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17

삼국은 통일을 원했을까?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17

― 삼국시대에 대한 궁금증 3 ―

(삼국은 통일을 원했을까?)


‘삼국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학창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삼국통일'에 대한 상식은, 사실 다양한 해석과 설이 존재하는 매우 복잡한 문제 이다.


하나 하나 알아가 보자.


1. 삼국시대는 정말 '삼국'만의 시대였을까?


통상적으로 ‘삼국시대’라 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를 말한다. 이 세 국가는 각기 독립된 고대국가 로서 약 600년 동안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전쟁을 벌여왔다.


물론 6세기 이전까지도 <마한, 변한, 진한>의 계승 국가들인 여러 소국들(예를 들어 가야국들) 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들은 율령제를 갖춘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지 못한 ‘부족연맹체’ 수준에 머물렀고, 결국 백제나 신라에 흡수되어 역사의 중심 무대에서 멀어졌다. 그래서 이 시기를 '삼국시대'라고 칭하는 것이 정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일부 현대 역사학자들은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만이 남아 있었던 시기는 사실상 562년 (대가야 멸망)부터 660년(백제 멸망)까지 불과 98년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기를 '삼국시대'보다는 ‘열국시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2. 신라의 삼국통일은 사실인가?


신라는 한반도 남동쪽 변방에서 출발한 약소국이었다. 하지만 6세기 '진흥왕' 대에 이르러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외교·군사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당나라와 외교로 직접 연결되면서 국제적인 입지를 다졌고, 내부적 으로는 화랑제도를 통해 군사력도 질적으로 강화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갈등을 교묘히 이용하고, 당나라와 동맹(나·당 연합)을 맺어 결국 백제(660년) 와 고구려(668년)를 차례로 무너뜨리며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하게 된다.


하지만 이 ‘통일’은 당의 군사력에 크게 의존한 결과였기에, ‘완전한 자주통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외세의 힘을 빌린 반쪽짜리 통일’ 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3. 삼국은 정말 통일을 원했을까?


오늘날 '통일'이라는 개념은 대개 민족적 동질성과 평화적 융합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삼국시대의 '통일'은 이러한 현대적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는 언어와 문화 면에서는 유사했지만, 지금과 같은 서로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은 매우 희박했다.


세 나라는 각기 독립된 정치체제 권력유지와 영토확장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이들은 민족적 대의에 따라 통일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주로 정치적·군사적 패권 을 위한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신라가 통일 전쟁에 나선 것도 자발적인 의지라기 보다는 외부위기에 대한 대응 이었다.


만약 신라가 백제를 '같은 민족' 으로 인식했다면, 외세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를 공격하는 선택을 했을까?


백제 의자왕 거센 공격으로 존립 위기에 처한 신라의 김춘추는 먼저 고구려 연개소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어쩔 수 없이 당나라에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결국 당나라와 손잡고 '나당동맹'을 맺었고, 이를 통해 백제를 먼저 멸망시켰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까지 공격할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신라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백제멸망을 함께 한 당을 외면할 수 없어 고구려 와 전면전에 신라도 당과함께 나서게 되었다.


이처럼 당시 삼국 행동은 통일이라는 명분보다는 생존과 패권 확보라는 현실적 목적에 기반한 것이었다.


또한 신라가 내세운 '삼한일통' 이라는 개념 역시 실제 당시의 목표라기보다는 통일 이후 자신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후대에 강조된 명분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삼국시대 '통일'은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는 민족적 통합 개념과는 다르며, 삼국 정치적 생존과 군사적 우위를 위한 전략적 선택에 가까웠다.


4. 삼국통일 이후 역사적 흐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한반도의 ‘완전한 통일’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698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며, 북쪽지역에서 또 다른 국가가 등장했다. 이로 인해 현재 한국사에서는 통일신라 이후 시기를 ‘남북국시대’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물론 이 ‘남북국’ 개념도 오랜 시간에 걸쳐 자리잡은 것이다. 조선 후기 '유득공'이 '발해고'를 통해 ‘남북국시대론’을 제시 했지만 당시에는 주류의견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역사서는 여전히 신라중심 '삼국통일' 관점을 유지했고, 발해는 부록처럼 다뤄졌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남북국시대’ 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발해 역시 고구려를 계승한 정통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다만 아직 국제적으로는 발해가 완전히 ‘한국사’에 속한다고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은 발해를 어느 정도 한국사 일부로 인식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발해를 자국 역사에 포함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발해는 당시 광대한 영토를 지닌 국가로, 현재 중국과 러시아 영토 일부도 관할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발해를 아예 자기들 지방정권으로 보고 있고, 러시아 또한 역시 발해를 자국 역사 영역에 포함시키려 한다.


이처럼 ‘삼국통일’이라는 용어와 개념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구성되고 해석된 역사 서술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통설도 다양한 관점 속에서 다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는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며, 일반인보다 약간 더 깊은 수준 에서 한국사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 있는 사람이다.


이 글도 정설을 기반으로 하되, 일부 논쟁적 시각도 함께 소개 하고자 했다.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고 싶으면, 학술자료나 신뢰할 수 있는 역사 서적, 혹은 인터넷에서 다양한 관점을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그리고 혹시 다른 의견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셔도 된다.


다양한 시각을 나누는 것도 역사 공부의 즐거움이다.


이어서 <삼국 중 가장 강했던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 한 이유는 무엇일까?> 편이 계속 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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