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35

고구려 전성기 5ㅡ광개토대왕 3 (업적정리)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35

ㅡ 고구려 전성기 5ㅡ

(광개토대왕 3 - 업적정리)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가 광개토대왕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이름 ‘광개토(廣開土)’ 가 상징하듯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르게 표현하면 이는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그 영토를 점령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전쟁과 정복을 많이 한 지도자들이 영웅으로 남는 것은 흔한 일이다.


‘알렉산더 대왕’, ‘시이저’, ‘칭기즈칸’, ‘나폴레옹’ 등이 그 예다. 심지어 ‘히틀러’나 일본의 ‘도조 히데키’처럼 파괴적인 전쟁을 일으킨 인물들도 여전히 역사 속에서 강렬한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평화주의자이다.

그들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전쟁광(戰爭狂)으로 본다.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수천만 명의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진정한 영웅으로 존경하고 싶은 인물은 거대한 전쟁 위기를 막아내고 평화를 지켜낸 인물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 전체를 돌아보면 그러한 인물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다만 우리 역사 속에는 있다.

바로 고려의 ‘서희’이다.

서희는 탁월한 외교 전략으로 거란의 1차 침략을 말 한마디로 막아냈다. 그 결과 고려와 거란 모두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한 셈이다.


물론 피할 수 없는 전쟁도 있다.

외세 침략을 받아 조국과 백성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그런 전쟁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광개토대왕 정복활동 역시 단순한 침략이라기보다는 국가 안정을 위한 선제적 방어 조치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도덕적 평가와 역사적 평가를 구분해야 한다.

전쟁은 분명 비극이지만 당시의 시대적 환경에서는 그것이 생존의 방식이기도 했다.


전쟁은 언젠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마 먼 훗날 평화를 사랑하는 지적 생명체가 지구를 방문한다면 전쟁만 일삼은 인류 어리석음을 꾸짖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거의 없다.

그것이 힘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평화를 사랑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점만큼은 자랑할 만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광개토대왕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만주 벌판을 바람처럼 달리고자 하는 한민족의 웅대한 기상과 꿈 때문일 것이다.


<광개토대왕의 주요 업적 정리>


1. 북방 영토 확장


광개토대왕은 북방 유목민족인 '거란'(契丹)과 '비려'(거란계 부족), '숙신'(퉁구스계 부족) 등을 정벌하고 만주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를 통해 고구려는 만주의 대부분을 통제하며 북쪽 국경을 안정시켰다.


2. 한반도 남부 진출


4세기말부터 고구려는 한반도 남부로 영향력을 넓혔다.

396년에는 백제 '아신왕'을 공격하여 한강유역 일부를 점령하고, 백제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였다.

이를 통해 남쪽으로 영향력을 확립하고 백제 세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3. 왜구 격퇴와 신라 지원


400년, 신라 내물 마립간 요청으로 고구려군이 파견되어 왜구를 물리쳤다. 이로써 신라는 외적 위협에서 벗어났고, 동시에 고구려는 신라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4. 거란과 숙신 정벌


광개토대왕은 북방의 거란과 숙신을 제압하여 고구려 영토를 만주전역으로 확장하였다.

그 결과 고구려는 동북아시아 북방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5.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광개토대왕 사후, 그의 아들 '장수왕'은 아버지 업적을 기리기 위해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웠다.

이 비석은 현재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으며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과 고구려 군사적 위세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 ‘광개토대왕비문 논란’은 이전 글 <고대사는 흐른다 17편 – 임나일본부 논쟁 편> 참고.)


광개토대왕은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정복 군주로 평가된다.


이후 남북국시대(통일신라와 발해)를 거치면서 고려·조선 시대에는 대규모 정복전쟁이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여진족 토벌 수준에 그쳤으며 시대적 여건상 대외팽창 여지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은 전방위적인 정복사업을 통해 영토를 넓혔을 뿐 아니라, 중원이 분열된 혼란스러운 국제정세를 기민하게 활용하여 최대 성과를 거두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의 정복 활동은 국방안정과 국가생존을 위한 현실적 대응이었다.


당시 백제와 후연이 고구려를 위협하고 있었고 거란 등 북방 유목민들도 침입을 노리고 있었다. 광개토대왕이 이들을 제압함으로써 고구려의 안보는 강화되었고, 그 덕분에 아들 장수왕은 보다 안정된 국력 기반 위에서 남쪽 백제와 신라를 견제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이어서 다음 편에서는 장수왕의 업적을 다룹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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