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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아들로 산다는 것.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주셨으니 더없이 감사한 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삶의 영원한 굴레이자 족쇄일 수 있다. 벗어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위를 끝도 없이 달리는 기분일 수도 있다. 특히나 누구네 집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와 나를 비교하기 시작할 때는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변해버린다.
칼바람이 휘몰아쳐 뺨을 찰싹찰싹 때려대던 한겨울의 어느 날이 생각난다. 군고구마나 군밤의 따스함, 아니 안방의 온기를 부여잡아도 모자랄 그 순간에 나는 누군지도 잘 모르는, 엄마의 잘 아는 분 아들과 무한 비교를 당하고 있었다.
“OO는 1등 했다더라. 반에서 1등도 아니고, 전교 1등. 얼마나 좋을까.”
“….”
“엄마가 아들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자.”
기분이 많이 상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괜히 누군지도 모르는 그 친구가 미워지기 시작한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는 기차에 승차해 그냥 꾸역꾸역 달려가기만 하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그러던 중, 중학교 방학숙제로 장래희망에 대한 조사가 주어졌다. 처음에는 그랬다. 무엇을 조사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언제나 들었던 이야기는 판사, 검사, 의사였다. 다른 직업은 세상에 없는 줄 알았다. 그 직업만 존재하고, 그 직업만이 나를 빛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돌아오면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막연히라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TV를 볼 때마다 뉴스를 소개하고, 토크를 진행하고, 라디오DJ로 활동하는 바로 그 직업, 아나운서를 나는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이런 동요가 있었다. 딱 그러한 기대이자 희망이 있었다. 마침 수소문해서 취업용 자격증 전문 서점을 찾았다. 취업을 준비하는 어른들만 한가득한 그곳에 중학생 아이가 뭔가를 찾겠다며 책장 한 켠에 미동도 없이 서서 몇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그렇게 나를 유혹할 줄은 몰랐다.
나는 부산 출신이라 구수한 부산사투리를 사용하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해야 함이 첫 번째 합격 관문이라고 냉철하게 적혀 있었지만 그러한 문구 따위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아나운서 자료를 찾다보니 우리나라 방송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했던 것 같다.
성적 향상에 커다란 도움이 될 거라며 부모님께서 큰 돈 들여 사주신 수십 권의 <세계문학전집>은 손도 대지 않아서 내 책장을 반짝반짝 빛낼 뿐이었는데, 무슨 말인지도 잘 몰랐을 ‘아나운서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는 쉼 없이 읽어 내려갔다. 결국 개학 후 논문 못지않은 자료를 제출한 나를 보고서 선생님은 눈이 휘둥그레지셨다. 딱 그러한 기억이 난다.
마리오네트 인형의 줄을 끊어버리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엄마들은 내 아이가 판사, 검사, 의사가 될 것이라 철석같이 믿는다. “우리 애가 공부머리는 참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그래요. 곧 열심히 할 거니 판검사, 의사는 문제없어요.” 이렇게 자녀를 희망고문하는 엄마가 참 많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하면 할수록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직업이 판검사, 의사가 되어버린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엄마가 꿈꾸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아나운서의 꿈을 꾸었고 신문방송학과에 가고 싶었던 나였는데 문과에 가지 못했다. 마리오네트 인형과 같은 내 삶은 이과로 이어졌다. 판검사보다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확고하셨던 엄마의 의지였다.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엄마의 계획이 더욱 철저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엄마에게 내가 아나운서가 꼭 되고 싶다고 의견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냥 하라는 대로, 가라는 대로, 움직이라는 대로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착한 아들로, 모범적인 아들로, 칭찬받는 아들로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싶다. 조금만 더 나쁜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만 더 불량스러운 아들이었어도 좋았을 텐데. 조금 덜 칭찬받아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나는 태어나서 두 번 가출을 했다. 그것도 대학생이 되어서 가출을 했다. 한 번은 케이블방송 VJ가 너무 되고 싶어서 오디션을 보러 가출했던 것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아무런 준비없이 단지 그 오디션을 한 번 보고 싶다는 희망만 가득 안고서. 당연히 탈락이었지만 그러한 오디션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어서 나는 살아 있음을 마음껏 느꼈다.
두 번째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서였다. 결국 나는 뮤지컬배우로 살았다. 전공자들도 쉽게 되지 못한다고 했는데 나는 배우가 되었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대로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순간들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가출을 해도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 내가 무엇을 하고 왔는지 뻔히 알고 계셨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랬던 것이다. 내가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버린 것을 인정하신 것이다. 내가 마리오네트 인형에 매달린 줄을 잘라버린 것을 인정하신 것이다. 이제야 나다운 나로 살아갈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꼭 이 한마디만이라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반드시 소리쳐 외쳐야 한다. 나만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가는 아무도 모른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닌가. 부모님 것이 절대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줄을 잘라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결코 회피해서는 안 된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계속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고 그에 맞게 방법을 찾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엄마에게 그러한 미움을 받을지라도 용기가 필요하다. 바로 그 한 줌의 용기가 나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간은 공기만 들이마시고 사는 것이 아니다. 헛될 수도 있고 실현 불가능일 수도 있지만 꿈을 들이마시고도 살아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미래는 그렇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지만 결국 저 끝에는 빛으로 가득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가. 그 출구로 나가고 싶어야 할 것인데 그 출구로 나가는 것이 싫어진다면 계속 암흑 속에서 길만 찾아 헤매는 내가 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후회할 필요는 없다. 바로 지금, 엄마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두 번의 가출 이후로 힘들고도 멈추고 싶은 삶이라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 내 삶을 살고 있다. 그에 충분히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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