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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에서는 15~20세 남자에게 어른이 되었다는 표시로 상투를 틀어 갓을 씌우는 예식을 행한 후 초례를 치렀다. 여자는 쪽을 쪄서 올리고 비녀를 꽂는 의식을 행함으로써 성년이 되었음을 알렸다. 이처럼 성년이 되었음을 알리는 성년식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청춘들을 축하해 왔다.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은 ‘미혼자의 집’이라는 곳에 성년을 앞두고 있는 소년들을 2~3년간 합숙시킴으로써 전통을 이어간다. 이곳에서 정신적 인내와 육체적 단련을 받은 후 부족으로 돌아와 성인 대접을 받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는 또 다른 성년식이 펼쳐진다. 소년, 소녀들의 뾰족한 송곳니를 앞니처럼 가지런하게 만들기 위해 작은 망치로 치고 줄로 연마한다. 송곳니를 자르지 않으면 악마의 신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유대인 소년들은 성지 중의 성지인 ‘통곡의 벽’에서 ‘바르미츠바’라 불리는 성년식을 갖는다. 회당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민족의 구원과 태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들은 몇 시간에 걸쳐 눈을 감고 이를 암기한다. 미얀마의 성년식은 소년의 경우, ‘신쀼’, 소녀의 경우, ‘나뜨윈’이라 불린다. 소년들은 단기승려로서 수행을 하고, 소녀들은 귀에 귀걸이 구멍을 뚫는다.
이처럼 어른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의식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그만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의미하며 다르게 행동해야 함을 강조했다. 책임이 뒤따르고,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의무를 다해야 하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해도 되는 것보다 많아졌음을 의미했다. 그래서일까. 어른들은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모든 것이 용서되던 학창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우리의 성년식은 너무나 확고해졌다. 바로 수능시험. 이 날을 전후로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곧바로 단 한 번도 정류장에서 멈추지 않는 특급열차를 타버리게 된다. 어떠한 가르침도 듣지 못했고, 어떠한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느긋하게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 마냥 너무나도 쉽게 어른이 되어버린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이 날 이후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으니까 뭘 해도 이해할 수 있으니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하려무나’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뭘 해도 용서해준다고는 했지만 뭘 해본 적이 없으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놀아본 사람이 놀 줄 안다고 했던가. 그런데 이쯤 되면 다들 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생긴다. 연애? 취미생활? 원 없이 잠만 자기?
아니다. 오직 대학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지난 12년, 재수생활을 1~2년 더 했다면 그 기간까지 포함하여 단 하루도 누군가의 간섭 없이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 괜히 무한자유를 생각하게 된다. 일탈 조금 더하고, 게으름 조금 더 보태어 생각해보니 그건 바로 자취. 기숙사만이라도 땡큐를 외칠 수는 있겠지만, 기숙사 역시 간섭과 통제가 어느 정도 존재하기에 모두들 자취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자취는 아름다운 낭만이 아니다. 옥탑방 창문 밖 밤하늘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은하수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가슴에 십자성호를 그을 만큼 감동적이지 못하다. 한겨울에는 춥다 못해 온몸에 냉기가 돌고 한여름에는 갓 구운 오징어 못지않게 온몸이 열기로 후끈해진다. 멋모르고 선택하게 되는 반지하는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못지않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자취는 자유를 향한 절대 해방구가 아니다. 자취란 무한자유 뒤에 숨어 있는 무한책임을 요구한다. 자취를 넘어 자립에 대해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언어학자인 르낭(Renan)은 이렇게 말했다. “남에게 의지하면 실망하는 수가 많다. 새는 자신의 날개로 날고 있다. 따라서 사람도 스스로 자기의 날개로 날아야 한다.” 영국의 작가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자립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의 뿌리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빨래는 입고 나갈 옷이 없을 때 하는 것’, ‘옷을 두는 그곳이 바로 옷장이다’, ‘물컵으로 물을 마시는 것은 사치다’, ‘밥과 반찬은 반비례한다’, ‘자취 좀 해봐야 애국자 되고, 가족밖에 모른다’라며 뼈를 때리는 생활밀착형 언중유골(言中有骨)들을 남기련다.
이러한 농담 반, 진담 반 같은 말들이 떠올라도 자취는 꼭 해보기를 추천한다. 그동안 혼자 살아본 적이 없었고, 독립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보지 못해왔기 때문에 삶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지 깨닫게 해주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공과대학을 졸업하기에 앞서 우연히 보게 된 뮤지컬 <캣츠> 때문에 뮤지컬 배우가 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병을 앓은 적이 있다. 그래서 집을 뛰쳐나왔다. 당연히 대학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평범하게 결혼해서 평범하게 아들딸 잘 낳고 평범하게 부모님 공경하며 평범하게 내 집 하나 마련하고 평범하게 노후를 보낼 것이라고 나의 부모님은 철썩 같이 믿으셨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그런 모범생이었는데 말이다.
가출이라면 가출이었기 때문에 수중에는 몇 백 원도 없었다. 다행인 것은 연극을 하는 지인의 자취방에 얹혀사는 신세로나마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취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거기서 살았는지 몸서리가 쳐질 정도이다. 그렇지만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야금야금 베어물어가며 나 스스로를 책임지고자 홀로 살아야 하는 야생의 삶에 던져졌다.
아침마다 방 청소를 하겠다며 노크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엄마가 그렇게나 미웠는데 그 엄마가 그렇게나 보고 싶을 줄은 몰랐다. 일요일 새벽만 되면 목욕을 가자고 깨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렇게나 그리울 줄은 몰랐다. 자기 방은 추운 곳에 있다며 오빠는 좋은 방 있어서 좋겠다며 몇 년을 토닥거렸던 동생의 말이 생각날 줄은 몰랐다.
많은 자취생들이 자취의 장점으로 ‘엄마가 없다’를 꼽지만, 동시에 자취의 단점으로 ‘엄마가 없다’를 꼽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그렇다. 하지만 이왕 후회할 거 해보고 후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능한 직접 자신의 힘으로 월세도 마련해보고, 생활비도 마련해보기를 권하고 또 권한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살았다. 온실 속의 화초가 지긋지긋하고 괴로워서 탈출했는데, 세렝게티에 남겨진 햄스터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햄스터는 앞니를 날카롭게 갈고, 발톱을 바짝 세우고, 눈빛을 매섭게 다듬다보니 살아가는 방식을 알게 되었고, 나답게 살아갈 이유를 찾았던 것이다. 잘 굴러가는 돌이 잘 깎이고 깎여서 자갈처럼 동글동글해지듯 그렇게 살아갈 필요성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자취를 꿈꿨던 청춘이라면 책임과 의무를 충분히 견뎌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스무 살이 되어가고, 스물한 살의 또 다른 삶을 기다리고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