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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광걸 May 04. 2020

부정부패의 원류를 찾아서

 부정축재는 권력을 사유화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부정부패는 권력을 가진 정치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홍글씨일까? 정치인들만이 향유하는 특권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부패고리가 형성되는 것을 보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일반 시민들은 부정부패와는 무관할까?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그 시대  유권자의 수준을 반영한다. 그래서 정치인을 논하기보다는 그런 정치인을 배출한 유권자의 의식과 문화의 단면을 보는 것이 부정부패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개도국 현장에서 겪은 부패적 상황을 얘기한다고 해서 내가 개도국만의 부정부패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부정부패는 사리사욕과 권력이 만나는 음습한 곳이면 병균처럼 어느 때, 어느 나라에서나 생기기 때문이다.    

  

성대한 결혼 50주년 기념식... 부럽기도한 풍습이다

 가나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한 몇 안되는 아프리카 국가이다. 서부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제일 빈곤한 지역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그곳 일반 국민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꽤 높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거직 공무원들은 지역구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정치인들과 고위직 공무원들은 주말이면 수도인 아크라(Accra)를 떠나 고향으로 간다. 전국의 도로가 좋지 않아서 어디든지 차로 갈수 있는 4륜구동의 랜드쿠르즈 같은 SUV를 선호한다. 자신의 출신지, 지역구에 가서 지역 유지들과 항상 소통하려 노력하는 모습은 존경스럽기 까지하다. 지역주민들은 자신의 사적인 애로사항을 부탁한다. 예를 들면 ‘집안에 환자가 생겨서 병원비가 감당이 되지 않는다’라든지, ‘다음 달이 딸 결혼식인데 모아놓은 돈이 없어 걱정이다.’라든지 하는 안타까운 사정을 들으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직접 도움을 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은 결국 누군가의 부담이 되고 부정부패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된다. 만약 어느 기업에 직접적인 부탁을 하게 되면, ‘정경유착’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라크 아르빌(Erbil) 지방정부의 총리였던 네쉬르반 바르자니(Nechirvan Barzani)는 50대 젊은 유능한 정치인이다. 대통령이었던 마수드 바르자니(Massoud Barzani)와 사촌지간으로 그는 2020년초 아르빌 지역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합랍자(Halabja)와 같은 외진지역을 종종 찾아 다니며 민생을 살피고 돌본다고 한다. 생계가 어려운 집안의 부탁을 받으면, 절대 돈을 주지않고 대신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그의 정치적 인기에 대해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운전기사가 설명해준다. 허드레 일자리라도 마련해주어 자립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후 아르빌은 기업활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투자도 왕성해서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쌍전벽해한 도시가 되었다. 일자리도 많이 생겨났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경제 환경이라면 그는 다른 모습의 정치인이 됐을런지 모를 일이다. 

 나만의 작은 청탁이 모여 거대한 부패 괴물이 탄생한다. 순진한 유권자는 정치 프레임에 걸린 그림들이 가짜인지 모른다. 이런 일이 정치판에서만 생길까? 자기를 도와준 높으신 나으리가 모략정치를 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정치인을 무조건 옳다고 추종하고 변호한다. 사고의 자유를 잃고 스스로 노예가 되어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인간사 진리를 외면하려 한다.      

그의 지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도미니카공화국은 중남미 카브리해에 있는 도서국가다. 위도상으로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과 같은 지역대이지만, 바다와 접해있어서 인지 파란 하늘은 맑고 열대성 기후는 사람의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뮬라토(mulatto)가 대부분인 이 나라는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통로에 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원래 아이티(Haiti)에 속했으나 흑인계 주류인 아이티로부터 독립한 이후 휠씬 잘 살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2010년에는 아이티에 비극적인 자연재난이 있었다. 진도 7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하여 수도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의 주요건물이 붕괴되고 2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시외버스에서 만난 아이티 여대생은 도미니카공화국이 치안이 훨씬 좋다며 산토도밍고(Santo Domingo)에 살고 싶다고 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서구형의 이목구비를 지닌 전형적인 뮬라토 여성이었다. 아이티에서는 치안이 나빠 저녁이면 돌아다니지 못한다. 자신이 태어난 조국을 떠나 보다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어하던 그 학생은 어찌 되었을런지. 지진피해를 피해 수많은 이민행렬에 끼어 산토도밍고로 이주했는지 모를 일이다.

