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그 공과(功過)를 다시 본다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2
― <삼국사기>, 그 공과(功過)를 다시 본다 ―
앞으로 연재할 삼국시대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 바탕으로 진행된다.
물론 <삼국유사>나 중국‧일본의 사서들과 교차 검증을 병행 하겠지만, 기본적인 역사 서술 뼈대는 <삼국사기>이다.
그런 의미로 먼저 <삼국사기>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원칙에 입각해 편찬되었는지를 살펴본 후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1. <삼국사기>란 무엇인가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의 명에 따라 김부식이 총괄하여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 정사(正史)이다. 삼국시대의 역사를 국가주도로 기록한 공식 역사서이며, 오늘날 우리가 삼국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하지만 '삼국사기'와 그 편찬자인 '김부식'을 둘러싼 비판은 오랫 동안 이어져 왔다. 대표적 비판은 다음과 같다.
2. 전통적 비판들
1) 사대주의자 김부식
김부식은 철저한 사대주의자였고, 칭제건원과 서경천도 운동을 추진하던 묘청세력을 탄압하고 몰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 단군신화의 누락
'삼국사기'에서 '단군신화'를 제외해 고조선의 역사적 맥을 단절시켰다.
3) 신라중심 서술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소홀히 다루고, 신라중심으로 편파 기록했다는 지적이 있다.
4) 중국사서 의존
국내사료 부족을 이유로 중국 사서에 지나치게 의존해 역사를 기술했다는 비판도 있다.
3. '삼국사기'에 대해 나의 변화된 시각
나 역시 과거에는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에 경도되어 위와 같은 비판적 시각을 그대로 수용 했다. 실제로 일간지에 그러한 시각으로 기고한 적도 있다.(아래 참고)
하지만 최근의 연구와 새로운 자료들을 접하면서 내 시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4. '삼국사기'는 김부식의 개인 저작물이 아니다
'삼국사기'는 김부식 개인의 독단적인 저술이 아니다. 그는 국가의 명을 받아 사라져 가는 삼국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국정 역사서 편찬을 총괄한 인물이었을 뿐이었다.
김부식은 <최산보, 이온문, 허홍재, 서황정> 등 총 11인의 집필진과 함께 사료를 정리했다.
또한 그는 다섯 차례 걸쳐 중국을 방문하면서 송나라 쇠퇴와 금나라 강성함을 직접 목격했고, 이를 통해 고려가 나아가야 할 현실적 외교노선을 이해하게 되었다.
5. 중국사서에 의존한 이유는?
김부식이 중국사서를 참고한 이유는 단순한 사대주의 때문이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 자체기록 이 이미 대부분 소실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삼국사기'를 보면 김부식 을 단순한 사대주의자로 보기엔 어려운 면이 많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삼국을 모두 '본기'(本紀)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본기'는 원래 황제에게만 부여되는 형식으로, 삼국을 중국과 대등한 국가로 본 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사기>에서 사마천의 입장이 “태사공왈(太史公曰)"로 드러나는 것처럼, 삼국사기에서도 김부식의 입장은 본문이 아니라 “사론(史論)”이라는 형식으로 드러난다.
이 '사론'에는 김부식의 현실 인식과 민족적 자각이 드러나며, 단순한 사대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자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비친다.
6. "기록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긴다"
'삼국사기' 곳곳에는 김부식이 “기록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역사를 정리한 고뇌가 묻어난다.
또한 신라 중심이라는 지적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삼국사기의 '신라사' 분량이 많아 보이는 것은 신라가 통일 후까지 지속되었기 때문이지, 고의적인 편향 때문은 아니다. '통일신라'를 제외하면 삼국 간 기록 분량 에서 큰 불균형은 나타나지 않는다.
7. '삼국사기'의 한계
그러나 '삼국사기' 역시 다음과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1) 지명‧인명 표기의 불일치
삼국 초기의 지명과 인명 표기 방식이 일관되지 않아 사료로서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
2) 신화‧설화의 이중적 처리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유교적 역사관인 “자불어 괴력난신 (子不語怪力亂神)”과 “술이부작(述而不作)”에 따라 집필했다고 밝혔다.
즉,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은 기록하지 않는다", "창작하지 않고 전한다"는 원칙이다.
이런 이유로 단군신화는 기록되지 않았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는 설화는 유교적 역사관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순이기도 했다.
고구려의 주몽 신화, 신라의 박혁거세 신화 등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부식이 단군신화를 일종의 비유로 간주 하고 '사론'에서 입장을 밝히는 방식으로라도 기록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다행히 <삼국유사>에 단군신화가 실려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3) 가야 및 기타 세력 기록 부족
가야, 진한, 변한 등 삼국 외 세력에 대한 기록이 빈약해, 훗날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왜곡 빌미가 되었다.
