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918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918
ㅡ 세월호 사건과 냄비근성 ㅡ
오늘은 세월호 참사 12주년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깊은 흔적을 남긴 사건이다.
나 역시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당시 나는 전남도의원으로서 도정질문에 나섰던 날이었다. 오전 마지막 순서로 단상에 오르기 직전,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곧 ‘전원구조’라는 보도가 이어졌고 안도감 속에서 질문을 시작했다.
교육감을 상대로 질의를 이어가던 중, 도지사가 갑작스럽게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았다. 다음 도지사를 불러 낼 참이었는데 의원이 질문하는 도중 자리를 뜨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장면이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태 심각성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질문을 마치고 내려왔을 때,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전원구조’라는 소식은 오보였고, 수백 명 학생들이 실종상태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벌어진 이 극적인 전환은 지금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충격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상사고를 넘어 한국사회 구조적 문제와 재난 대응 방식 전반을 드러낸 계기였다. 이후 한동안 안전, 책임, 시스템에 대한 깊은 성찰과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세월호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거나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는 반응도 점차 늘어났다.
그리고 2022년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에는 사회 전체가 다시 크게 반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은 빠르게 줄어드는 모습 역시 반복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 한국사회에서 자주 나타난 하나의 반응 패턴으로 볼 수 있다.
흔히 이를 <냄비근성>이라고 부른다. 쉽게 끓어오르고 또 빠르게 식어버리는 집단적 반응을 의미한다.
다만 이 개념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볼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원래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말로는 ‘은근과 끈기’가 더 자주 언급되어 왔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생활 방식이나 공동체 문화는 오히려 꾸준함과 지속성에 가까운 측면이 많았다.
즉 우리 민족의 특성은 '냄비'가 아니라 '무쇠솥'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체감하는 이 ‘빠른 반응과 빠른 이탈’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를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배경은 있다.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 사회구조 전반 변화를 매우 압축적으로 경험했다는 점이다.
유럽 여러 국가들이 수백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우리는 수십 년 안에 겪었다. 그 과정에서 사회는 빠르게 반응하고 빠르게 전환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특정 이슈에 단기간 강한 에너지 집중시키고, 이후 다른 이슈로 이동하는 패턴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분명 양면성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단기간에 강한 공감과 행동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된다. 실제로 여러 사회적·정치적 변화는 이러한 집단적 에너지 속에서 가능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에너지가 충분한 성찰과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을 높인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세월호 이후 안전 관련 제도개선이나 시민사회 지속적인 활동처럼, 일정 부분은 꾸준히 이어져 온 노력도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전체의 관심과 압력이 장기적으로 유지되지 못하는 경향 역시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
이 문제는 정치영역에서도 드러난다.
지금 진행 중인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이다.
선거 때마다 특정 이슈나 이미지에 따라 표심이 빠르게 움직이지만, 후보자 정책이나 장기적 비전에 대한 검증은 상대적으로 약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선거 직전에는 높은 관심이 형성되지만 당선 이후에는 감시와 참여가 급격히 줄어드는 패턴도 반복된다.
이러한 구조는 정치권 행동방식 에도 영향을 준다.
장기적 정책보다 단기적 이슈 대응에 집중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이슈는 또 다른 이슈로 덮이는’ 방식이 반복되기 쉽다.
유권자 반응방식과 정치 작동방식 이 서로를 강화하는 지속가능한 순환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이 특성을 어떻게 활용하고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 설정이다.
빠르게 반응하는 힘 자체를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다. 다만 그 에너지를 어떻게 지속성으로 연결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예를 들어, 초기 강한 공감과 분노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제도 개선과정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또한 시민 관심이 일정 수준 유지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며
선거 이후에도 정책과 행정을 꾸준히 평가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이러한 장치들이 뒷받침될 때, ‘빠른 반응’은 ‘지속가능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세월호 12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단순한 기억자체가 아니다.
왜 우리는 반복해서 강하게 반응하고, 왜 그 에너지를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하는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냄비근성’은 비판의 대상일 수도 있고, 역독성이라는 가능성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결국 그 이후를 어떻게 이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
ㅡ 초롱박철홍 ㅡ