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오늘도 나를 찬미한다

<밤 열두 시, 나의 도시> 중에서

by Jeremy

한창 벚꽃이 피어오를 로맨틱한 4월을 지나, 5월 장 미에 흠뻑 취하다보면, 어느새 6월 라벤더가 짙은 향기로 코끝을 쉴 새 없이 간질거린다. 봄의 내음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이 책의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우선 나의 집필 의욕을 충만하게 이끌어준 봄에 감사한다.


하지만 봄이어서인지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지는 욕망 또한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다면 누구와 함께 봄을 즐겨야 하나. 친구? 연인? 가족? 우리 야옹이들? 오늘은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혼자 나가보기로 했다. 이제는 더없이 익숙하다. 혼자 하 는 모든 것들이.


지금까지 혼자서 밥 잘 챙겨먹고(요리는 무슨, 늘 값싼 외식이다), 빨래도 잘하고(세탁기가 빨아주는 것이지만), 청소도 열심히(솔직히 청소는 불멸의 영역인 듯) 해왔으니 뭐가 문제인가 싶다. 벌써 15년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나 혼자서 한 일도 없는 것이 사 실이다. 누군가든, 기계든 날 위해 도움을 준 무엇인가는 있기 마련이었다.


이 땅에 수많은 신문과 뉴스는 어느 순간부터 ‘나홀로족’이 핫트렌드라며 연신 찬양에 가까운 기사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이는 흑색선전일 뿐이다. 홀로 고깃집에 당당히 들어가 삼겹살 구워먹을 정도가 되어야 진정한 ‘21세기형 싱글’이라며 호들갑을 떨어댄다. 혼자서 즐기는 취미의 종류들을 그럴싸하게 나열하며 ‘렛츠고 솔로’를 선동한다. 그렇지만 결국엔 ‘누구도 찾지 않은 독거노인의 쓸쓸한 마지막 길’, ‘미취업 청춘의 날개, 고시원에서 꺾이다’, ‘기러기아빠, 대책은 과연 무엇일까’와 같은 암울한 기사들로 희망 과 기대를 무참히 덮어버린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야누스의 얼굴이자 양날의 검처럼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혼자 독야청청 사는 것이 무진장 편하고 즐겁고 행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진정한 ‘나홀로’의 삶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는 미혼이든, 비혼이든, 독신이든 상관없이 절대적인 혼자의 인생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을 의미하는 한자 ‘人(인)’이 서로 기대고 있는 두 사람을 말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영단어 ‘human’ 역시 ‘인간’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인간미가 있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껴야 그 사람이 인간적인지, 인간미가 있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홀로족’이 어쩌다가 독불장군 식으로 ‘혼자니까 잘해요’처럼 인식되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잘못된 인식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책을 한 땀 한 땀 명품 바느질하는 심정으로 써내려갔다. 불혹을 넘겨버린 내 삶을 통해서, 술자리에서 무턱대고 한 말씀 던져주신 지인들의 오지랖을 통해서, 역사 속에서 올곧이 빛나는 위대한 분들의 발자취를 통해서 ‘혼자지만 잘해요’라고 말하고 싶다.


위대한 철학자들인 데카르트, 뉴턴, 로크, 파스칼, 스피노자, 칸트, 라이프니츠, 쇼펜하우어, 니체, 키에르케고르, 비트겐슈타인은 평생 독신을 고집하며 의도된 고독 속에 자신의 모든 것 을 맡겨버렸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화려한 싱글’이나 ‘솔로 판타지’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고요했으며 후세에까지 여운을 남겼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생활을 하면서 이웃과 교류 없이 살아왔던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밤 열두 시, 나의 도시》를 통해 건강한 ‘나홀로족’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이는 자존감의 문제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나다운 나를 찾아가는 시간, 그리고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아니 누군가는 혁신적인 생각이니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홀로 있음을 올바로 찬미하고 싶다.


공과대생이 무턱대고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희망만 안고서 상경한 이후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난 겨우 10만 원 남짓 들어 있는 통장만 연신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한숨과 함께 창밖을 내다보았다. 왠지 모를 단어들이 떠올랐던 기억이 난다. 희망은 이미 통장과 함께 나와 이동 중이었고, 미래, 설렘, 경험, 파이팅과 같은 단어들이 창 너머 사물들과 겹쳐 보였다. 불안하지만 절대 그러한 내색조차 하지 않고 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해냈다. 잘하는 사람은 좋아서 미쳐 있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들의 조언, 그리고 현실적인 가난, 마냥 밝을 것만 같지 않은 미래가 내 목을 조여 오면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더 좋은 무대에 설 수 있는데, 라는 후회와 아쉬움 너머로 현실과 타협하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내 인생이라는 뮤지컬에서는 평생 내가 주인공이다’라는 신념 아래. 지금도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 여전히 내 삶에 설레고 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후 기자로, 편집자로, 평론가로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누군가와는 첫 만남 이후 기억에서 사라져버렸고, 누군가와의 만남은 여전히 내 삶의 일부인 것처럼 소중하다. 그들 중에는 소위 엣지 있는 혼자의 삶을 누리는 분도 있고, 결혼했지만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인정해주는 부부도 있고, 기러기아빠이지만 우울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제2의 삶을 찾아 당차게 살아가는 분도 계신다. 모두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외로움이라는 옷을 내 몸에 꼭 들어맞는 슈트처럼 잘 맞춰 입었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문득 떠올릴 때마다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된다. 일부러 외로움을 찾아 나선 분들도 있었다. 외롭고도 고독한 순간의 절정에 머물러 있어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나 뭐래 나 하는 멋진 이유를 대면서….


세상 모두에게는 외로움이 껌딱지처럼 존재한다. 절대 부정하지 않겠다. 다만 이것이 짙은 외로움인지, 옅은 외로움인 지의 차이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외로움이라고 해서 뭐 별 것 있겠는가. 거기에 압도당하지 않고 나에 게 잘 맞춰서 입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나의 이야기, 그리고 내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무척이나 열심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으면 좋겠 다. 내가 자주 타는 지하철 칸에서 스마트폰이 아닌 이 책을 탐독하고 있는 당신을 만났으면 좋겠다. 어느 블로그에서든, 온라인 서점 리뷰 코너에서든 이 책이 ‘재미있다’는 한 줄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내게는 영원히 ‘짙은 외로움’이란 없을 것만 같다. 매일 기분이 좋아서 철없는 아이처럼 피식 웃으면서 다닐 것만 같다. 그것도 평생토록.


‘혼자 산다는 것은 싱글이나 독신으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고유한 자신만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뜻이다’라고 《혼자 사는 즐거움》을 쓴 사라 밴브레스낙은 이야기한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혼자의, 혼자에 의한, 혼자를 위한 이야기이지만 모두를 위 한 이야기인 이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쳐 당신의 손에 쥐어주고 싶다.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설렘을 가득 품기를 바라면서….


밤 열두 시가 다가온다. 내일은 어떠한 나만의 도시를 건설해 나갈지 고민해본다. 이래서 밤이 좋다. 특히나 열두 시가 되면 새로운 하루가 펼쳐지니까. 매일 바뀌는 ‘나의 도시’에 당신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