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자유와 마주하는 첫 번째 철학적 사유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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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경제적 자유, 양손을 자유롭게, 자유로운 오늘 하루, 자유여행, 자유토론’ 등 자유라는 단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공기처럼 우리 일상에 다분히 ‘자유롭게’ 녹아들어가 있다. 그래서인지 그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지 느껴본 적도 없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재미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할, 아니 그렇게 해보았으면 하며 권하고 싶은 주제이기에 조심스럽게 꺼내어본다.


자유. 사전은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해보자면, 내 마음대로 원하는 것을 사고, 내 의지대로 어느 장소에 가고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자유가 그렇게나 무거운 것인지 몰랐다. 100톤짜리 망치 못지않은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 있었던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나의 의지와 행동이 나를 둘러싼 어른들의 통제 아래 반응했기 때문에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반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100%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고 싶은데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통금 시간이 있었고, 다음날 학교 수업을 위해 반강제적으로 적절하게 컨디션이 유지되어야 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잔소리를 하고, 선생님은 나에게 ‘라떼는 말이야’급 조언을 남겼다. 나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많은 어른들은 내가 모범생이어야 했고, 우등생이어야 했음을 강조했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지금 생각해보면 새삼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니 그러한 보살핌이 그리워질 때가 많았다. 인간은 더없이 이기적인 동물인지도 모른다. 갈대 같은 존재인가?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분명 의외로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동물이거나 갈대 같은 존재인 것이 확실하다. 제발 대학교만 가면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온전하게 누리는 자유를 마음껏 즐기리라고 다짐해 왔으니 말이다. 참으로 쉽게도 입 밖으로 내뱉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모님의 구속이 그립고, 선생님의 잔소리 한마디가 아쉬웠다. 정말 나도 모르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고슬고슬한 질감의 밥이 담겨 있는 밥공기를 앞에 두고 ‘공부는 다 때가 있다며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고 일장연설을 하신 아버지를 마주하며 뒷목이 당겼던 엄청난 경험이 대학 입학 후 의외의 추억으로 떠올랐을 줄이야. 하버드대학 연구진도 인정했다는 밥상머리 교육을 위해 ‘대학 가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으니 지금 나 죽었네 하며 최선을 다하라’고 훈계하시는 모습을 견디다 못해 울컥하며 집을 나서는데 그 뒤에다 신발을 집어던져 완벽하게 명중시킨 엄마의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라고 크게 달랐을까 싶다. 당시의 나였다면.


그랬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들었다. 하지만 책임이 뒤따랐다. 그건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운전면허증만 따면 하늘까지 날아가도록 속도를 낼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단속 경찰이 잊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러한 자유다운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었기에 더욱 자유가 주어졌다. 물론 원하지 않았던 자유였다. 살아남아야 했고, 방법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부모님의 보살핌이 그립다고 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선생님은 나의 삶에 디테일한 영향을 끼쳤기에 길을 좀 찾아달라고 요청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교수님은 달랐다. 가장 쉽게는,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교무실로 불러내어 야단치는 일도 없었던 것이다. 힘들어 죽을 것만 같은 나에게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조를 수도 없었다. 어색하고 답답했던 것이다.


봉건제, 절대군주제가 몰락하여 영국의 권리장전, 미국의 독립 선언, 프랑스의 인권 선언을 통해 기본적 자유의 보호를 위한 협약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이 법적으로 보장되었지만, 일반 시민들은 누려본 적도 없는 자유를 어떻게 누려야 할지 전혀 몰랐던 심정. 딱 그러한 상황에 들어맞는 대학생이었다. 그것이 바로 나였고, 나의 친구들이었으며, 신입생들이었다.



자유란 무엇인가?


굳이 별 것 아닌 것 같고, 뻔하디 뻔한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반문하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자유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 단계 더 성숙하는 인간으로서 대우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을 따름이다. 인생 선배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한마디 하려는 꼰대 짓이 결코 아니라고 두 번 세 번 강조하고 싶다.


여러분은 더 이상 누구도 구속하지 않는 사회에 들어선 것이다. 누구도 그 길로 이끌어준 것이 아니요, 아무도 그 길의 어려움과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해준 것이 아니다. 자유가 존재함으로, 학창시절보다 더욱 매섭고도 냉정한 야생의 세렝게티 위 한 마리 새끼사슴으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새끼사슴도 살아남기 위하여 뿔을 더욱 단단하게 갈아놓을 것이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지켜줄 무기를 찾아낼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이나 지시 없이 나만의 판단으로 맞닥뜨린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해서 누군가가 곁에서 곧바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충분히 단련되어야 한다. 더없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 자유라는 얼굴을 마주하다 순식간에 책임이라는 뒷모습에 놀랄 수도 있다. 야누스의 두 얼굴이 따로 없다. 분명 자유가 내 편이 아닐 수도 있다.


꼭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기회가 된다면 모두 함께 둘러앉아 진지하게 털어놓고 싶다. 옳고 그름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누구를, 어떻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구분 짓는 사회적 잣대는 분명 입시일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누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슬쩍 한마디하고 싶다.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야 어른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자유로 충만하고 당연시되어 있는 어른의 삶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른의 하루는 생각 이상으로 자유에 반하는 고민으로 가득하고, 분노로 넘쳐나며, 아픔으로 들쑤신다. 그러니 왜 자유가 중요함과 동시에 반드시 고민해야 할 명제인지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자유는 분명 새벽녘 아련하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망과 설렘을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분명 태양은 때가 되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게 된다. 상실과 안타까움을 가득 안고서. 그러니 자유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싶다.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 모두에게. 선뜻 답하는 누군가는 없을지라도 분명 뜬금없이 맞이하게 된 자유에 대해 한 번이라고 고민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는 그렇게라도 말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좌충우돌의 연속인 삶이었다. 그냥 알아서 다 될 거라며 근거 없는 희망만 가득 안겼을 뿐이었다. 그것이 큰 문제인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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