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정말 수능 200점 만점이었다고요?”

어서 와, 스무 살은 처음이지?

by Jeremy

“너 수능 몇 점 맞았어?”

“나는 공부 좀 했다. (200점 만점에) 169점 나왔다. 형은 몇 점 나왔나?”


이러한 대화가 오고가는 TV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들의 어리숙한 대화를 마냥 보다가 갑작스레 수능을 본 게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스마트폰이 손 뻗으면 집힐 듯한 거리에 놓여 있었다. 평일에 일 때문에, 시간을 때우느라,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하염없이 무의식적으로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웬만하면 주말에는 방구석 어딘가에 내팽개치곤 한다. 나름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해 내 의지대로 두뇌를 써보고 싶은 믿음, 소망,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스마트폰이 곁에 없으면 불안, 초조해지면서 뭔가 혈당이 떨어져서 손이 후덜덜 떨리는 기분마저 드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책 좀 읽어야 하는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가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글 좀 써야 하는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가 하루를 보낸 적 또한 한두 번이 아니다.


발이 달린 것일까. 최신형 스마트폰은 반려동물마냥 끊임없이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분리불안을 느끼도록 디지털화 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집 여섯 고양이 중 하나가 예쁘게 입으로 물어다가 내 옆에 갖다놓은 것일까.

여하튼 검색해보았다. 역시나 후회했다. 스마트폰이 옆에 있다는 것을. ‘수능’만 검색했어야 하는데 숱하게 뉴스 검색 사이트도 들여다보고,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도 들여다보고, 내 책 순위도 들여다보고 그랬다. (물론 이제 내 책은 순위에 없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수능’을 검색했을 때 95년 겨울 당시 수능의 현장감이 물씬 풍겨왔다. 기억이 피어오른다. 수능 당일은 무조건 추워야 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서도, TV 속 뉴스 앵커도, 하물며 단짝 친구들까지도 왠지 그날은 그래야만 하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하나의 의식처럼 왠지 수능 당일이라 모두가 그러려니 받아들이고서 고사장 학교의 정문에 들어섰던 기억이 난다. 그래 바로 그 기억, <응답하라> 드라마와 같은 그 기억이자 추억.




수능은 찻잔 속 태풍 같은 것인지도…


수능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공부의 정점이라 할 수 있지만 더불어 어른의 길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청춘의 인생은 수능으로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다. 시험을 잘 보든 그렇지 않든 수능이 끝나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전에 없던 자유가 주어진다.


학교에서, 집에서, 학원에서 점수를 위해, 오직 대학을 위해 제대로 숨 쉴 수도 없었고 뭔가 해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런 건 대학 가서 해도 충분해”라는 말로 다 덮어버려야만 했는데 자유라니. 그런데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니 일탈이나 방종과 자유를 구분하지 못하고 수능 시험 당일 저녁부터 생겨나는 많은 사건사고들로 뉴스는 바쁘기 그지없다.


나는 그랬다. 지금의 나는 전 세계 보헤미안 못지않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수능을 끝낸 그 날은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으니 자유를 즐길 줄을 몰랐던 것이다. 수능이 끝나고 일탈을 꿈꾸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수능을 망쳤다는 촉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인 줄만 알았다. 내 인생이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줄만 알았다. 주저앉아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20여 년 전 순수했던 기억을 지금에야 떠올려보니 굳이 그렇게까지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고민하고 밤새 울고 하지 않았어도 되는데 그때는 그것이 모든 것인 줄 알았고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인생의 패배자라는 주홍글씨가 가슴에 찍혀 사람답게 살 수 없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이야.


TV를 통해 점수를 채점해 보고 망쳤다는 느낌이 팩트체크가 되었을 때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정말 죽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굳이 닦지도 않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그런데 우연히 책장을 보았는데 눈에 들어온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책. 두 시간 만에 그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이거 무슨 영화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정말 생각보다 집중력이 약한 내가 ‘단숨에’ 이 책을 읽었다. 그 상황에서 절묘하게. ‘카르페 디엠’, ‘캡틴 오 캡틴’ 이런 짧지만 강렬한 명문장의 힘으로 그날의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 조용히 눈물을 닦고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던 기억이 떠올라 지금도 가슴 뭉클해진다. 그래서 이후로 명문장, 명대사, 명단어가 주는 힘을 나도 모르게 맹신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첫 번째 스무 살이 주어진다


수능이 200점 만점이든, 300점 만점이든, 400점 만점이든, 500점 만점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했고, 운까지 정확하게 따라준다면 하늘이 내려준 신공처럼 수능을 완벽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내가 단 한 번의 그 시험을 망쳤다고 해서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고 책망할 필요는 없다. 그러기에는 앞으로 수십 년 이후의 삶이 어떻게 스펙터클하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공부는 못했지만 돈을 많이 번 사람도 많다. 공부는 잘했지만 정말 공부만 잘해서 사회에 적응을 못해 현실의 낙오자가 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단순히 공부만 가지고 스스로를 판단하는 편협함에 빠져들지 말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할 것. 드디어 자유가 찾아온다는 사실. 그리고 그 뒤에는 역시나 경험해보지 못했을 책임이 뒤따른다는 진리. 어떠한 실수를 해도 입시 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받고 이해되던 방어막 같은 현실의 장막이 걷히는 것이다. 많은 어른들이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아, 다시 학교 돌아가면 공부만 미친 듯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서 자조하는 것이다. 그렇게 돌아가고 싶다면 대학교나 대학원을 가면 될 것을 하는 시니컬한 한마디도 던져본다.


누구에게나 스물은 처음이다. 앞서 경험해본 사람은 있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상황에서 경험해본 스물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조언해주는 것일 뿐이다. 나에게 대입해보았을 때 맞을지 틀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충분히 준비할 필요는 있겠다. 내 인생의 라이프 스토리는 이제 나만 써내려갈 수 있으며, 내가 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조연은 있겠지만 분명히 주연은 나 혼자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나는 만족스럽다. 바라기만 하고 노력하지 않는 이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폴레옹, 간디, 안중근, 소크라테스, 아우구스티누스를 넘어 빌 게이츠, 버락 오바마, 스티브 잡스처럼 비현실적인 누군가의 명언보다 너무나도 가까이에서 봐 왔으며 언제나 우리 곁에서 동시대를 함께하고 있는 피겨 스타 김연아의 따스한 한마디를 써보고 싶었다. 준비가 되어 있는 당신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인생이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이 살아갈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하지 않을까. 원인이 있으니 분명 결과가 그렇게 따라오는 것이다.


‘Welcome to Adult Life. 드디어 어른의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은 학창 시절보다 훨씬 당혹스럽고도 현실적인 상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만의 삶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선택이 수십 년을 펼쳐가는 첫 걸음일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