나의 충동 심리는 갤러리에서 문득 들곤 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미술 작품의 가치는 누가 어떠한 잣대로 매기는 것일까? 궁금하고 또 궁금해진다. 작가마다 갤러리마다 탑 시크릿일 텐데 누가 알려주랴?
오늘은 청담동으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내일은 미술경매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욕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대놓고 미술은 어렵지만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갈증을 한껏 풀어주는 데 더없이 굿 초이스다. 그렇기에 난 즐거운 방문을 정기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분명 이것도 취미다운 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