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록과 고대사 논란에 대하여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4
― 역사기록과 고대사 논란에 대하여 ―
내가 쓰고 있는 고대사 글에 대해 계속해서 반박하거나 딴지를 거는 분들이 있다. 대개 ‘환단고기’를 신봉하며, 우리 민족의 고대사가 찬란하고 위대했음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분들이다. 애국심과 민족에 대한 충정은 이해하지만, 역사는 단편적인 기록만으로 우리 주장만 내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환단고기’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로부터 '위서'(僞書)로 판단되었고, 내용도 황당무계 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다수 국민도 이를 믿지 않는다. 이 점은 환단고기를 믿는 분들에게 불쾌할 수 있지만, 현실은 냉정히 보아야 한다.
또 하나 생각해볼 점은,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상고사가 과연 지금에 와서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그 시절엔 민족 개념도 없었고, 단지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모두가 같은 인류였을 뿐였는데, 지금 와서 '우리 민족의 선조' 운운하며 뿌리를 찾는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일본서기’는 일본 정통 역사서다. 그런데 그 안에 ‘임나일본부’가 명확히 기록돼 있다. 당시 일본 ‘신공황후’가 임신한 상태로 바다 건너와 한반도 남부를 점령하고 백제·신라 통치했다는 이야기다. 일본 제국주의는 이를 근거로 조선 식민지화를 정당화했다.
이런 황당한 ‘임나일본부설’은 광개토대왕비 문구 해석에서도 논란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 학자들조차 이 설을 대부분 부정 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정통사서 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어야 한다 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삼국지 위지동이전' 도 특정 기록 하나만으로 모든 고대사를 단정짓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진수' (233~297)가 편찬한 <삼국지> 부록 같은 항목이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역사말미 에, 동쪽 오랑캐에 대한 정보로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왜> 등 아주 간략하게 기록했다.
여기서 혼선을 주는 부분은 바로 삼국의 건국시기 및 '삼한' 위치에 대한 기록이다.
예를 들어, 이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와 '백제'는 3~4세기, '신라'는 5세기경에 건국되었다고 보인다. 이는 김부식 <삼국사기> 와 300~400년 차이가 난다.
또한, 이 기록은 '삼한'의 면적을 '사방 4천리'로 서술하고 있다.
[“삼한은 대방군 남쪽에 있고, 동쪽과 서쪽은 바다, 남쪽은 왜와 접한다. 면적은 사방 4천리다.”]
ㅡ 삼국지위지동이전 중 ㅡ
이 내용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삼한' 영역이 중국 동부와 일본 일부까지 포함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점이 바로 ‘환단고기’를 믿는 분들이 삼한의 광대한 영토설을 주장하는 근거다.
그러나, 고구려와 부여도 각각 사방 2천리로 기록되어 있는
상황에서, 삼한이 4천리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역사 기록은 '교차검증'되어야 진실에 가까워 진다.
우리가 어떤 역사 기록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객관적 증거와 사료
: 유물, 고고학, 비문, 문서 등 다양한 물증이 있어야 한다.
2. 학문적 연구와 검증
: 역사학자들이 다년간의 연구와 토론, 검토를 통해 인정한 결과 여야 한다.
3. 사회적 합의
: 교육, 문화, 대중적 이해를 통해 전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역사적 인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어떤 한 문장, 한 기록을 근거로 전체 역사를 새롭게 쓰겠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삼한이 ‘사방 4천리’ 였다는 기록은 당시 다른 역사서 들과 교차검증이 되지 않으며,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일본서기' 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김부식도 '환단고기' 추종자들 말처럼 일제식민사관에 물들어서 그런 기록을 누락 했는가?
조선시대의 학자들 모두가 그런 자랑스러운 삼한 기록을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숨겼던 것인가?
그럴 리 없다.
당시 역사학자들도 철저한 문헌 비교와 검토를 통해 정리했을 것이다.
‘삼국지위지동이전’은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사료임은 분명하다. 중국이 동이족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주변 국가들 초기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록 또한 '진수'가 외국 소식을 귀동냥으로 듣고 정리했을 가능성이 크며, 세밀하고 정확한 지도나 측량 도구 없이 작성된 내용임을 고려해야 한다.
역사는 주장의 문제가 아니라, 증거와 검증의 문제다.
과도한 민족주의적 환상이나 음모론은 오히려 진짜 우리의 고대사를 왜곡할 수 있다.
‘환단고기’를 믿든, '일본서기'를 신뢰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교차검증된 객관적 자료와 역사학적 합의다.
아래는 시험에도 자주 나오는 부분이니 삼한에 대해서 간략히 요약정리 해 본다.
1. 삼한지역 구분
1) 마한: 경기·충청·전라도(54국) → 백제
2) 진한: 대구·경주(12국) → 신라
3) 변한: 김해·마산(12국) → 가야
2. 정치 체제
군장국가 형태, 제정 분리, 천군과 소도 존재
마한의 목지국이 삼한 전체를 주도
3. 경제
철제 농기구, 벼농사 발달, 철 수출(변한)
4. 풍속과 문화
움집, 두레, 소도, 문신, 제천행사(수릿날, 계절제)
ㅡ 초롱박철홍 ㅡ
아래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은 '삼국지위지동이전'이나 '환단고기'에 따른 당시 상상 지도
세 번째는 우리 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정설로 인정받고 있는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