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5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서로 '같은민족'으로 여겼을까? ㅡ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5

―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서로 '같은민족'으로 여겼을까? ㅡ


삼국시대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학창시절부터 궁금했던 몇 가지를 먼저 정리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우선 내가 궁금해 했던 몇 가지를 나열해 본다. 아마 여러분들도 비슷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1.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인들은 혈연적으로는 단군후손인 단일민족으로서 동질성이나 일체감이 있었을까?


2. 삼국시대 언어는 삼국이 서로 같았고 서로 소통이 가능했을까?


3. 삼국시대 서로 간 교류가 있었고 일반인들 또한 삼국 간 통행이 자유스러웠을까?


4. 삼국들이 각자통일은 원했고, 삼국 중 가장 강했던 고구려는 왜 삼국을 통일하지 못 했을까?


5. 삼국의 복장과 먹는 주식은 어떻했고 고조선부터 내려온 상투틀기는 삼국이 다 같이 했을까?


이 외에도 여러 궁금한 점은 있겠지만 이 다섯가지는 내가 학창시절부터 가졌던 궁금증이다. 그러나 그 어떤 역사 선생님도 시원하게 설명해 준 적은 없었다.


사실, 이 다섯가지 확실한 정답은 없다. 단지 우리는 남아있는 기록 이나 유물 그리고 당시 여건이나 상황을 추측하여 추정한 답을 내 놓을 수밖에 없다.


그중 오늘은 첫 번째 주제, “삼국의 사람들은 서로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이 있었을까?”, 그리고 “혈통적으로는 단일민족 이었을까?”라는 문제를 다뤄 보고자 한다.


먼저 이 질문에 접근하기 위해서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전적으로 '민족'은 일정한 지역 에서 오랜 세월 공동생활을 하며 언어와 문화적 공통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을 의미한다. 이는 '인종'이나 '국민'과 반드시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며, '혈통' 만으로 '민족'을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며 문화와 삶을 공유한 집단이 곧 '민족'이라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민족’ 개념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세기 프랑스혁명 이후 등장한 개념 이며, 그 이전 고대 사회에서는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뚜렷 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민족을 ‘배달민족’, 혹은 ‘5천년을 이어온 단일민족’ 이라 자랑스러워한다. 특히 '순혈주의 단일민족국가'라는 말도 자주 접한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오해가 많다.


먼저 ‘배달민족’이라는 말은 신화적 기원을 가진 상징적 표현 이다. 배달국은 ‘환웅’이 세운 신화 속 국가로, 고조선 기원으로 여겨지며, ‘밝은 산(박달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신화는 역사적 사실 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서사에 가깝다.


'단군신화'를 곱씹어보면, 오히려 ‘단일민족’보다는 ‘혼합민족’ 성격이 짙다.


'환웅'이라는 외래세력과 '곰' 부족 (토착민족)의 결합통해 '단군'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는 이민족과 토착세력의 융합을 상징한다.

즉, 신화 자체가 ‘혼혈’과 ‘혼합’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유전학적으로 우리민족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섞인 형태 라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이다.


'북방계'는 주로 고구려, 부여 등 만주-시베리아 계통이고, '남방계'는 가야 김수로왕 설화 등에서 나타나듯 남쪽해양문화권 과 연결이 보인다.


오늘날 한국인 유전자는 이러한 요소들이 융합된 결과다.


본론으로 돌아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그리고 가야) 사람들은 서로를 같은 민족> 이라고 인식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치적으로는 서로를 '다른 민족'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삼국은 각각 고유한 왕조계보와 건국신화를 지니고 있었으며, 독자적인 정치·문화·종교 체계를 발전시켰다.


특히 '고구려'는 부여 동명왕신화 그대로 계승했으며, 시조를 부여 계열로 본다. 즉 북방계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며, 문화적· 언어적 으로도 뚜렷한 독자성을 지녔다.


'백제' 역시 부여계 이주민이 건국 한 나라로, 한때 국호를 ‘후부여’라 할 정도였던 점을 보면, 지도층이 확실한 북방계 계열임을 알 수 있다.


'신라'는 부여와 직접적인 관련은 적지만, 박혁거세 난생신화가 부여 동명왕신화와 유사한 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신라 시조가 ‘흉노족’ 이라는 설도 존재하지만, 신라의 원주민은 남방계 계통이 주를 이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 역시 김수로왕 난생신화를 통해 부여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수로왕이 인도에서 온 공주와 혼인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점을 고려하면, 지도층 조차 남방계 계통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처럼 각국은 자신들만 정통성과 고유성을 매우 중시했으며, "우리는 다르다"라는 인식이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삼국 모두 ‘부여’ 또는 ‘고조선’ 계열의 기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삼국이 일정 부분 ‘공통의 문화적 뿌리’를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외부인인 '중국'을 상대할 때 삼국이 암묵적으로 '우리끼리' 라는 유대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나당전쟁' 당시 고구려·백제 유민 들이 신라에 협력한 사례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는 고대사 에서 '혈통'이나 '민족'을 따지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당시 사람들은 ‘민족’ 개념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정체성(즉, ‘어느 나라 백성인가’)이 더 중요 했을 것이다.


한강 유역이 백제에서 고구려, 신라로 바뀌어도, 사람들은 정권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그 땅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점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유전자 검사에서 한국인은 매우 유사한 DNA 패턴을 가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특성을 ‘순혈주의’로 해석하고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20세기 '히틀러'가 민족주의를 내세워 저지른 대량학살의 비극이 그 경고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 이 함께 살아가는 다민족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중국,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다민족 국가다. 그 속에서 우리도 열린 자세로 역사와 정체성을 바라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삼국은 정치적, 문화적으로 각기 독립된 정체성을 가진 국가였고, 서로를 다른 민족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고조선· 부여 등 공통된 문화적 뿌리를 공유한다는 인식 또한 어느 정도 존재했을 수 있다.>


결국 삼국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민족’이라는 개념보다도, 당시 사람들의 삶과 정체성, 그리고 공동체 의식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작동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음 편 <삼국시대 언어는 삼국이 서로 같았고 서로 소통이 가능했을까>가 계속 이어집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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