거미줄 같은 전선줄

 도미니카공화국은 대략 우리나라 1995년대 수준의 소득수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수시로 정전이 되는 등 전기가 안정적이지 못했다. 호텔을 포함한 주요건물마다 거대한 발전기 소음과 시커먼 연기가 아름다운 해변가와 맑은 하늘과 대비되었다. 정부 전기는 안정적이지 못해 수시로 정전이 되기 때문에 카지노를 운영하는 호텔은 아예 전용 발전기를 설치해서 전기를 자급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도전(盜電)을 방지하기 위해 입법적 조치를 취하려 했으나 국회가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은 대개 발전기와 관련한 비지니스를 해서 돈을 벌었다. 일반가정에서 냉장고를 구매하여 배달오면 설치기사에게 의례 50$정도 팁을 더 준다고 한다. 그러면 전기기사는 이미 준비해온 장비로 전봇대에서 직접 전기선을 따서 계량기없이 전기를 쓰게 해준다고 한다. 모두가 전기를 도둑질하는 무언의 공범이지만, 죄책감이 없다. ‘좋은 게 좋은 거고,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꼴이다.      

 카자흐스탄은 오히려 더한 사례를 보여줬다. 다른 개도국처럼 카자흐스탄도 전기 생산량이 부족했고 공급도 안정적이지 못했다. 소련연방이 붕괴된 이래 낙후한 인프라에 재투자를 못하는 실정이었다. 정부는 고민 끝에 우리나라에 자동검침(AMR, Automatic Meter Reading) 시스템 도입을 요청했다. 전기사용량을 자동으로 측정하고 통계를 내주는 자동검침 시스템은 원격검침도 가능하였다. 검침원을 더 이상 고용할 필요가 없었고, 주민들이 사용한 만큼 자동으로 누적 통계까지 내어주니 도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에게는 너무 빠른 변화였을까? 지역주민들은 AMR설치를 반대하며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하려고 꼼수를 쓴다며 집단시위를 벌였다. 자칫 불똥이 엉뚱하게 우리나라에게 튈 판이었다. 사회주의 시스템에 익숙해온 현지 주민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고, 결과적으로 정부간 협력사업으로 추진하기에는 시기상조였다. 남을 도와준다는 것이 결코 쉽지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런 공짜가 지속가능할까? 이것이 부패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계량기는 가까이하기엔 의외로 멀다

 아프리카 기후와 생활에 어느정도 정착할 무렵, 가나 사무소를 이전해야 할 이유가 몇가지 생겼다. 무엇보다도 건물주인 임대인 회사가 우리 전기 계량기에서 전기를 부정 사용하고 있었다.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정전도 자주되어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창문을 열면 말라리아 모기에 물릴까 걱정도 되었다. 아래층 임대인회사의 전기요금액을 알아보고, 우리 전기제품의 전기효율 등을 살펴 보았다. 우리보다 2배이상 많은 사람이 근무함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은 적었다. 아크라 전기회사에 일자별 전기사용량을 달라고 요청했다. 마침 담당직원이 우리나라 한국전력(kepco)에서 연수를 받고온 코이카 연수생이어서 어렵지 않게 내역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전기 사용내역서에는 우리나라 국경일 등 휴무일에도 전기가 펑펑 써진게 보였다. 누군가 도전을 하고 있다는 심증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알아 내리요. 

전기 바꿔치기(?)

 어느 날 정전이 되었는데, 임대인은 그날도 자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공급하지 않았다. 차제에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배전함이 있는 어두컴컴한 지하실로 급히 내려갔다. 그전까지 누구도 배전함을 확인한 적이 없었다. 건물관리인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계량기에서 전선을 덧붙여 전기를 따서 쓰고 있었다. 우리가 이사가지 못하도록 생떼를 쓰고 있던 임대인은 결국 사진을 포함한 물증을 제시하며 법적 대응을 언급하자 순순히 물러섰다. 


 사실 법적 대응을 하더라도 현지인을 대상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신들은 잘 사니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라는 게 판사의 기본입장이라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원조기관 장들로부터도 조언을 얻던 터였다. 서울에서는 ‘괜스리 분란을 일으킨다’며 눈을 흘기고 ‘좋은게 좋은거’라는 태도를 취하라는 거다. 나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사태파악을 못하고 ‘혈세’에 대한 충성심에 매달렸다. ‘혈세’에 대한 강박관념은 현인(賢人)의 처세술로 승화하지 못했다. 선의악과(善意惡果), 선한 의도가 악한 결과로 나오지 않도록 숙고하고, 좌고우면하며 꾸준히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 개발원조 사업이 성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정책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책임과 사명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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