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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후배들이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픔의 문장들

by Jeremy

정말 진심으로 후배들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선배로 활동했을 때 작게나마 가르쳐준 지식과 지혜들이 고루고루 피가 되고 살이 되었으면 좋겠다.


출판사 편집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회사가 많이 어려웠다. 누군가는 그만두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때 후배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그만두면 당장 어디로 갈지 고민이 많을 테니 내가 그만두는 것이 나으려나. 어차피 나는 작가로 활동하고 싶어 마음먹고 있었으니 이번 기회에 내가 희생 아닌 희생을 하는 것이 나으려나.’




결론적으로 내가 그만두게 되었다. 후배들은 자신을 위해 내가 희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가끔 돌이켜보면 그냥 다닐 걸, 하늘의 뜻에 맡길 걸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종종 있다. 사람은 언제나 후회를 하기 마련인 동물일 테니까. 조금 이기적인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지금 작가로서, 강사로서 활동하는 순간에 깊은 감사를 할 수밖에 없다. 나의 위치는 현재 이 모습 그대로일 테니 말이다. 후회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다.




사실 그 이후 후배들의 연락이 딱히 없어서 그들이 잘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있다. 그래, 잘하고 있겠지.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잘할 거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못 할 거 잘하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그냥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잘해나갈 것이다. 다만 언젠가 선배에게 일 잘 배워서 편하게 일하고 있다고 마음가짐만 살짝 가져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나 역시 그동안 만나고 스쳐 지나왔던 선배들을 생각해본다. 어떠한 선배는 일은 안 가르쳐주고 실수를 다그치기만 해서 힘들기 그지없었던 기억이 뼛속 깊이 박혀 있다. 또 다른 선배는 일은 잘 가르쳐주었는데 어찌나 호랑이 같은 선배인지 문제점에 대해 한마디 말도 못 하게 하는 분도 있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들을 통해 배울 것은 배우고 나의 후배에게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싶은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깨달으면 그만이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정성스레 쓸 수 있는 것도 편집자로서 선배에게 배움이 컸던 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어떠한 선배든 작가의 원고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철저하게 당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누구의 원고든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투고 원고를 검토할 때 거절 메일을 쓰더라도 깊게 마음을 담아 썼으니 말이다.




나 역시 최근에는 원고들이 편집자의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평가를 통해 출간이 결정되어 세상에 내가 쓴 책이 서점 매대 한켠을 차지하게 되었다. 늘 감사한 마음이 크다.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준 덕에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나의 후배가 있는 곳에 투고하고 싶어졌다. 후배는 나의 글을 보고서 뭐라고 평가할까. 내가 선배였던 시절, 많은 원고들을 평가하고 고민했던 그 마음가짐으로 나의 글을 바라봐줄까. 그렇다면 과연 오케이를 받고 통과할 수 있을까. 괜히 그런 묘한 생각이 들곤 한다.




후배가 잘되었으면 좋겠다. 이 말 백 번이라도 하고 싶다. 그렇게 나의 바람이 그 마음을 잘 설득했으면 좋겠다. 나의 원고가 정식으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될 때까지 ‘후배 파이팅’을 외치겠다. 그러려면 그 출판사로 투고해야겠지. 그런데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으려나. 조심스러워진다. 선배와 후배에서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라니.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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