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초기 주변 국가들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1
― 고구려 초기 주변 국가들 ―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건국 연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논란이 있다.
이 삼국의 건국 시기를 '삼국사기' 에 기록된 기원전 시점이 아닌, 서기 3~4세기경으로 보는 시각 존재한다. 이는 삼국이 건국된 직후부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시대처럼 각 지역을 완전히 통합하여 지배한 것이 아니라, 수세기 동안 다양한 세력과 병존 했다는 점에 기초한 주장이다.
예를 들어 <고구려>는 건국 이후 에도 <고조선, 부여, 옥저, 동예, 한사군, 대방군> 등 여러 세력과 오랜 기간 공존했다. 실제로 부여는 고구려보다 국력이 더 강했던 시기도 있었다.
<백제>는 '마한'과 수많은 '소국' (小國)들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들 마한과 소국은 기원전 2세기 부터 4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중남 서부지역에 존재하며, 백제건국 이후에도 오랫동안 함께 병존 했다.
<신라>는 진한에서 출발했으며, 그 주변에는 변한에서 발전한 가야연맹체들이 존재했다. 신라는 이 가야 지역을 6세기가 되어서야 완전히 병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삼국의 실질적인 고대국가 체제정립 시기가 서기 3~4세기였다는 주장의 설득력을 높인다.
이 시각이 옳다면 ‘삼국시대’라는 용어보다는 ‘열국시대’ 또는 ‘원삼국시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 있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듯이 이병도, 김원용, 이규보같은 역사학자들은 삼국시대를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로 구분하기도 했다.
'원삼국시대'(元三國時代)는 삼국시대가 본격적으로 성립되기 이전 시기로, 기원전 1세기부터 서기 4세기까지를 포함한다. 이 시기는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다양한 고대국가들이 형성되고 발전한 시기로, 삼국의 형성과 통일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원삼국시대에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국가들인 부여, 옥저, 동예, 한사군, 대방군 등이 함께 존재하며, 복잡한 정치적·군사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고조선>은 기원전 108년, 한(漢)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고조선 유민들은 주로 부여와 옥저로 유입되었고, 후에 고구려 건국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나라는 고조선의 북부 지역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였다.
<한사군>은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변한군 등으로 구성 되었으며, 고구려와 지속적인 갈등을 겪었다.
이들 군현의 위치는 아직도 논란이 많으며, 특히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해석은 여러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낙랑군>은 일반적으로 현재의 평양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사군 중 가장 강력하고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 일부학자들은 낙랑군의 실체를 중국 만주 지역으로 보고, 평양 지역에는 ‘최씨낙랑국' 이라는 별도의 세력이 있었다고 주장 한다.
이는 삼국사기 등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최리’라는 왕의 존재에 기초한 것으로, 최리는 설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에 등장하는 낙랑공주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최씨낙랑국'은 이 설화 속 시기에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에 1세기 경 멸망한다. 그러나 또 다른
'낙랑군'은 이후 313년 고구려 미천왕에 의해 정복된다.
[미천왕 14년(313) 겨울 10월, 낙랑군을 공격하여 남녀 2,000여 명을 사로잡았다. 15년(314) 가을 9월, 대방군을 공격하였다.]
ㅡ 삼국사기 미천왕 편 중 ㅡ
현재는 ‘낙랑군’과 ‘최씨낙랑국’을 별개의 존재로 구분하는 것이 다수설이다.
당시 고구려 주변국가들 위치에 대해 알아보자.
ㅡ 임둔군: 현재의 동북아시아 만주 지역.
ㅡ 진번군: 만주 남부 지역.
ㅡ 변한군: 한반도 중부와 남부.
ㅡ 대방군: 3세기 초, 요동 지역 권력자 공손강이 낙랑군 남부를 분할하여 설치한 군현. 낙랑군 25현 중 하나였던 대방현이 그 기원.
한사군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러 이견이 있다.
특히 '환단고기' 추종자들은 현재 통설로 알려진 한사군 위치도 강하게 부정한다. 중국 내륙 깊숙히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래 지도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과 역사교과서에서도 인정하는 통설에 해당한다.
한사군은 고대 한반도에 대한 한나라의 군사적·행정적 통제 장치로 기능했지만, 고구려의 성장과 저항에 직면하며 점차 힘을 잃고, 313년 미천왕에 의해 소멸되었다.
고구려 주변국가들 사회제도를 살펴보자. 국사시험 단골소재이니 잘 알아두자.
ㅡ 옥저
민며느리제, 골장제(시체를 땅에 묻지 않고 말려 보관)
고구려에 공납을 바치기도 했다.
1세기경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ㅡ 동예
단궁(짧은 활), 과하마(좋은 말), 반어피(표범가죽)
정치구조는 '읍군·삼로' 제정분리 사회였다.
5세기경 고구려에 병합된다.
ㅡ 부여
형사취수제: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는 제도 (과부 보호 성격)
사출도(四出道): 왕도를 중심으로 마가, 우가, 구가, 저가 등 네 지역으로 나눠 지배
1책 12법: 도둑질 시 12배 배상, 살인 시 사형 및 가족을 노비로 삼음
순장, 옥갑(귀족 수의) 문화 존재
부여는 4세기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공격받고 5세기 중반 멸망. 고구려에 흡수됨.
ㅡ 고구려
형사취수제, 서옥제, 약탈경제, 부경
ㅡ 마한(목지국 중심)
신지·읍차, 천군·소도
ㅡ 변한
철 수출, 활발한 벼농사
오늘 글은 분량도 많고 딱딱한 대목이 있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내용은 국사시험은 물론, 우리 고대사를 보는 관점을 넓히는 데 꼭 필요한 기반 지식이니 잘 정리해 두기 바란다.
다음 편에서는 중국이 왜 ‘동북공정’을 벌이는지, 그 배경과 목적부터 짚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고대 역사 이야기를 2~3편 더 이어가며 정리해보려 한다.
이런 기반 지식을 알고 고대사를 본다면, 우리 역사를 보는 눈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 초롱박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