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왕자'와 '낙랑공주' 그리고 ‘한사군’ 설치와 위치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0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그리고 ‘한사군’ 설치와 위치 –
초등학교 시절, 눈물 콧물 흘리며 감명 깊게 본 만화영화가 하나 있었다. 지금도 영화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1971년 작 <왕자호동과 낙랑공주>라는 만화영화였다. 우리는 보통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로 기억하지만, 왜 제목을 그렇게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내 기억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보다도 더 먼저 접한 동화 같은 비극적인 로맨스 이야기였지만, 이 이야기는 실제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내용 면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가 없었을 뿐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제3대 왕 '대무신왕' 15년(서기 32년)에 일어난 사건이라며 아래와 같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어느 날 '옥저'로 유람을 나선 고구려 '호동왕자'는 낙랑의 왕 '최리'를 만났다. 최리는 호동왕자 비범한 풍모를 알아보고 궁궐로 초대했고, 그곳에서 호동은 '낙랑공주'를 처음 보게 된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했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이후 호동은 낙랑공주와 함께 꿈같은 나날을 보냈지만, 자신의 나라 '고구려'로 돌아가야 했다. 물론 낙랑공주를 데려가고 싶었지만, 아버지 대무신왕 허락 없이 혼인하였기 때문에 데려갈 수는 없었다.
고구려로 돌아온 호동은 대무신왕 에게 상황 알렸으나, 대무신왕은 허락하지 않았고, 호동왕자에게 낙랑을 멸망 시켜야만 데려올 수 있다고 말했다. 호동은 고민 끝에 낙랑공주에게 이런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고, 호동왕자를 너무 사랑한 낙랑공주는 나라가 위급 하게 침략당할시 스스로 울어서 알려주는 보물인 '자명고'와 '뿔나팔'을 몰래 부숴버렸다.
그 이야기를 듣은 호동은 총공격 명령을 내렸고, 낙랑은 속수무책 으로 당했다. 뒤늦게 자명고와 뿔나팔이 부서진 사실을 알게 된 낙랑왕은 딸을 참수하고 고구려에 항복한다. 그러나 이후 고구려에 돌아온 호동왕자는 태자 다툼에서 패해 자살했다.]
호동왕자 자살하게된 내용도 좀 추잡하다. 호동왕자 아버지 대무신왕의 '원비'(元妃)가 모함을 하여 부왕의 의심을 사게 되었는데, 그 모함 내용이 법적 으로 어머니인 원비를 강간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호동왕자는 변명을 하는 것은 원비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 된다고 생각하여 자결하였다고 한다. 또한 낙랑 공주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살 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던 ‘삼국사기’는 국가에서 간행한 '정통사서'이다. 철저한 유교주의 현실주의자 '김부식'은 사실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기록은 삭제했기에, 예를 들어 '단군신화' 조차 '삼국사기'에는 없다. 그럼에도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를 이토록 상세하게 실은 것은 이 사건이 실제에 기반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 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구려가 낙랑을 멸망시킨 사건은 고대사 에서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했다.
내가 본 만화영화 속 이야기 에서는 이 비극적인 사랑이 더욱 감정적으로 그려졌지만, 냉정히 역사적 사실만 놓고 보자면, ‘비극적인 로맨스’라기보다는 호동은 아주 나쁜남자였다. 사랑을 미끼로 연인을 희생시켜 자신 목적을 달성한 인물이었다.
특히 ‘삼국사기’에서 호동이 공주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그가 낙랑공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도저히 보낼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호동은 순수한 사랑만을 추구한 낙랑공주를 철저히 이용한 셈이다. 오늘 이야기는 남녀사랑 주제가 아니니, 이쯤에서 감정을 접겠다.
그럼 진짜 중요한 이야기로 들어 가 보자!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낙랑국은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설치한 '한사군' 중 하나였던 '낙랑군'과 같은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이설이 존재한다.
'한사군'은 기원전 108년, 한나라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유민들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4개 군'을 의미한다.
낙랑군(樂浪郡),임둔군(臨屯郡), 진번군(真番郡),현도군(玄菟郡)이 그것이다.
하지만 '진번군'이 폐지된 이후 '대방군'(帶方郡)이 새로 설치 되었고,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총 '5개 군'이 존재했다고 본다. 이들 군의 존속 기간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이었고, 대체로 '한사군'이라는 명칭으로 통칭된다.
