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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그렇다. 말은 쉽다. 인생에 있어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 듣기도 싫다. 양손으로 귀를 꽉 막고만 싶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과정이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뉴스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 즉 기업 CEO, 정치인 등 성공에 다다르기까지 과정이 늘 그렇게 공정하지만 않았다. 뉴스를 볼 때마다 기가 차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최고의 위치에 올라와 있으니 그 과정쯤이야 쉽게 묻혀버린다. 그게 인생이라 굳게 믿었다. 나는 손해 보지 않고, 합법적으로 남의 돈을 가로채는 것이야 말로 미덕인 것만 같다. 현대사회는 그러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러한 사람을 롤 모델로 삼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보니 나는 그러한 배포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하고, 나처럼 사는 사람은 나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부시럭거리며 찾다가 라디오 앱부터 켜는 나는 첫 곡을 들을 때마다 하루를 짐작하게 된다. 마치 점을 보듯 말이다. 오늘 하루는 파이팅이 넘칠 거야, 아니야, 오늘은 분명히 차분하고도 분위기 있는 하루를 보내고야 말 거야.
이러한 마음은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떠오르는 공상 같은 것이지만, 그렇게 하루를 제대로 나답게 보내기 위해 시동을 거는 것만 같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더없이 최고의 상상력 공간인 화장실에서도 내 삶의 과정은 꽃을 피운다. 화장실이라고 하면 보통 용변을 보는 곳이나 샤워, 세수 등을 하는 곳으로 쉽게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나에게 화장실은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마음껏 뽑아내는 곳이다. 절대 스마트폰은 들고 들어가지 않는다. 온 몸이 릴렉스가 가능하기 때문에 생각도 마음껏이고, 상상력도 무한대로 뻗어나간다.
편집자로 살면서 떠올린 수많은 기획들과 제목들과 카피들이 화장실에서 나왔다고 말한다면 나 너무 ‘더티’하게 보이려나. 하지만 나에게는 상상력 박스요, 크리에이티브한 곳이다. 지극히 성스러운 곳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물론 들키고 싶지 않은, 약간은 지저분하게 느껴질 시크릿한 공간이지만 말이다.
굳이 차를 사지 않았다. 정면만 보지 않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고가 날까봐 조심조심 앞만 보며 달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방팔방을 둘러보면 예상치 못한 감동과 재미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데 왜 굳이 앞만 보고 달려야만 하는 것일까 싶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오히려 걷는 데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얼굴 절반 이상은 가릴 것만 같은 헤드셋을 머리에 장착하고서 창밖을 내다보며 오디오북을 듣거나 음악을 감상한다. 버스에 앉으면 꼭 창가 자리에 앉는다. 그것도 꼭 버스 뒷바퀴 때문에 불룩 솟아 있는 그 자리 말이다. 다리를 앙 모으고서 창밖을 내다보면 집중이 잘된다고나 할까. 나만의 습관이기도 하다.
버스를 타고서 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재미있다. 수많은 가게들이 서로 뽐내듯 경쟁적으로 내걸어둔 가게 간판을 보고 있으면 조화로운 듯 그렇지 않은 듯 애매모호한 감정이 들고, 그것을 디자인적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그리고 서울에 참으로 교회가 많다는 것은 밤 버스를 타고 다닐 때 많이 느꼈다. 붉은색 거침없는 빛깔은 산복도로를 넘나드는 버스 창가에서 유독 강렬하게 유리에 비친다. 빵집도 많이 보이고, 고기집도 많다.
이렇게 바라보며 기억하고 체크하는 하나하나를 쌓아가다 보니 기획하고 편집하고 디렉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력은 나도 모르게 하나둘씩 시나브로 가랑비에 옷 젖듯 쌓여가는 것이었다. 정말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걸을 때는 더없이 신난다. 보도블록의 울퉁불퉁 감촉을 타고 신발을 지나 올라오는 진동은 약해빠진 나의 척추를 사정없이 뒤흔드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이 꽤나 리드미컬하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고개를 아래위로도 움직여본다. 버스 안에서는 앞, 옆, 뒤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3D 입체감을 갖고서 위아래까지 가능해진다.
하늘은 더없이 파랗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인 것 같지만 저편에는 두둥실 뭉게구름이 덩실거린다. 걷다보니 목 뒤와 겨드랑이, 그리고 이마에 땀이 송골 맺힌다. 딱 이럴 때 편의점에 들어가면 기다렸다는 듯 시원한 음료 한 잔이 나를 반긴다. 정말 나를 기다렸다는 듯.
그리고는 다시금 걷다 보면 사람들의 표정이 보인다. 걸을 때 이렇게 걷는 사람, 걸을 때 저렇게 표정 짓는 사람. 그런 모습을 보면 요즘 사는 게 어떠한지 조금이나마 그려진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역시나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길에서 다투는 커플들도 많이 보인다. 뭐가 그리 서로가 미웠기에, 왜 그리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걷다 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참 많다.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만나게 되는 것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지금 이렇게 글을 쓸 때 참으로 도움이 되었다. 하나하나가 글감이었고, 스토리였으며, 커다란 줄기였다.
10대든, 20대든, 30대든, 40대든, 50대든, 60대든, 70대든, 80대든 우리는 결과만 박수 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어두어야만’ 가치 있게 살고 있다고 인정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그러한 엄청난 부(富)는 쉽게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진리를 빨리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즉 나는 그냥 소소하고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평범함 속에서 얻게 되는 가치 있는 과정들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평범함 이면에 숨어 있는 진정한 의미들 말이다. 역사는 언제나 한두 명의 승자들과 리더를 중심으로 엮여가기 때문에 정작 수많은 백성들의 삶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그렇게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 모여야 역사가 엮여간다는 것을.
나라가 어려울 때 늘 큰 힘이 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의지이자 평범한 보탬이 아니었던가. 그러한 평범한 과정들이 모여야 위대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코 결과만 바라보고 삶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정이 행복하게 이어질 수 있는 그런 삶을 선택하라고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싶다.
조금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아니 많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좌절하지 말지어다. 분명 배우고 얻는 것들이 있다. 나 역시 어려웠던 시절에 사기를 당한 적도 있었다. 그 돈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를 참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러한 순간이 켜켜이 쌓여 조금 더 단단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한 과정을 찾는 순간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고맙다.
내일은 로또를 사야겠다. 딱 5천 원어치만. 일주일이라는 과정 동안 참으로 설레고 기분 좋을 것이다. 꽝으로 5천 원을 날릴 수도 있고, 본전으로 만족해야 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주일의 행복이라는 과정의 소중함을 결코 잃고 싶지 않다.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을 만큼.
과정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상처를 극복하는 데 지혜로울 수 있고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다. 오직 목적지만 바라보고, 결과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허탈함과 상실감에 빠져들어 인생의 나락으로 자신을 묶어버릴지도 모른다.
더없이 잘난 사람들로 가득한 현대사회에서 자존감을 키워나가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다. 지금 내가 밟아온 과정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잃지 않는 것이다.
청춘의 과정은 더없이 싱그럽고 맑고 아름답다. 왜냐하면 오직 나만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새롭고도 다채롭다. 뭘 해도 다 이해가 되고, 뭘 해도 다 박수 받을 만한 그러한 과정이 아니겠는가. 지금 바로 시작해보길 바란다. 뭐라도 가능하다. 변명이 굳이 필요 없는 당신의 지금을 나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