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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리다 Feb 06. 2020

봄을 담은 냉이밥

뚝딱 채식 요리


장 보러 가서 노지 냉이가 눈에 보이길래 반가운 마음에 얼른 장바구니에 담아왔다. 아직 쌀쌀한데 냉이는 파릇파릇 봄을 알리고 있다. 오늘은 냉이밥을 계획이다. 레시피는 따로 없다. 떠오르는 대로 손을 움직인다.


먼저 흙 묻은 냉이를 하나하나 다듬어 물에 씻는다. 물에 씻기면서 번지는 냉이 향에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즐겁다. 잘 씻은 냉이는 물이 빠지도록 뽀얗고 하얀 뿌리가 위로 가게 해서 채반에 담아 둔다.


깨끗이 씻어 불려놓은 현미와 찰보리쌀에 연자육 몇 알을 넣어 솥에 밥을 안친다. 솥에서 밥이 끓는 동안 밥을 비벼 먹을 양념장을 만든다.


냉동실에 얼려둔 엄마가 키우신 청고추와 홍고추를 꺼내 씨까지 또각또각 잘게 다지고 싱싱한 대파도 사각사각 썰어 다진다. 그리고 살짝 볶은 참깨도 대충 갈아 놓는다. 깨가 톡톡 터질수록 고소한 향에 기분이 좋아진다.



양념 간장용 작은 유리병에 준비한 재료를 가지런히 담는다. 잠시 후 간장을 부으면 섞이겠지만 섞일 때 섞이더라도 가지런하고 예쁘게 끼리끼리 담은 후 잠시 이 재료들이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과 시간을 생각한다.



그리고 맛간장을 붓는다. 맛간장은 우리 집 대대로 내려오는 집간장을 가져와 다시마, 양파, 사과, 배, 레몬, 대파, 고추, 표고버섯 등을 넣어 끓여 만들었다. 감칠맛과 향이 모든 음식에 풍미를 더해주는 내 요리 비법이다.



솥에선 보글보글 밥이 다 끓고 뜸을 들인다. 불을 약하게 줄여 놓은 후 식탁을 깨끗이 닦고 냉이밥과 함께 먹을 시원하고 톡 쏘는 동치미를 한 그릇 담아 식탁에 올려놓는다. 채식을 하면서 김치를 직접 담그는데 동치미는 가장 자주 만들고 제일 좋아하는 김치가 되었다.


자작자작 뜸이 다 들면 불을 끄고 손질한 냉이를 밥 위에 얹어 뚜껑을 덮는다. 빳빳했던 냉이가 살짝 내려앉으면 걷어내고 그릇에 소복이 밥을 푼 후 그 위에 냉이를 얹는다. 구수한 밥 냄새와 향긋한 냉이 향이 가득 퍼진다.


만들어 두었던 양념장을 밥 한 옆에 떨어트려 비벼 먹고 바삭한 돌김에도 싸 먹는다. 입안 가득 봄기운이 느껴진다. 오늘도 감사하고 행복한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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