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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오늘 하루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은 거 같고, 내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분명 아침에 눈을 뜬 후 이불 속에서 꼬물거리고 있을 때 ‘오늘은 이걸 해야지’ 하는 계획을 어렴풋하게나마 세우곤 하는데, 왜 하루를 마감하면서 다시금 이불 속에 파고들었을 때는 똑같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그래,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하는 무심한 척 츤데레 같은 칭찬이 무색할 정도이다.
가끔은 끝이 없는 쳇바퀴를 열심히 달리기만 할 뿐이라 여겨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거대한 장치 속 톱니바퀴의 한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에게 낙담하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고민이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내’가 내 삶에서 결정을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 결정이 맞으면 다행이라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그 결정을 내려준 사람을 충분히 비난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대학이라는 1차적 목표를 이루고 나니 스스로에게 불안함과 허무함이 찾아온 것이다. 나에게 피겨스케이팅의 재미를 눈뜨게 해준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터 김연아 선수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나니 더없이 허망하고 무력해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베스트셀러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쓴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백 년간 열심히 노력하여 결국 인간은 물질적인 부를 쌓고,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어냈으며, 전체주의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그렇게 힘겹게 성취한 자유를 독재자에게 넘겨주고 싶어 하고, 스스로 톱니가 되어 그냥 호의호식하며 살고자 하는 유혹에도 사로잡힌다. 자유는 인간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선사하였지만, 동시에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불안함과 무기력함을 배가시켰다는 것이다.
마음을 다지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갑작스레 훅 다가온 자유를 조금이라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누려야 할지조차 몰라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 가끔씩 주위에 그런 이웃들이 산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들었을 것이다. ‘서울대 나온 옆집 누구누구 아저씨는 사회에 적응을 못해서 백수로 살더라.’ ‘명문대 졸업한 누구네 집 딸이 서류전형에서는 늘 합격하는데 면접을 못 봐서 취업하는 게 쉽지 않다더라.’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이는 떠돌아다니는 괴소문이 아니다. 내가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오늘’을 살아봤던 적이 없는 ‘내’가 아니던가. 하루하루가 새롭게 그 하루하루가 날마다 생소하기만 하다.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누려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누려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준비를 해야 한다.
‘성인(聖人)이 되라는 것도 아니다. 성인(成人)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즐거움 Vs. 최대한의 즐거움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버스커버스커의 장범준이 불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전설의 밴드 산울림이 먼저 불렀던 <회상> 중 일부 가사이다. 청춘의 삶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낸 것 같아 놀랍기만 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일까. 우선 지겹도록 많이 들었겠지만 스마트폰을 잠시라도 내려놓자. 하루에 10분 만이라도 내려놓자. 그리고는 부모님이 사두신 책이라도 한 권 꺼내어 읽어보자. ‘그렇지, 맞네. 요즘은 e-book과 오디오북도 대중화 되어 있으니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군.’ 그렇다면 관련 앱을 깔아보자.
그리고는 읽자. 또 읽자. 읽다가 재미없으면 잠시 쉬어도 된다. 혹시나 도저히 못 읽겠으면 다른 책을 읽자. 그것도 힘들면 동화책도 좋고, 만화책도 좋다. 우선은 읽자. 그렇게 활자에 익숙해지다 보면 다른 책도 읽을 수 있도록 뇌에 근육이 생길 것이다. 읽는 것이 힘들다면 듣는 것도 괜찮다. 오디오북은 예상치 못한 듣는 재미를 선사한다.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이다. 그 역시 처음이었을,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인생을 차분하게 정리해 ‘나’에게 조곤조곤 들려주는 것이다. 내 인생과 그 인생이 결코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한 번쯤 발자취를 좇을 순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간접경험이 가져다주는 힘을 크고 놀랍다.
딱히 어떠한 책이 좋다고 여기서 풀어놓고 싶진 않다. 나에게 맞는 책이 있으니 동시에 각자의 삶에 맞는 책이 있을 테니. 그 책을 고르는 과정 역시나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가고 싶었던 학과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난감했다. 1학년 때는 그나마 교양 수업이 있어서 재미있을 것만 같았던 수업은 열심이었지만 전공 수업은 정말 싫었다. 전공 수업만 있는 날은 학교를 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말 그대로 입학과 동시에 방황이었다. 자유롭게 등교하면 되는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자유롭게 등교 자체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한 순간들이 늘어나면서 나 스스로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는데, 이제는 이렇게 멈추어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뒤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뭘 해도 잘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우연히 책을 집어 들었고, 그 책은 좀 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라는, 지극히 뻔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에야 그 당시보다는 그런 말이 지겨울 정도로 정설이지만, 그때는 그 말을 당당히 해주는 누군가도 별로 없었다. 그냥 사회에 맞추어 살아가는 톱니바퀴 인생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굳이 학교를 바꾸거나, 학과를 바꾸거나 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최소한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그 밖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찾으며 둘 사이의 충돌을 줄여나가는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행복을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게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누릴 기회를 찾으려고 애썼던 것인데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었다. 각자에게 자유는 분명히 주어진다. 하지만 어떻게 받아들이고 현명하게 누리느냐에 따라 나의 10년, 20년 인생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살기도 힘든데, 무슨 10년, 20년 이후 삶을 걱정해요’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험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조금씩 시나브로 쌓아가는 것이다. 언젠가를 대비하여. 그러고 보니 요즘은 그런 말도 있더라. 욜로족들은 훗날 아픈 건 그때 생각하고 지금은 그 돈으로 즐겁게 사는 게 낫지 않냐고 주장한다.
사실 무엇에도 정답은 없다. 전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만. 하지만 분명 그러한 선택을 하기까지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선택의 자유까지 타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톱니 인생은 이제 그만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