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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浪漫), 즉 로망(roman). 이는 중세 프랑스어 ‘romanz’에서 유래했다. 12∼13세기 연애담(戀愛談)이나 무용담(武勇談) 등 통속소설(通俗小說)을 의미하기도 한다. 17세기에는 공상적, 모험적, 전기적(傳奇的)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현대에는 꿈이나 공상 세계를 동경하고 감상적인 정서를 중시하는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단어의 정의나 학문적 가르침을 떠나 지금의 나에게는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이다. ‘라떼는 말이야’ 요즘처럼 문화적 다양성과 학문의 꽃봉오리가 폭발할 듯 피어오르는 시기가 아니었다. 새롭게 알려진 이야기나 인물을 귀를 쫑긋 세워 듣거나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감동이었다. 뭘 해도 “꺄악”이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를 위한 낭만이자 낭만가객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최고였던 낭만이었던 것이다.
대학 시절, 날씨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교수님을 부추겨 초록빛깔 넘실거리는 언덕 너머 잔디밭에 둥글게 앉아 언제 사왔는지 알 수 없는 막걸리와 과자들을 푸짐하게 펼쳐놓고 인생을 논한다는 둥, 세상을 바꿀 거라는 둥 지금 들어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만 꺼내놓던 때가 있었다. 이런 기억도 떠오른다. 사회적 열풍을 타고 여기저기 쉼 없이 생기던 노래방. 한 시간 예약을 하고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다가 마지막 1분을 남겨놓고는 그 1분이 아까워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았는데도 부르고 있던 노래를 끄고서 015B의 <이젠 안녕>이나 푸른하늘의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둔 채>를 마이크 돌려가며 떼창 했던 추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사랑을 할 때도 참으로 주저주저 하고 미적거리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였다. 그러는 와중에 X세대라는 용어가 생겨나면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자는 열풍이 불었지만 그래도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 깍지 끼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참으로 답답하고 숨이 턱 막히는 모습일지 모른다. 낭만이라는 단어 자체가 구닥다리 같고 너무 올드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취업 준비하느라 얼마나 바쁜데 강의 시간에 딴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야?’ ‘혼자 코노(코인노래방) 가서 조용히 몇 곡 부르고 스트레스 풀면 되지. 그리고 다같이 마이크 돌려가며 부르다니, 헐.’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헤어질 땐 쿨 하게 SNS로 하는 게 낫지 않나?’
각자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온 세대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단절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혹시 이러한 모습이 그들에게는 낭만이 아닐까. 밀레니얼 낭만 말이다.’ 아날로그적인 낭만이 아니라 디지털화 되고, 4차 산업혁명 느낌이 물씬 풍겨나겠지만 이는 그들만의 디지털 낭만이자 밀레니얼 낭만이 아니겠는가. 그것 자체가 지금의 청춘에게는 쿨하고도 엣지 넘치는 모습일 테니.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면서 궁금한 점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재미와 감동을 넘어 당연히 그 드라마는 30~40대 이상이 주로 시청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비록 소재는 부모님이나 삼촌, 이모 이야기이지만, 드라마 출연 배우들이 요즘 핫한 배우들이 아니겠는가. 우리 때 표현이라면 하이틴스타, 청춘스타였다. 말 그대로 요즘 세대들이 좋아하는 ‘컬래버레이션’이자 ‘하이브리드’인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배우들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재해석해 풀어나가는 것이다. LP와 카세트테이프가 다시 유행하고 손글씨 열풍이 부는 것이 40대만의 노력일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흐름이 좋다. 억지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이다. 따로가 아니라 함께하고 있으니….
“얘들아, 너네도 분명 그럴 때 온다”
많은 어른들이 젊은 세대를 걱정하곤 한다. ‘요즘 애들은 말이야…’라는 표현은 이제 새롭지도 않다. 나 어릴 때도 어른들은 늘 그런 말을 했으니까. 그냥 세대가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동요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때도 참 듣기 싫었는데 요즘이라고 듣기 좋으랴. 그냥 그러려니 존중해주고 이해해주면 그만일 것을….
그 어른들도 어릴 적 그런 말을 숱하게 들어왔을 것이다. 드라마이긴 하지만 사극 속 조선시대 어른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그 자체로 바라봐주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까 싶다. 굳이 조언을 해준다면서 온갖 자료들을 찾아 분석하고 정리할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오직 ‘나’의 관점에서 생각한 자료. 이건 고집이자 아집이고, 불통이자 단절이다.
가끔씩 그런 생각도 들곤 한다. 20대의 낭만은 과연 무엇일까. TV를 통해, 신문을 살펴보며, 책을 읽으며 많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들만의 진짜 낭만은 무엇일까 궁금해지곤 한다. 아니 낭만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는 알지 의문이 든다. 만약 그러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꼭 외계인을 궁금해 하는 지구인 같지만 겉모습밖에 알 길이 없으니 그렇다. 함께 생활하고 호흡하며 웃고 떠들고 싸우기도 하면서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허심탄회하게 놀아줄 20대 친구들은 없을까? 혹시라도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귀는 열며 지갑도 열어야 한다고 했지만 이것 자체도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오지랖이자 실수이겠지.
더치페이, 혼밥, 독립성 이런 것은 나도 누리고 있는 것이라 차별점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혹시 줄임말, 게임, 카톡 대화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아, 그러한 문화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데. 도저히 내 체질이 아닌데. 그래, 그냥 그들은 그들의 문화를 즐기고 나는 나의 문화를 즐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 그 생각이 정답인 듯싶다.
그리고 그들을 알고 싶다면 나의 생각을 적절히 내어주며 함께 컬래버레이션하는 방법이 옳지 않을까. 밀레니얼 낭만이 궁금하다고 해서 내가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분명 어딘가에서 턱턱 막힐 테니까.
그런데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고민을 할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 이렇게 놀았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야. 요즘 것들은….’ 얘들아, 너네도 분명 그럴 때 온다. 그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구전동요 같은 것이라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만 해도 잘하는 것이더라. 지금의 내가 그러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 그런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들이 알고 싶어 이리도 애쓰는 것일까.
*** 출간도서 목록 ***
차마 하지 못한 사랑한다는 한마디 (메마른 가슴을 울리는 16인의 감동적인 편지)
라떼는 말이야 (어느 90년생의 직장생활 1년 보고서)
쓸데없이 열심입니다 (취미가 취미인 취미 수집가의 집념의 취미생활)
내 나이 벌써 마흔인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 (흔들리는 나를 잡아준 단 한 권의 인문고전)
밤 열두 시, 나의 도시 (지금 혼자라 해도 짙은 외로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