이 한사군은 부여, 고구려, 백제 등과 직접적으로 대치하거나 교류하면서 상당한 영향을 주고 받았다.
특히 한반도 남부 지역과는 철을 포함한 경제적 교류가 활발했다. 하지만 중국 한나라가 쇠퇴하고 고구려가 성장하면서, 한사군은 점차 고구려에 흡수되거나 멸망 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삼국사기’ 나오는 '낙랑국'이 과연 이 한사군 '낙랑군'과 같은 나라인가 하는 점 이다.
'삼국사기'에서는 낙랑국 왕 '최리'가 등장하고, 이 낙랑국은 서기 32년에 고구려에 의해 멸망한다. 하지만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 낙랑군은 군사 행정단위로, 왕이 아닌 태수가 통치했다. 그리고 이 낙랑군은 서기 313년, 즉 300년 후에 고구려 '미천왕'에 의해 멸망한다.
즉, 두 낙랑은 시대적으로 300년 차이가 있고, 정치적 구조도 왕과 태수로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낙랑을 구별하지 못했다. 고구려가 마지막 한사군 낙랑군을 호동왕자가 낙랑공주를 이용해 몰아내고 ‘지금의 고구려’를 만들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 많다. 나 또한 이 글을 정리하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역사학자들도 이 둘을 혼동 하거나 다양한 가설 등을 제시 해왔다.
현재는 ‘낙랑공주’가 살았던 '최씨 낙랑국'은 한반도 북부에 있었던 작은 독립 국가로 보고 있으며, 한사군의 '낙랑군'과는 분명히 다른 존재로 본다.
하지만, 두 낙랑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논란이 존재한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낙랑국의 왕 ‘최리’ 때문에, 학계 에서는 편의상 이를 ‘최씨 낙랑국’ 이라고 부른다.
만약 ‘삼국사기’에 나오는 '최씨 낙랑국'이 실제로 한사군 '낙랑군' 이었다면, 우리 고대사 전환점은 서기 32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낙랑군은 그 후에도 약 300년 동안 존속하면서 한반도 남부에 거대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했고, 우리 고대국가 성장을 일정부분 제약했다.
실제로 낙랑군 영향력이 약화되고 백제가 성장한 시기는 3세기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한사군 위치와 존속기간에 대해 간략히나마 알아보자.
- 낙랑군(樂浪郡): 현재의 평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 한사군 중 가장 중심적 역할을 했고 약 400년간 존속.
- 임둔군(臨屯郡): 현재의 함경도 지역.
- 진번군(真番郡): 한반도 중부에 있었지만 25년 만에 폐지되고, 대방군으로 대체됨.
- 현도군(玄菟郡): 현재 중국 동북부. 고구려와의 충돌 후 요동 지역으로 이동.
- 대방군(帶方郡): 낙랑군의 남부 지역에서 분할되어 생긴 군으로, 3세기 초 설치. 문화적 교류를 통해 초기 삼국 발전에 일정 부분 영향.
그동안 우리는 한사군 존재를 <중국의 한반도북부 식민통치>로 인식해왔다. 중국과 일본 학계는 한사군의 범위를 한반도 남부까지 확대해, 한국사 중국 종속성을 강조하려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 등은 한사군이 한반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장하며 식민사관을 확산시켰다.
현재 중국 역사지도에서는 한사군 영역이 북한을 넘어 경기도와 충청도까지 확장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동북공정 연장선 이며, 우리나라 역사인식을 교란 시키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우리 역사학계는 이에 맞서, 학문적 엄밀성과 냉철한 분석으로 대응해야 한다.
현대 주류 역사학계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통일적으로 제시 한다:
[한사군은 고조선이 있던 한반도 북부에 설치되었고, 현도군은 고구려 저항으로 요동으로 옮겨 졌으며, 나머지 군현도 4세기 초 고구려 미천왕에 의해 흡수 되어 멸망했다.]
일부 민족주의 성향 유사역사학 (재야사학)에서는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닌 중국 내륙에 있었다거나, 식민사관 결과로 한사군 위치가 왜곡됐다고 주장 하지만, 이는 학문적 근거가 부족 하며, 역사왜곡의 위험도 크다.
한사군 역사는 단순히 식민지배 상징이 아니라, 한반도와 중국 간 초기교류와 갈등, 그리고 이후 고대국가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한무제 고조선침략은 동아시아 정치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건이었고, 이후 한반도와 중국 역사적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어서 고구려초기 상황이 계속됩니다.
– 초롱박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