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학교에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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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기억난다. 고열로 이마가 펄펄 끓는데도 엄마 등에 업혀 등교했던 기억이. 후회된다. 왜 그때 학교 가지 않겠다고, 차라리 병원 가겠다고 떼쓰지 못했을까.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야 하고, 조금이라도 학교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아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과 거룩한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진도를 제대로 따라 갔을 리 만무하다. 다만 아픈데도 학교에 왔다는 훈훈한 미담으로 인해 매 수업시간마다 쏟아지는 선생님들의 극찬으로 어깨에 부담감만 더 쌓이고 있었다. 약이라도 먹어야 했는데, 양호실에라도 가서 누워 있었어야 했는데,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교실 저 구석 내 책상에 엎드려, 그것도 불편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아픈 데 기름을 더 붓고 있었을까.


당시에는 그랬다. 우등상도 중요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근상이 중요했던 시기였다. 성실함이 미덕이었고, 책임감이 필수였다. 사실 아플 때는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효율, 능률이 극히 줄어든다. 더불어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계속 아플 것이고, 그러면 계속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 자체를 끊지 못하게 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아프니까 효율이 떨어진다’. 더없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렇게도 중요하여 아픈 데도 꾸역꾸역 학교에 나왔을까. 그것도 지각조차 싫어서 제 시간에 딱 맞추어 등교를 했을까. 엄마 등에 업혀서. 신성한 행동도 아닌데 말이다.


혹시 우리는 모두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세뇌를 당했던 것은 아닐까. 무슨 일이 있어도 등교는 해야 하고,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야 한다는. 수많은 학생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방법으로서 말이다. 한 명이 아프다는 이유로 결석하고, 그렇게 했을 때 아무런 제재가 없다면 다른 학생도 결석을 할 테고 하는 그런 음모론적인 문제들 말이다.


그래,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학교는 사회생활을 성실하고 근면하고 효율성 있게 해낼 수 있도록 돕는 첫 번째 관문이 아니겠는가. ‘나’라는 한 명의 인간(人間)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잘 살아낼 수 있도록 크게 돕는 사명이 있지 않은가.



개근상이라는 야누스의 두 얼굴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학자, 비평가였으며 《영웅숭배론》, 《프랑스 혁명》을 집필한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성실은 모든 영웅의 특징이다. 깊고 위대하고 진실한 성실 말이다’라고 말했다.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였으며 《고백록》의 저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는 ‘성실은 안정된 생활을 가져오고, 안정된 생활은 성실한 인간을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사상가 겸 시인이었던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최후에 웃는 이가 되기 위해서 성실한 마음을 늘 간직하도록 하자’라며 성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외에도 이름 좀 알 만한 선구자들, 철학자들, 사상가들 중에서 근면, 성실을 찬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들도 정말 그렇게 매순간 쉼 없이, 후회 없이, 아쉬움 없이 근면과 성실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오른손과 왼손 위에 정확하게 올려놓고 생활했을까? 역사는 승자의 모습을 통해 쓰인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오직 1등 및 유명인만 입에 오르내린다. 평범한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성실, 근면함을 향한 찬사가 지리멸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아프면 쉬고 싶은데, 빨리 낫고서 일의 효율을 높이고 생산성을 최고로 만드는 것이 나을 텐데 말이다. 남들에게 타의 모범이 되고 싶지도 않는데 말이다.


많이 변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당연시되던 것들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별 것 아니게 느껴졌던 것들이 사회적 담론의 최전방에 나오기 시작했다. 변화해야 했다. 달라져야 했다. “이건 틀렸어”라고 했던 시기가 지나고, “이건 다른 것이야”라고 주장하던 세대가 왔었다. 지금은 “이건 틀렸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거야”라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엄마는 개근상을 꼭 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랬다. 개근상은 인간을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무난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튀지 않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근면, 성실한 사람이라고 알려질 수 있다고.


하지만 현대사회는 시간이 돈이요, 효율과 능률이 재산이다. 성과가 최고로 인정받는다. 그런 사회에서는 개근상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어서 조퇴해서 병원 가서 치료받고 다시 복귀하여 집중하는 편이 낫다. 하루 쉬고 나머지를 효과적으로 보내는 것이 옳다.


바이러스로 떠들썩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아프다고 꾸역꾸역 학교를 나오거나 출근을 하면 민폐가 되는 인식이 더욱 확고해졌다. 기침을 콜록콜록 하면 예전에는 손수건이나 티슈를 건네주는 것이 미덕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더는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기침을 콜록콜록 하면 사람들은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한다.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 ‘알아서 쉬지, 뭘 굳이 나와서 저러고 다니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래, 이제는 ‘오늘 너무 아프니까 쉴게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이러스와 함께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 “엄마, 왜 그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보냈어요? 그렇게 아파서 죽겠다는데 말이에요.” “그러게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안 가게 둘 걸 괜히 보낸 거 같아. 헬쓱한 얼굴을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왜 굳이 그랬는지. 근데 그때는 그렇게 해야 했어.”


그렇다. 그렇게 해야 했던 시기이다. 그게 옳은 시기였다.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해야 하는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나이이든, 이 글을 읽을 여러분의 나이이든. 그렇게 세상에 맞추어 나아가는 것도 근면, 성실한 나를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어떻게든 기본적으로는 근면, 성실해야 하나 보다. 그런 가운데 불평도 하고, 잘못되었다고 비난도 할 수 있는 것인가 보다.


스펀지에 물이 스멀스멀 스며들 듯이, 한여름 반팔셔츠에 땀이 베어들 듯이, 보고 싶은 누군가의 미소가 내 마음에 파고들 듯이 시나브로 쌓여가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 받아들이자.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또 다른 마음가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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