4)' 백제' 멸망 기록의 왜곡
백제의 멸망과 의자왕에 대한 묘사는 다소 조롱조와 폄훼적 시선이 느껴지며, 객관성에서 벗어난다는 비판도 있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삼국사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다.
만약 '삼국사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삼국시대는 고조선처럼 ‘암흑의 역사’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삼국사기'가 있었기에
그 한계를 보완한 '삼국유사'도 나올 수 있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단군신화를 최초로 역사서에 포함시켰고, 고대사의 민족적 뿌리를 재조명하며 종교, 문화, 언어 연구에도 핵심 자료가 되었다.
9. 하나의 역사서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의 국정화된 정사만으로는 다양한 역사 해석이 불가능하다.
'삼국유사'는 ‘다양한 시각’의 필요성을 말없이 증명한다.
역사서란 권력과 이념의 입맛에 따라 정리된 단일한 서술에 머물러선 안 된다.
박근혜 정권 시절 시도된 국정화 역사 교과서가 결국 실패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사례는, 왜곡된 고대사를 바로잡고 주변국의 역사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각과 지속적인 비판, 연구가 필요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10. <삼국사기> 출간표
마지막으로 김부식이 '삼국사기' 완성해 인종에게 바친 출간표 (進三國史記表)는 그의 겸허한 태도와 역사 편찬에 대한 고뇌를 잘 보여준다.
(進三國史記表)
[신 아무개는 아룁니다, 옛날의 여러 나라 역시 각자 사관을 두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맹자는 가로되 "진(晉)의 『승(乘)』, 초의 『도올(檮杌)』, 노의 『춘추가 다 한 가지다."라고 하였습니다. 생각건대 이 바다 동쪽의 세 나라도 역년(歷年)이 길고 오래되어 마땅히 그 일을 드러냄이 있어야 할 방책이 있어야 하는데, 늙은 신으로 하여금 이것을 모아서 엮게 하셨으니 스스로 돌아보건대 흠이 많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성상 폐하(인종)께옵서는 당우(唐虞)의 문사(文思)를 갖추시고 하의 우의 근면하고 검소을 본받으셔서 바쁘신 중 틈이 날 때마다 이전 시대의 역사책을 두루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학사대부(學士大夫)가 다섯 경전과 제자백가의 책이라든지, 진과 한의 역사시대의 『사기』에 대하여는 혹 널리 통하여 자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 나라의 사실에 이르러선 도리어 막막하여 그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하니 매우 유감된 일이다, 더구나 신라, 고구려, 백제의 세 나라가 세 발 솥처럼 나란히 서서 능히 예(禮)로써 중국과 교통한 때문에 범엽의 『후한서(後漢書)』라든지 송기의 『당서(唐書)』에다 그 열전이 있지만, 그 역사서는 자기 나라의 안에 관한 것은 상세히 하고, 외국에 관한 것은 간략히 해서 자세히 실리지 않았습니다. 또 그 옛 기록으로 말하면 글이 거칠고 졸렬하며 역사적 족적을 놓친 것이 많으니, 이런 까닭에 임금의 선· 악이라든지 신하의 충성과 간사함, 나라의 안위, 인민의 잘다스려짐(治)과 어지러움(亂)에 관한 것을 다 드러내어 써 후세에 권하고 경계함을 보이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삼장(三長)의 재능(있는 인사)을 얻어 일가의 역사를 완성하여 이를 만세에 끼치어 해와 별과 같이 환하게 하고 싶다."라고 하셨습니다.
신과 같은 자는 본래 삼장의 재능도 없고 또 깊은 지식도 없으며 노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날로 정신이 혼몽하여, 비록 독서를 부지런히 하여도 책만 덮으면 곧 잊어버리며, 붓을 잡아도 힘이 없고 종이를 대하면 죽죽 내려가지 아니합니다. 신의 학술이 이와 같이 천박하고 이전 시대의 사적(事蹟)이 저와 같이 아득합니다. 이러므로 한껏 정신과 힘을 다하여 겨우 권책을 이루었으나 결국 보잘것이 없어 스스로 부끄러울 뿐입니다.
바라오니 성상 폐하께옵서 이 거칠고 남루한 편찬을 양해하여 주시고 망령된 저작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이것이 비록 이름난 산에 비밀스러이 소장될 거리는 되지 못하나 간장항아리 덮개와 같은 쓸모 없는 것으로는 돌려보내지 말기를 바랍니다. 신의 구구하고 망령된 뜻을 굽어 주십시오]
이처럼 두 사서(史書)는 우리 고대사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그 가치와 한계를 냉철히 보되, 왜곡과 날조에 맞서기 위해 더 깊은 연구와 성찰이 필요하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